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한 해 동안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들려드리면서 우리에게 친숙한 ‘토끼전’ ‘고려장 이야기’ ‘장끼전’ ‘황금알을 낳는 거위’ ‘심청전’ 등의 동화 혹은 설화들의 기원을 부처님의 본생담에서 찾아보았다. 이를 통해서 불교 설화는 지역과 종교를 뛰어넘어 오랜 시간 동안 토착화 혹은 융화되어왔음을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리의 전래동화나 고전소설 속에 스며 들어간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좀 더 찾아보기로 하였다. 욕심쟁이 놀부에 버금가는 고약하고 인색한 옹고집이 부처님의 전생담에서 기원했다면 아마도 놀라실 분들이 많으시리라 생
나한(羅漢)은 아라한(arhat , 阿羅漢)의 줄임말로 불교 수행자가 추구해야 할 최고의 목표인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나 다시는 태어나지 않는 상태를 말한다. 나한에 대한 설명은 경전과 시대에 따라 다른데, 팔리어 경전에서는 나한이 되려면 반드시 출가하여 미혹을 끊고 성자의 대열에 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 탐욕과 증오를 줄여야 하며, 죽은 다음 색계나 무색계에 나면 아라한의 경지에 이르게 된다고 한다. 반면에 대승불교에서는 아라한의 이상보다 다른 사람들이 도를 깨달을 수 있도록 열반에 들지 않고 세상에 남아 있는 역할을 더 중히 여
잘못을 저지른 악인에게 벌을 내리는 이유는 악인이 진심으로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여 다시는 같은 행동을 반복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지, 징벌이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징벌의 무게와 참회가 비례할까? 또한 진정한 참회를 통해서 스스로의 죄를 뉘우친 악인은 과연 선인이 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문점에 부처님께 귀의한 몇몇의 인물들을 살펴보면 악인에서 선인 혹은 불교의 호법신중(護法神衆)이 된 사례가 여럿 있다.불교사에서 데바닷타와 쌍벽을 이루는 악인을 꼽는다면 앙굴리말라(Aṅgulimāla)라고 할 수 있다. 앙굴
인간에 의한 환경 파괴로 인한 기후변화, 훼손된 자연이 되돌려준 천재지변, 전쟁, 자원의 고갈과 식량난, 자국 우선주의 등 인간의 삶과 가치를 위협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직면하면서 일련의 사태들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모두는 이러한 현안 앞에서 지도자의 자질과 역할이 매우 중요함을 잘 알고 있다. 솔로몬 왕에 견줄 만큼 지혜가 뛰어난 지도자도 물론 필요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생담 중에 ‘진정한 지도자는 백성의 행복과 안전을 끝까지 돌보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목표로 삼은 왕을 이 시대에 필
지혜로운 왕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솔로몬 왕’을 떠올린다. 솔로몬 왕은 정치적으로도 이스라엘의 가장 강력한 왕으로도 손꼽힌다. 다윗과 밧세바의 아들인 솔로몬은 어머니의 출신 때문에 왕이 되기 어려웠으나, 뛰어난 지혜로 왕위에 올라 군사·행정·상업 등 여러 문제를 잘 해결해 이스라엘을 부강한 나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현인으로서 기억하는 가장 대표적인 일화는 ‘솔로몬의 판결’ 즉 한 명의 아이에 대해 두 명의 여인이 서로 자신의 아이라고 주장한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구약성경〉 열왕기 상편 3,16-28절에 기록돼 있다. 대략적인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왕, 왕자, 가난한 수도자, 젊은 청년, 여러 동물 등으로 태어나 수많은 보시와 희생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되셨다. 지난 이야기에서는 부처님께서 스리랑카 싱할라 민족의 시조였던 먼 옛날이야기를 들려드렸다. 부처님께서 전생에 인도가 아닌 다른 나라의 백성으로 태어나셨던 이야기가 또 없을까? 아마 여러분들도 궁금하셨을 것이다.5세기 초 양주(쏐州) 출신 혜각(慧覺)을 비롯한 여러 승려들이 고창군(高昌郡, 오늘날 투르판)에서 한역한 〈현우경(賢愚經)〉 제10권 ‘늑나사야품(勒那?耶品)’에 부처님의 전
우리 한민족이 하늘님의 아들 단군의 자손인 것처럼 모든 나라 혹은 민족은 모두 그들만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신비스러운 설화를 가지고 있다. 만약 석가모니 부처님이 민족의 시조 어버이라면 그 후손들은 모두 라훌라와 같은 부처님의 자식이 되며, 저절로 절실한 불교 신자가 될 것이다. 바로 스리랑카의 기원을 석존의 전생을 기록한 본생담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러한 뿌리 깊은 친밀성 때문에 현재도 스리랑카 국민의 80% 이상이 열렬히 불교를 신봉하고 있는 것이다. 현장 법사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스리랑카의 역사서 〈소사(小史)〉와
