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탑봉(多塔峰)의 천불천탑(千佛千塔)’으로 알려진 전남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은 과연 누가, 언제, 무엇 때문에 조성한 것일까?

고려 후기∼말기에 조성됐을 것이라는 추정만 있어왔던 운주사 천불천탑의 조성배경에 대해 고려를 침략한 원 나라가 1270년경 군사적 목적으로 조성한 것이라는 다소 이색적인 주장이 나왔다.

11월 24∼25일 국립김해박물관에서 열린 제4회 국립박물관 동원학술 전국대회에서 ‘운주사 탑상(塔像)의 조성불사’를 발표한 소재구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고려를 침략한 원 나라 군부가 운주사를 고려 삼별초군에 맞서기 위한 군사 거점으로 삼으면서, 원 나라 병사들의 무운을 빌기 위해 천불천탑을 조성했다”는 주장을 폈다.

운주사 천불천탑은 운주사를 둘러싼 계곡에 18기의 석탑과 72기의 석조불상이 밀집해 있는데, 소 연구관은 바로 이 점이 한국의 전통적인 조탑(造塔)·조불(造佛) 의식에서 벗어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소 연구관은 “천불천탑은 대부분의 탑과 불상의 양식이 일률적이어서 수많은 석재와 인력이 동원돼 단기간에 완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며 “고려인이 조성했다면 최상급의 석공 그룹을 데려와 최상의 석탑과 불상을 한 점씩만 조성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탑과 불상의 배치, 그 양식이 이국적이라는 주장에 대해 소 연구관이 제시한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우선 몽골 사람들은 티베트 불교의 영향으로 형성된 라마 불교의 신봉자들로, 다탑 조성의 관습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이다.

불상들이 길쭉한 타원형 얼굴과 긴 코, 손 모습 등에서 이국적 형상을 드러내고 있는 점, 원반형 계란형 등 탑 모습뿐 아니라 탑에 나타나는 십자형 X자형 다이아몬드형 도상이 몽골의 전통적인 장식 도안을 빼 닮았다는 점 또한 이를 입증하는 근거라고 소 연구관은 주장했다.

하지만 이날 논평을 한 정선종(광주시청 문화예술과)씨는 “운주사 탑들은 사각형에 중층 석탑이고, 옥개석 하반부나 상층부의 모습이 신라 석탑에 가깝다”며 “우리 나라 석탑의 기본 형태를 띠고 있으면서 부분적으로 이색적인 모습이 보인다고 해서 외국인이 조성했다는 주장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삼별초 진압군의 정확한 주둔지 위치를 기록한 사료가 없는 상태에서 “외떨어진 운주사에 대규모 군대가 주둔해야 할 이유도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권형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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