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사회는 커다란 싸움판 같다. 싸움의 종류와 방식도 다양해서 ‘무규칙이종격투기’를 보는 기분이다. 이라크 파병, 과거사, 국보법 개폐, 행정수도 이전, 고교등급제 파문, 사립학교법 개정, 서울 강·남북간의 격차 등 얼추 생각나는 것만 꼽아도 복잡한 전선(戰線)이 그려진다. 복잡한 전선은 한편으로 우리 사회가 그만큼 다원화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해관계의 충돌이 과거처럼 민주대 반민주처럼 선명한 대립관계 속에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말이다. 좋게 보면 압축 성장의 과정에서 생략된 뒤늦은 성장통으로 볼 수도 있고, 나쁘게 보면 홉스가 말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양상으로 치닫는 측면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국가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개인과 집단간의 다양한 이해를
설문조사 결과 조계종 스님들의 대부분이 사회복지시설 운영에 뜻을 지니고 있고, 또 사찰이 사회복지시설로 활용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들어났다 한다. 불교계의 사회복지 참여와 활동의 위상이 교세에 비하여 현저히 낮은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이 현실에서 이러한 설문조사의 결과는 여러 가지 시사를 준다. 우선은 이렇게 높은 사회복지에 관한 관심이 현실화되지 못하였는가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의욕은 높은 반면 전문적인 교육을 받는다든가, 사회복지시설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확보한 스님들의 수가 절대적으로 적은 것은 아직도 불교계의 사회복지가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원인을 드러내 준다고 할 수 있다. 스님들이 적극적으로 교육에 참여하고, 또 많은 전문가가 배출될 수 있도록 종단에
싸움터에서 백만을 이기기보다 나 하나를 이기는 자야말로 최상의 이긴 자이니라. 알콜중독, TV 중독에 이어 이제는 인터넷이 중독의 대표주자로 떠올랐다. 커뮤니티 전문 사이트인 싸이월드(www.cyworld.com)는 미니홈피라는 아이템으로 ‘싸이폐인’ 양성소가 됐다. 하루라도 싸이월드에 접속하지 않으면 금단증상이 일어날 정도로 광적인 네티즌들이 ‘싸이폐인’이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얻은 것. 디씨인사이드의 ‘ 자’로부터 출발한 인터넷 중독집단은 일종의 유행처럼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인터넷 사용자 중에 이들이 양산해내는 콘텐츠를 접해보지 않은 이들이 없을 것이다. 개인적인 사진에서부터 합성 사진, 패러디 영상에 이르기까지 의사소통의 수단으로 변모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불교 현대사에서 큰 오점으로 남은 ‘폭력성’이 여전히 우리 내부에 잔존하고 있다. 최근 큰 사찰 주요 소임자 스님들과 관련된 두 건의 폭력사건 소식이 들려와 충격을 주고 있다. 전라남도의 한 유력 사찰에서 한 스님이 술을 마신 뒤 재가종무원에게 폭력을 행사한 일이 발생했다. 그 스님은 이후 참회를 하고 피해자에게도 사과를 했다고 하지만 힘없는(?) 사찰 종무원에게 폭력을 가했다는 점에서 변명의 여지가 없다. 경상북도 소재한 큰 사찰의 스님도 최근 경내에서 다른 스님에게 폭력을 가해 코뼈를 부러뜨렸다고 한다. 지난 2001년 조계종 내에 ‘종단폭력 근절대책 소위원회’가 꾸려져 자성의 목소리가 드높았지만 여전히 불교계 내에서 폭력이 ‘현재진행형’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불교계의 한
“사나이답게 싸우다 장렬하게 죽는다. 알겠나?” “예!” “전원 유서를 써서 전투복 상의 주머니에 넣는다. 실시!” “실시!” 갓 임관해서 전입온 소대장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되었다. 데프콘2 발령, 전투개시 직전 상황이다. 제대 특명을 받아놓은 고참병들도 예외 없이 완전군장을 하고 비장한 얼굴로 소대장의 지시를 듣고 있다. 이른바 8·18 판문점 도끼만행사건(1976년)이 터졌을 때의 상황이다. 입대 5개월 째, 신병 티를 벗지 못한 나는 떨리는 손으로 수첩을 찢어 몇 장의 유서를 썼다. 우린 모두 어둠의 자식들이었다. 돈도 없고 빽도 없어 최전방까지 팔려온 노예였다. 그러나 용감히 싸우다 장렬하게 죽겠다는 결의는 바위처럼 굳고 단단했다. 그러나 전쟁은 터지지 않았고 유서는 불태워버렸다.
