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1879∼1944) 스님이 근대 불교사 및 불교사상사에 미친 영향을 명확히 밝히기 위해서는, 불교학계의 심도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병삼(숙명여대) 교수는 10일 '불교의 개혁사상과 만해의 개혁정신'을 주제로 강원도 백담사에서 열린 불교개혁심포지엄에 논평자로 참석해, "1920년대에 등장한 용성 스님의 '개혁론'과 이영재 선생의 '조선불교혁신론' 등은 모두 만해 스님의 '조선불교유신론'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없는 상황에서 '추정'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스님에 대한 6백여 편의 연구 논문 수가 말해주듯, 원효 스님(7백여 편)에 이어 인문학계에서 가장 빈번하게 연구되고 있는 한국의 대표적 스님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따라서 정 교수의 이 같은 지적은, 이들 연구들이 대부분 시문학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을 뿐, 정작 근대 불교사 및 불교 사상사에서의 스님의 위치를 정확히 짚어주지 못하는 연구의 불균형을 지적한 것이다.

정 교수에 따르면 1910년대 임제종 운동과 조선불교회 설립을 주도했던 만해 스님의 시대 인식은 남다르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이지만, 그 평가 기준으로는 '조선불교유신론'에서 사찰령을 비판하지 않고 '대처금지 해제'를 건의한 스님의 결단을 이해하는 데는 무용지물일 뿐이라는 것이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의 '만해 연구논저 총목록'에 따르면, 만해 스님에 대한 연구는 주로 시문학계에 의해서 70년대부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연구 주제는 불교유신·독립사상 등과 같은 스님의 사상 부문으로 확대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문학적인 접근에 편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정 교수는 "만해 스님의 사상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보다 심도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스님의 불교관 자체에 대한 정밀한 분석이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심포지엄에서 '1910년 한국불교계의 유신론'을 발표한 김상현(동국대) 교수도 "현재 불교계가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선 경전이나 고대사 연구로는 한계가 있으며 근·현대사를 통해 그 대안을 찾을 수밖에 없다"며 "일제침탈, 3·1운동, 불교유신, 대처간 분쟁, 법란 등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른 한국불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근·현대불교사의 중심에 서 있는 만해 스님의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만해 스님의 주요 활동기인 1910∼1930년대는 일제의 문화말살 정책과 서양문물의 무분별한 유입 속에서 불교의 쇠퇴기였다. 만해 스님은 이 같은 침체의 원인을 하늘이니 운명이니 하는 말로 설명하는데 반대하고, 불교의 부흥을 위해선 우리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시대에 맞지 않는 구습들을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병삼 교수는 "불교 유신의 책임을 스스로 떠맡고 나섰던 만해 스님은 동시대 불교계의 피상적인 개혁이나 개량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다"며 "'유신은 파괴로부터' 혹은 '파괴는 유신의 어머니'라는 그의 강렬한 주장 뒤에는 근대 불교계에 대한 반성과 모순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만해 스님에 대한 불교적 연구가 더욱 깊이 있게 진행될 때, "썩은 종기를 도려내고 상처를 치료할 때 새 살이 돋아날 수 있다"는 스님의 시대 정신이 올바로 전달되고, 오늘날 불교중흥의 방향 설정에 적잖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오종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