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부터 실상사에서 ‘금강경결제’에 돌입했다. 전국의 선원이 결제에 들어간 가운데, 선종을 표방하는 조계종의 사찰이자 구산선문의 하나였던 도량에서 ‘화두’가 아닌 경전으로 결제를 한다는 사실은 단순한 관심을 넘는 주목을 요한다.

우선 ‘간경결제’라는 한국불교사상 초유의 시도에 대한 배경부터 살필 필요가 있다. 금강경이 조계종의 소의경전, 즉 믿음의 바탕을 이루는 경전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런데 그 믿음의 생명줄과 같은 경전의 가르침에 비추어 볼 때 현실은 지극히 비금강경적이라는 것이다.

무엇이 비금강경적인가. 금강경의 사상이 철저히 ‘상(相)’을 타파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한국불교는 선(禪)을 절대화하고 선의 벽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다는 것이다.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내어라”는 말은 금강경의 핵심이다. 육조 혜능 스님도 이 구절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가르침에 소의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 결제 대중의 일치된 견해다.

금강경의 불교사적 의미는 아주 크다 공문(空門) 즉 교문(敎門)에서 선문(禪門)으로 들어서는 입구이자, 소승에서 대승으로 가는 징검다리와 같은 경전이다. 바로 이러한 금강경의 가르침에 투철하자는 것이 금강경 결제의 근본 목적일 것이다.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또한 금강경 결제는 최근 문제 제기가 잇따르고 있는 간화선과 승가의 수행풍토 쇄신에 대한 교계 안팎에서 비등하고 있는 요구의 연장선상에서 이루어진 측면이 있다. 이번 결제에 거는 기대의 일단이 거기에 있다.

선종의 발전이 교학(敎學)의 지리멸렬에 있었다는 점을 명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