우리의 고전 소설 혹은 전래동화 중에는 특히 동물들을 의인화하여 웃음과 지혜를 주는 이야기가 많다. 의인화되는 동물에는 토끼, 거북이, 호랑이, 여우, 학, 곰 등 매우 다양한데, 특히 두꺼비는 독을 뿜는 지네와 싸우거나 하늘에서 죄를 짓고 인간 세상에 내려와 업을 씻는 천인으로 등장하기도 하여 주로 선한 주인공의 역할을 맡고 있다. 일반적으로 두꺼비를 의인화해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을 통틀어서 ‘두껍전류 고소설’이라고 하는데, 그 대표적인 이야기가 숲속 동물들의 나이 자랑으로 널리 알려진 ‘두껍전’이다. ‘두껍전’은 조선 후기 작품
흔히들 불교가 비교적 빠른 시간 안에 중국에 정착할 수 있었던 정치적인 배경에 관해서 북방 기마유목민족이 중원지방을 통치할 수단으로 한족 문화가 아닌 당시 최고의 종교인 불교를 이용했고, 여기에 중국 전통의 효사상을 개입시켜 정치권과 민간에서 더욱 유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중국에 전래되기 전의 불교에는 효와 관련된 이야기가 없었을까? 정말 초기 불교는 효에 대해 가치를 두지 않았을까? 오로지 불교에 들어간 효사상은 중국인들의 유교 덕분일까?이러한 의문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초기 경전에 속하는 팔리어로 기록된 남전 장경에서
지난 글에서는 〈월인석보(月印釋譜)〉 권 25에 기록돼 있는 ‘선우태자(善友太子) 본생담’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인 선우태자 이야기만으로 조선 전기 왕실에서 유행한 불경 고사를 이해하기에는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어, 권 8에 총 17장으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는 안락국태자(安樂國太子)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한다. 〈월인석보〉에 제목을 명시하지 않아서, ‘안락국 태자전’, ‘안락국 태자경’, ‘원앙부인 왕생극락왕생연’(鴛鴦夫人 往生極樂往生緣) 등으로 불리고 있다. 이 이야기는 〈월인석보〉 이외에도 〈석가여래십지수
수백 번의 희생과 보시를 통해 부처가 되신 석가모니의 전생 이야기는 불교 경전뿐만 아니라, 숭유억불을 정치와 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삼았던 조선왕실에서 간행한 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세조 5년(1459)에 간행되어 조선 전기 훈민정음 연구와 불교학 및 문헌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는 〈월인석보(月印釋譜)〉이다. 세조가 돌아가신 아버지 세종과 일찍 죽은 아들 의경세자를 위하여 편찬하였다고 알려져 있지만,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라 사육신 등 많은 신하를 죽인 끝에 당하는 정신적인 고통, 회한과 무상(無常)의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본생담(本生譚)은 인도에서 탄생 되었지만, 팔리어로 기록한 남전 장경과 산스크리트어로 기록한 대승 장경에는 서로의 경전에 수록되지 않은 여러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있다. 기원후 성립된 대승 경전에 들어간 본생담들은 나를 희생하여 타인의 생명을 구하는 ‘사신구사’(捨身求死)의 극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그중에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야기가 자신의 몸을 굶주린 호랑이에게 보시한 태자의 이야기이다. 이 본생담은 〈고승 법현전(高僧 法顯傳)〉에 기록된 “축찰시라(竺刹尸羅, Taxila)에서 동쪽으로 이틀쯤
역사적으로 용맹한 무장들이 전쟁에서 결사항전 할 때 또는 한 치의 의심 없는 굳건한 믿음 앞에 ‘나의 목을 내놓겠다’라는 말을 한다. 즉 죽음도 불사하겠다는 최고의 맹세이자, 평범한 사람으로서는 감히 말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전생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 적이 있었다. 과연 무엇을 위하여 이러한 보시를 행하셨을까?북위(北魏)시기 양주(쏐州)의 승려 혜각(慧覺) 등이 고창군(高昌郡, 오늘날 투르판)에서 한역한 〈현우경(賢愚經)〉 제6권의 30번째 이야기 ‘월광왕 두시품’(月光王 頭施品)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공부하면서부터 ‘전생에 베푸신 가장 큰 보시와 공덕이 무엇일까’라는 궁금증은 항상 있었다. 불현듯 욕심 많은 어린 나에게 할머니께서 나라의 귀한 보물과 처자식을 고통받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보시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를 해주셨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니 아마도 수대나 태자(須大拏太子)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던 것 같은데, 할머니는 어떻게 이 이야기를 알고 계셨을까? 손녀의 이름을 거란대장경의 〈조성금장(趙城金藏)〉에서 빌려오신 분이니 당연히 알고 계셨을지도 모르겠으나, 팔리어경전과 대승경전들에서 ‘수대