인심은 시대상황이 만든다. 화합하는 사회라면 이웃과 아픔을 함께 할 것이고 불화의 사회라면 이웃의 아픔에 무관심하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정치권이 내놓은 갈등적 소모적 주제들로 유례없는 불화의 시대를 살고 있다. 경제적 어려움과 더불어 ‘이웃에 대한 무관심’의 가장 큰 원인일 것이다. 올 추석이 예년과 달리 썰렁하고 어수선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추석은 가족 친지 단위로 화목한 분위기가 연출되는 명절이다. 이럴 때일수록 상대적 외로움과 소외감을 갖게 되는 불우이웃이 있어 예부터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온 것이 우리 국민심성 이었다. 그것이 현대로 이어져 추석이나 연말연시 등 명절이면 종교, 자선단체 신문 방송 등이 불우이웃에 대한 관심을 한번씩 환기시키곤 한다. 불우이웃 돕기가 어디
우리 민족은 세계 어느 민족보다 우수하고 독특한 우리만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이루어왔다.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전래된 불교 신앙을 바탕으로 찬란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는데, 특히 민족의 얼과 불교의 사상이 융합되어 탄생된 한국의 불교미술조각은 우리나라 전통미술 중에서도 으뜸으로 꼽히고 있다. 근래들어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도 점차 커지고 또 불교미술의 맥을 이으려는 장인들의 꾸준한 노력으로 조금씩 불교미술계가 활기를 되찾는 듯 해 전통 조각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뿌듯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값 싸고 질 낮은 외래의 미술품들이 단지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무분별하게 밀려들어, 대표적 전통의 거리라 할 수 있는 인사동의 상점은 물론 성스러운 사찰 경내, 심지어는 법당안까지 침범하는 어처
인터넷이 보편화되고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시장 지배력이 절대화되면서, 책의 문화적 가치는 노골적으로 밀려나고 있다. 대형서점과 인터넷 서점의 주고객층인 20~30대의 기호에 맞는 대중적인 책만이 살아남고, 전문서나 종교서적 특히 불교서적은 거의 설 자리를 잃고 말았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02년 통계를 보면, 출판사 19,135개 중 1종이라도 발행 실적이 있는 출판사는 1,524에 불과하고, 발행 종수의 70%는 상위 10%의 출판사가 점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불교 전문 출판사의 입지는 일반 중소규모 출판사보다 더 불리하다. 대중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도매상으로부터 홀대받고, 베스트셀러 위주의 판매전략을 구사하는 대형서점에서는 사각 지대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최근 불교 전문 출판사들이 ‘
지자체 실시 이후 가장 많이 달라진 것은 각 지자체마다 향토색을 진하게 드러내려는 움직임인 듯하다. 지역의 문화유산이나 자연환경, 특산물 등을 최대한 특성화 시켜보겠다는 전략이 그것이다. 이제는 먹거리나 볼거리 중심의 축제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된 사례도 더러 있어 때로는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져 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사라 P. 화이트의 라는 책을 소개한 글에서 ‘H3 리더’라는 신조어를 본 적이 있다. 인류의 삶을 변화시키고 있는 ‘열정적이고(hot) 진보적이며(hip) 일을 만들어 가는(happening)’ 사람들이라는 단어의 이니셜을 따서 만든 말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어려울 때일수록 새로운 도전을 감행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한다는 공통점이 있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늘
누가 2000년의 불교 용어에 함부로 칼을 대는가 한형조 정신문화연구원 교수는 최근 ‘불교용어표준화불사위원회’가 진행하고 있는 불교용어 표준화작업에 대한 입장을 현대불교신문사에 보내왔다. 다음은 한교수의 기고문 전문이다. 듣자니, 한국불교학회, 불교학연구회, 인도학회 등 14개 불교학술단체가 그동안의 한문 용어를 ‘버리고’ 새로운 불교 용어를 ‘창안’하겠다고 선포했다. 그것도 연구에 필요한 참고 자료로 쓰겠다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의무적으로’, 즉 강제로 쓰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표준화 작업이 완료되면 교과서 제작이나 논문 작성때 의무적으로 표준용어를 사용해야 한다.” (다음뉴스에 인용된 서울신문의 기사) 사실인가. 혹시 내가 잘못 들은 것은 아닐까. 한국불교학회는 이 표준화 작업이 “언젠
