모든 사람들, 나아가 모든 생명들이 복되고 평화롭게 사는 세계를 이루는데 모든 종교인들이 앞장서고,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원 종교 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 종교적 갈등까지 배제하여 함께 손잡고 나갈 수 있다면, 종교들의 화합된 힘은 단번에 인류를 보다 높은 행복과 평화의 낙원으로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소박하고 거친 생각이지만, 지난 29일 세계의 종교지도자 1천여명이 유엔에 모여 채택한 '세계평화선언'은 결국 이러한 소박한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것에 다름 아니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일에 제일 앞장서서 손잡고 나가야 할 사명을 다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 세계 종교에 대한 반성이요, 근본적인 반성을 통해 구체적인 실천을 일으켜 나가려는 움직임이다.

이러한 세계 종교인들의 큰 지향을 바라보면서, 우리는 다시금 그러한 흐름에 불교는 어디에 서 있으며, 또 한국불교의 위치는 어디인가를 묻게 된다. 이념적으로 말하자면 불교는 당연히 이러한 움직임의 지도적 위치에 서야 마땅하다. 제시된 열 개의 이념 전체를 지지하는데 가장 적합한 교리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념에 대한 현실적인 기여를 말한다면 불교는 선두 그룹에 서있다고 말하기 힘들 것이다. 아직도 서양문명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의 정세 때문인 점도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불교계의 자각과 노력이 부족하였다는 점에 대한 완전한 변명이 될 수는 없다. 그리고 한 번 더 돌이켜 한국불교의 역할과 위치를 생각하면 이러한 반성과 자각은 더더욱 절실하고도 뼈아픈 것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번에 채택된 열 가지의 결의를 보면 전혀 새삼스러울 것도 없이 그 동안 우리 불교계에서도 늘 강조되어 오던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그러한 이념들의 실현을 통해 평화로운 인류 공동체의 구현에 앞장서는 불교로 체질 개선을 이루지 못하였던 우리 불교계의 안타까운 현실이 여전히 우리 눈 앞에 있다. 이제 더 이상 우리 불교계의 내부적 갈등으로 변명을 삼아서는 안된다. 아니 오히려 불교계가 내부적 문제에 발목을 잡혀 있는 것은 이러한 불교의 큰 사명에 대한 자각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할 때이다. 인류의 삶, 인류의 공동체에 기여하는 불교로 거듭나려는 큰 자각에서 한국불교 중흥의 계기를 찾아야 한다. 내년 회의를 한반도에서 열 예정이라는 소식을 우리 불교계의 변화를 촉구하는 채찍질로 삼아 한국불교의 큰 변신을 이룩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