노예제도와 순장제도가 있었던 2300년 전 맹자는 한 사람의 가치는 천하와 같다고 했다. 그러나 평등과 인권을 외치는 지금의 세상은 오히려 사람의 가치를 생명의 존귀함보다는 수입·학력·사회적 지위 등에 비추어 가격을 매기어 판단하고 있다. 만약 사람의 육신을 값으로 친다면 얼마의 가치가 있을까? 단순히 저울에 무게로 달아서 값을 매길 수 있을까? 종종 우리는 아끼고 사랑하는 상대를 위해서라면 내 자신을 송두리째 내어줄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혹은 들어보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러한 실천을 행한 이를 보기 어
사람이 살아오면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에게 가장 해악을 끼칠 때가 마음에서 질투와 시기심이 일어났을 때라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질투란 이웃이 지닌 것을 내가 소유하지 못한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며, 시기란 내가 갖지 못한 좋은 것을 이웃이 가진 사실에 슬퍼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상대방에게는 있는데 나는 왜 없을까’라고 물으며 갈등의 중심을 나에게 두는 것이 질투로서 질투는 때로 상대방처럼 되고 싶은 마음과 의지를 불러일으키고 경쟁심을 유발하여 열심히 하는 동력이 될 수 있다고 한다.반면에 상대방이 소유한 좋은 것을 보면 단지
불교 전래와 관련해서 여러 나라들에 상서로운 자연 현상 혹은 신비한 일들이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신라의 이차돈(異次頓, 506~527) 순교 이야기가 가장 신비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이미 4세기 말에 고구려와 백제가 불교를 공식적으로 받아들여 적극적으로 세력을 확장해 나간 반면에, 신라는 여섯 개의 부족이 모여 나라를 이룬 까닭에 각 부족들은 건국 당시의 민간 신앙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신라의 귀족들은 선진 종교인 불교를 수용하면 자신들의 전통성과 정치적 존립기반이 무너져 내릴
세상을 살아가면서 선의로 행한 선행이 상대에게 왜곡돼 전달되거나 악행으로 돌아오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마음의 상처와 함께 ‘차라리 하지 말 것’이라는 자책이 남게 된다. 그런데 석가모니 부처님과 관련된 일화에서 항상 악인으로 등장하는 부처님의 사촌 동생 데바닷타(Devadatta, 提婆達多, 調達)와의 전생에서부터 거듭된 악연을 생각하면 후회될 일도 미움으로 남을 일도 없는 듯하다. 그저 ‘나는 옳은 했을 뿐이고, 당신은 전생의 데바닷타 같은 사람이었나보다’하고 크게 숨 한 번 쉬고 털어버리는 것도 방법일 것이다.
옛날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던 유년기에 손에서 놓지 않았던 이야기책으로 〈한국전래동화집〉 이외에 〈이솝 우화집〉도 있었다. 〈이솝 우화집〉은 다양한 동물들을 사람처럼 의인화해서 어리석은 행동을 꾸짖고 여러 교훈을 전해주는 단편적인 이야기들로 엮어진 책이다. 이솝(Aesop)은 그 당시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천재 작가로서,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을까? 라는 감탄을 끝없이 쏟아내게 했던 우상이었다. 이솝에 대해서는 다양한 설이 있는데, 기원전 6세기에 그리스지역에 살았던 노예였다고도 하고 혹은 그리스 리디아의 왕이었던 크로이
모든 동화와 설화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 전래동화 중에서도 읽고 나서 마음이 쓰이고 이해가 되지 않았던 몇몇 동화가 있었는데, 그중에 ‘고려장 이야기’가 첫 번째였다. 사전적으로는 고려에서 나이든 노인을 산이나 동굴에 버리는 장묘 행위를 ‘고려장(高麗葬)’이라고 한다.그런데 전설 이외에 현재까지 한반도에서 고증할 수 있는 고려장 관련 문헌이나 고고학적 자료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가족 간의 가슴 아프고 비극적인 생이별 혹은 생매장 이야기는 어디에서 기원할까? 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