최근 우리나라에 노인인구가 급증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증가하는 현상을 ‘노년에 의한 지진’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다. 2004년 현재 우리나라 노인인구는 전 인구의 8.7%로, 약 420만 명 정도가 된다. 우리나라는 매일 65세 이상의 노인이 580명씩 탄생하고 있다. 노인인구가 증가하면서 파생되는 사회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기에서는 노인인력 활동을 중심으로 논의해 보고자 한다. 우선 노인을 건강한 노인과 건강치 못한 노인으로 구분하고 또 빈곤한 노인과 중산층(이상)의 노인으로 분류했을 때 건강하면서 빈곤한 노인에게는 노인 일자리 창출, 노인 재취업을 비롯한 인력활용 정책이 있어야 한다. 건강하면서 중산층(이상)의 노인에게는 여가활용, 자원봉사 등의 프로그램이 있어야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
한 사회의 건강함과 건전성을 무엇으로 측정 할 수 있을까. 자비와 사랑, 이웃에 대한 선의의 관심, 아낌없이 주는 보시의 실천 함량이 그 척도가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불교계 ‘생명나눔실천본부’가 올해 처음 시작한 골수기증 등록 캠페인의 높은 성과는 아직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낙관하게 해 주는 하나의 예다. 생명나눔실천본부는 올 초 동국대 경주 캠퍼스에서 교수 학생 등 5백여 명이 골수기증을 등록받았고, 서울 종로 거리 캠페인에서는 3백여 명의 시민들이 동참해 1천8백여 명을 넘겼다. 이에 연말 목표치를 2천5백 명으로 올리는 등 기증 캠페인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불치의 병으로 알려진 백혈병에 타인의 골수기증은 유일한 치료방법이다. 그러나 유전자일치 율이 낮아 현재 환자 80%이상의 치료효과를
아난이 존나라는 사문에게 말했다. “외도(外道)가 분쟁을 일으키려 한대도 같이 싸우지 말라. 분쟁을 일으키면 많은 사람을 이롭게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으로 하여금 온갖 고뇌를 맛보게 할 것이며, 심지어 모든 천인들에게까지도 이로움이 없으며 오히려 고뇌를 주는 결과가 될 것이다.” 가맹점 수수료 인상을 둘러싸고 첨예하게 맞서온 비씨카드와 이마트간 수수료 분쟁이 끝내 파국에 이르렀다. 비씨카드는 당초 주장한대로 9월 1일부터 이마트에 대한 가맹점 수수료를 인상했다. 이에 맞서 이마트는 즉시 비씨카드와의 가맹점 계약을 해지하고 전국 65개 점포에서 비씨카드를 받지 않고 있다. 현금 보다는 카드 사용이 보편화된 요즘 중간에서 골탕먹는 것은 소비자들이다. 문제는 수수료 분쟁이 이 두 업체
무소유를 근본정신으로 하는 출가 승단이 재산을 지니게 된 것은 동북아시아의 경제적 특성에 비추어 불가피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 출가 공동체의 정재로서만 인정하고, 스님들이 사암 등을 소유하는 것을 제한하는 선에서 무소유의 근본정신을 최대한 지키는 타협점을 찾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청정출가승단을 표방하고 있는 조계종의 스님이 개인의 사암을 소유한다면, 그 종지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여타의 승단에서 여러 안전장치를 만들고, 또 긴 세월에 걸쳐 폐해를 줄이는 방편을 강구한 바탕 위에서 소유를 인정하는 것과는 다른 근본적인 정체성의 위기를 낳을 것이며, 그 폐해 또한 비교할 수 없이 크다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계종 소속의 많은 스님들이 개인의 사암을 소유하고 있으
최근 몇 년간 우리 사회에도 기부와 봉사가 일반화되고 있다. 학교는 봉사활동을 의무화하고 성적에 반영하기도 한다. 재난이 발생하면 군인과 종교단체는 어김없이 나타난다. 인력 동원이 용이한 집단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재화의 기부와 용역의 봉사는 사회가 복잡해지고 자본주의적 분배양식에 문제가 발생하면서 등장한 제3부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이는 행정적, 관료적 시스템 밖에 있는 자발성에 기반한 도덕적 활동이다. 이를 제도화, 체계화하려는 시도는 기부는 조세가 되고, 봉사는 강제노역이 되고, 이를테면 복지행정 관료의 수와 복지의 수혜자 수가 맞먹는 복지의 비대를 낳는다. 그러므로 이는 체제와 효율성으로 잴 수 없는 자율성의 영역이다. 절대 왕권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오직 관료 집단만이, 시장이 낙
