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불교미술인회(회장 이진형)는 8월3일부터 8일까지 중국 오대산 불적답사 및 한·중 불교미술문화교류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조각과 탱화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는 불교예술인들이 주축이 된 36명의 답사객들은, 중국 불교 4대 명산의 하나로 찬란한 중국불교문화가 살아 숨쉬는 오대산과 석굴 예술의 보고인 운강석굴 등을 꼼꼼히 둘러봤다. 특히 처음으로 개최된 불교미술문화교류 학술대회는 한·중 문화교류의 새로운 물꼬를 텄다는 평가다.

전날 비가 온 탓인지 북경의 밤은 예상과 달리 덥지 않았다. 하지만 웃옷을 벗어 던진 채 길거리로 뛰쳐나온 시민들의 모습에서 섭씨 40도를 넘나든다는 북경의 찜통 더위를 감지할 수는 있었다. 일행은 북경의 극심한 더위를 피해 야간 열차에 몸을 싣고 내몽골에 인접한 산서성 대동으로 향했다. 약 7시간 걸려 도착한 대동은 운강석굴을 비롯해 유서 깊은 고찰들이 있는 도시이다. 이어 버스로 갈아타고 검은 탄전지대를 지나 운강석굴 앞에 섰다.

무주산 남쪽 기슭에 약 1km에 걸쳐 남향으로 뚫린 운강석굴은 4세기 말 북위왕조(386∼534)가 남겨놓은 불교예술의 꽃이자 북위미술의 보고이다. 동에서 서로 한 굴씩 단층으로 뚫려 있는 운강석굴은 장엄한 외형만으로도 탐방객들을 주눅들게 한다. 이어서 53개의 굴 속에 봉안된 17m에서부터 손바닥만한 크기의 불상 5만 1천여 구는 감탄사를 내뱉을 틈도 주지 않고 신비감에 빠져들게 한다. 이러한 신비감은 굴 속으로 들어가면서 극치를 이룬다. 본존불 사방에 새긴 여러 조각상과 비천, 그리고 꽃과 새로 장엄한 조각의 세계는 황홀하기 그지없다. 특히 이 조각상들의 의상이 적·녹·황색으로 채식되어 굴 속은 살아 움직이는 세계인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그런데 이 거대한 절벽이 단 몇 십년 만에 조성됐다는 안내자의 설명에서 답사객들은 또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 가운데 20호 굴 노천대불은 우리 나라 역사교과서에 소개될 만큼 유명한 불상이다. 노천에 자리한 이 좌불의 높이는 14m, 커다란 두 귀가 어깨 위에 닿을 정도로 장대한 모습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봉안돼 금당구실을 하는 9호 굴은 운강의 모든 조각미술이 총망라됐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가장 아름답고 호화스럽다. 그리고 5굴은 운강석굴 최대 높이인 17m의 좌상이 사방 벽에 조각된 크고 작은 불상에 둘러 싸여 있다. 6굴은 중앙에 15m 방형의 탑 기둥이 우뚝 서 있으며, 벽면에는 빽빽하게 작은 부처님이 조각돼 있다. 그리고 제7∼19 석굴까지 불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중국의 전통적 조소 기법에 인도, 아프카니스탄, 페르시아의 양식이 합쳐져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낙양 용문석굴과 돈황 막고굴과 함께 중국 3대 석굴의 하나로 중국미술사에서 가장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 운강석굴을 참배한 일행들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상·하 화엄사로 발길을 옮겼다. 상·하 화엄사는 운강석굴과 함께 2천4백여 년의 긴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대동의 대표적 불교성지이다. 하화엄사에 도착한 일행들은 박가교장(薄伽敎藏)이란 현판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불경을 보관하고 있는 전각이란 뜻이다. 이 전각에는 나무로 된 38칸의 경장고가 있고 그 안에는 1만 8천 여권이 경전이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법당에 봉안된 31개의 불상은 운강석굴과 함께 대동의 큰 자랑거리이다. 불교 건축 가운데 중국 최대인 상화엄사는 불사 관계로 참배하지 못했다. 특히 이 사찰의 거대한 벽화와 천정화(天井畵)를 보지 못해 불화를 전공하는 불교문화예술인들을 아쉽게 했다.

웅장한 중국불교미술에 대한 희열과 아쉬움을 뒤로하고 일행들은 항산 현공사로 향했다. 항산의 서쪽 취병봉 낭떠러지에서 30여 미터 높이에 위치해 있는 현공사는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아슬아슬하지만 1천5백년 동안 자리를 틀고 있다. 멀리서도 깍아 지른 듯한 절벽에 제비집처럼 매달려 있는 현공사를 바라볼 수 있는데 말 그대로 절경이다. 이 절의 가장 큰 볼거리는 감실을 파고 조성한 마애불이다.

40칸의 당우가 여섯 채의 전각으로 나뉘어진 현공사는 78기의 불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석가, 노자 공자의 상이 봉안돼 있는 삼교전이 흥미롭다.

현공사를 둘러본 일행들은 끝없는 평야지대에 펼쳐지는 옥수수, 해바라기와 험준한 고원의 풍광을 감상하며 문수신앙의 중심지 오대산에 도착했다. 오대산이 문수신앙의 중심지가 된 것은 측천 무후 때인데, 화엄불교가 융성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당나라 때인 700년 전후시기에 오대산은 문수신앙의 중심으로 널리 알려졌다고 한다. 이곳에서 일행들은 2일 동안 머물며 중국불교미술을 구석구석 살폈다. 오대산 최대 사원인 보살정을 시작으로 오대산의 상징으로 일컬어지는 백탑(56m)이 봉안된 탑원사, 뒤엉킨 교룡과 집승들, 새와 벌레, 인물과 꽃 등이 마치 살아 있는 듯 정교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석패방(石牌坊) 있는 용천사, 오대산의 우국사·극락사·선덕당 3사를 합한 남산사, 8만평방미터의 대웅전, 무량전, 문수전, 천불전 동전 등이 일직선상에 배치한 현통사 등 10여 개 사찰을 둘러봤다. 현재 오대산에는 대회진을 중심으로 47개의 사찰이 있다고 한다. 이 가운데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