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절에서 법회를 볼 때의 이야기다. 모인 대중은 대부분이 노보살님들이었다. 거사님이 두 분, 청소년은 한사람도 눈에 띄지 않았다.

절에 30년 이상 다닌 분들은 손을 한번 들어보라고 주문했다. 절반에 가까운 신도들이 손을 들었다.

10년이상 신행한 분들을 물어보니 거의 모두가 손을 들었다.
이어서 삼보가 무엇인지 아는 분은 손을 들어보라고 했다. 놀랍게도 한사람도 없었다.

이것이 비단 이 절만의 실정이 아니라는 것이 한국불교의 현실이다. 이런 절이 모르긴 해도 아마 우리 국내 사찰 가운데 절반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반드시 불교적 상식이 있어야만 불자 자격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불교는 맹목적 신앙만을 요구하는 종교가 아니다. 합리적 이해와 그에 따르는 실천을 곁들여야만 불교는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갖는 종교인 것이다.

불자는 모름지기 부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이다.
아무리 목에 염주를 두르고 불자의 티를 확연하게 드러낸다고 해도 올바로 부처님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면 진정한 불자라고는 말하기 어렵다. 더구나 불자란 이름을 걸고 부처님의 뜻을 거슬리기까지 한다면 자신을 속이고 부처님을 욕되게 하는 인물이 될 것이다. 부처님을 만난 이후로도 탐욕과 교만과 맹목적 신앙에만 매달려 있다면 그는 명색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불자가 아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부처님의 뜻을 따르는 불자일까.
필자는 여기서 자기자신을 어떤 불자인가 돌아볼 잣대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나는 진실로 신심이 돈독한가?
나는 진리를 향해 정진하고 있는가?
나는 마음을 얼마나 닦고 있는가?
나는 보살 정신을 이웃에게 펴고 있는가?
나는 전법을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에 자신있게 그렇다고 대답할 불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한국불교의 내일은 밝아질 것이다.

도수(정업도량 회주. 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