목숨은 죽음을 피할 수 없고, 만난 사람은 헤어지는 괴로움이 있느니라. 수행하는 사람이 계행을 지키지 않고 삼매를 닦지 않으며, 지혜를 얻지 못하고, 해탈을 이르지 못하면 윤회의 길을 벗어날 수 없느니라. “아이고, 우리 아무개 불쌍해서 어쩌나….” 인척 동생이 갑작스런 사고사를 당해 찾아간 영안실. 분향소를 찾은 사람들이 한바탕 울음을 쏟으며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이 말이다. 한동안 영안실에 앉아 있으니 동생의 죽음만 안타깝고 애통한 게 아니었다. 나이와 신분을 떠나 누구의 죽음이든 죽음은 언제나 못다 이룬 한을 남기고, 살아남은 사람들의 슬픔은 그래서 더욱 커진다. 서러운 눈물이 넘쳐나는 영안실에 앉아 우리네 삶을 생각해 본다.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죽음 뒤의 자취들이 결정되기 때
한국문화재보존학회가 서울, 충남·북 지역의 석조문화재를 조사한 결과는 놀랍다. 풍화, 생물, 구조 등 3개 분야에서 5등급 위험판정을 받은 문화재는 서산 마애불을 비롯해 부여 정림사터 오층석탑, 법천사 지광국사현묘탑, 무량사 오층석탑 등 무려 23건이라 한다. 이들은국보 또는 보물 등으로 지정된 국가의 중요한 문화재여서 심각성을 더해준다. 그런데 더욱 안타까운 것은 주무기관인 문화재청이 올 봄 서산 마애삼존불과 정림사지오층석탑 등 4곳을 정밀진단 대상으로 정했지만 실행에 들어간 문화재는 없다는 사실이다. 최근 언론이 서산 마애삼존불의 현장조사 결과를 집중보도하며 “암석풍화, 절리, 염분, 산성비 등 외부환경에 따른 파괴가 심각한 만큼 신속한 정밀진단으로 구체적인 훼손원인을 빨리 찾아내어 보호대
“집회에서나 단체에서나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다른 사람을 시켜 거짓말을 하게 해서도 안된다. 또 다른 사람이 거짓말하는 것을 용인해서도 안된다.” (숫타니파타) 아테네 올림픽으로 밤을 지새우는 요즘, 한편에서는 과거사 규명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다.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운 경제, 안보, 고구려(발해)사 문제 등 큰 현안에는 거의 식물인간처럼 제 역할을 못하는 정치인들이 때아닌 과거사 문제로 잡음을 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과거사 청산을 주도하고 있는 집권여당의 대표가 부친이 일제시대 일본군 헌병이었다는 행적을 은폐하려 사실상 거짓말을 했다는 의혹마저 사고 있어 어안이 벙벙하다. 국민들은 신기남 의원의 부친이 일본군 헌병 출신이었다고 해서 그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지는
지금 우리 사회는 경제적 불황과 사회갈등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동안 대통령 탄핵정국과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 등으로 국론이 분열되어 갈등을 키워오더니 이제 과거사 청산 문제까지 겹쳐 온 나라가 시끄럽다. 그 와중에 여당의장의 부친에 대한 친일행적이 밝혀지면서 정국은 더욱 혼미해지고 있는 양상이다. 과거사 청산 문제는 우리 민족의 정기를 세우고 정체성과 정통성을 확립하며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도 외면해선 안될 중요한 이슈임에 틀림없다. 독립투사 보다 일제의 앞잡이가 대를 이어 활개를 치고, 독재정권의 타도를 외치며 고초를 겪었던 민주투사 보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양심을 버리고 세상이 바뀌어도 변신을 거듭하며 부귀영화를 누리는 사람들로 우리 사회가 채워진다면 우리의 미래는 정말로 참담할 것이다.
유일한 자식인 딸과 사위로 인해서 퇴직금과 읍내의 집까지를 날려버리고 한심한 노년을 보내는 한 선배를 위로해주기 위해 찾아갔다. 그는 대밭마을의 일가 아저씨네 헌 집에서 노모를 모시고 초등학교 4학년짜리 외손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언덕 위의 허름한 블럭 벽돌집 마당에 들어섰을 때, 그는 현관 앞에서 무슨 일인가를 하고 있었다. 의자 하나가 놓여 있고, 장도리와 시멘트용 못 몇 개가 의자 옆에 있었다. 의례적인 인사말을 하고 난후에야 나는 그가 바야흐로 현관문 위에 자그마한 현판을 걸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죽어갈 날이 멀지 않은 늙은이가 내걸고 있는 옥호로서는 어울리지 않았다. 나는 그를 모시고 횟집으로 갔다. 그는 외손자를 데리고 왔다. 몇 잔의 술에 얼굴이 불콰해진 안기철 선생이 “이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