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제방과 강둑. 모래밭으로 변해버린 논밭들. 휴지조각처럼 구겨져 팽개쳐진 경운기와 자가용차들. 흙먼지가 도시 전체를 뒤덮어 버린 9월 3일 강릉시의 모습은 처참함 그 자체였다.

8월 31일 오후부터 9월 1일까지 총 897mm의 비가 쏟아진 강릉지역은 7856가구 22804명의 이재민이 발생하고 사망 61명에 22명이 실종되는 인명 피해를 겪었을 뿐만 아니라 5천5백여억원의 재산피해(9월3일 강릉시 재해대책본부 집계)를 당했다. 또한 전지역은 단수와 단전 상태였고 7번국도와 35번 국토의 붕괴로 외부와 단절됐다가 복구공사로 간신히 연결이 재개됐다.

불교계에서는 이런 강릉지역의 딱한 사정을 듣고 정토회 정토행자 40여 명, 진각복지재단과 비로자나 청소년 협회 소속 불자 10여 명 등 50여명의 불자들이 강릉시 내곡동과 삼척시를 찾아와 봉사활동을 펼쳤다.

정토행자가 찾은 강릉시 내곡동은 집중호우로 불어난 물이 남대천으로 빠지지 못해 이층까지 물이 차는 등 침수피해를 겪었던 곳. 정토행자가 도착했을 때, 내곡동 주민들은 물이 빠지기 시작한 처참한 동네 모습을 보고 망연자실 넋을 놓고 있었다. 갑작스럽게 불어난 물로 미쳐 가재도구를 챙기지 못하고 빠져나와 재산피해는 더욱 컸다.

3일 내곡동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한 정토행자들의 첫 번째 임무는 집안의 가재도구를 밖으로 꺼내기. 냉장고 텔레비전 등 아직 멀쩡한 제품들이 진흙에 파묻혀 있었고 옷가지들은 얼룩져 도무지 입을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가장 신속하게 구호단을 꾸리고 나타난 정토불자의 활약으로 주민들은 큰 힘을 얻을 수 있었다. 쓸 수 있는 물건과 쓰지 못할 물건을 내다 길가에 모아 놓기. 당장 급한대로 입을 수 있는 옷을 빨아 말리기, 진흙 범벅이 그릇과 숟가락, 냄비 등 가재도구 씻기 등을 통해 정토행자들은 주민들의 재활 의지를 북돋았다. 또한 붕괴위험에 빠진 축대에 대한 응급보구 사업으로 추가적인 피해 발생을 막았다.

집안에 모셨던 불단을 건져 말리던 김정순 씨(52)는 "바로 윗집 이모부가 이번 물난리로 무너진 담벼락에 깔려 돌아가시고 온 집안살림이 망가지는 피해를 당했다"며 "하지만 불자들의 따뜻한 도움을 받아 하루 빨리 수해를 극복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할머니 등에 업혀 피난을 갔던 70여년 전 병자해 물난리도 이보다는 덜했다"는 최말임 할머니(76) 등은 "불자들이 이렇게 열심해 도와주어 큰 시름을 덜게 됐다"며 입을 모아 고마워했다. 하지만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발생한 대규모 침수사태에 대응하기에는 턱없이 인력이 부족해,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한 불교 기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 또한 높았다.

대부분의 사찰과 불교유적이 산중에 위치한 까닭으로 자세한 피해 상황이 보고되지 않고 있지만 이번 태풍 루사로 수많은 사찰과 불교유적이 파괴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대표적인 강릉지역 불교유적인 굴산사지 석천(石泉)은 장현저수지의 범람으로 사라져 신라말 고승인 범일스님의 체취를 다시 찾을 수 없게 돼 많은 불자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또한 보물 87호와 88호로 지정된 신복사지 삼층석탑과 석불좌상도 밀려온 토사에 1/3이 파묻혀 손상될 위기에 처했다.

산사태로 사찰 피해도 심각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속초시에 위치한 월해사는 뒷산이 산사태로 무너지면서 관음전과 요사채, 삼성각이 완파, 지장전과 대웅전이 반파되는 등 총 20여억원의 피해가 발생해 폐사 위기에 처하게 됐다. 또한 전통사찰인 낙산사는 담장이 붕괴되고 도로가 유실되고, 고향실 지반 유실로 건물 붕괴의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이외에도 통신두절로 피해가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더 많은 수의 사찰이 도로 유실, 건물 붕괴 등의 피해를 받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스님들의 인명피해도 하나 둘 알려지고 있다. 속초시 청룡사 스님 두명이 산사태로 매몰됐다가 구조됐지만 생사 여부가 확인돼지 않고 있다. 또 31일 불어난 물에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던 강릉 연곡면 성원사 손동철 스님은 다행히 구조돼 병원치료 중인 것으로 신흥사를 통해 확인됐다.

강유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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