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age1}선진국을 규정하는 잣대가 1인당 국민소득이 아님은 자명하다. 자원봉사에 대한 인식과 시스템을 보면 국가의 수준을 알 수 있다. 크고 작은 자연 재해나 사고가 일어났을 때 자원봉사자의 헌신적 노력은 아름답기 그지없다. 이타행, 자비행, 보살행을 굵은 가치로 삼는 불교계의 봉사 활동이 분발을 요하는 시점이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복지협의회가 공동으로 조사한 ‘2005년 사회복지 자원봉사 통계연보’에 따르면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한 불자는 1만5528명이다. 개신교 2만7650명, 가톨릭 1만5775명이다. 봉사자 1명의 연간 봉사시간은 불교 33.6시간, 개신교 25.6시간, 가톨릭 31.8시간이다. 1인당 연평균 봉사회수는 불교 9.5회, 개신교 7.1회, 가톨릭 10.5회다. 매월 1
{image1}결전(!)의 날에 내게도 승전을 기원하는 문자메시지가 배달되었다. 뒤풀이로는 중국에서 축하 메일이 2통이 날아왔다. 그럼에도, 나는 ‘토고와 경기에서 져도 좋다고 생각했다. 온 국민이 축구에 희망을 걸었을 나라…’라고 답장 문자를 보냈다. 사활이 걸린 듯이 응원열기가 신록 짙은 유월의 거리를 붉게 물들이고 있는데, 무슨 망발?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한 친구가 충고를 해준다. 방송이 온통 도배를 하고, 스포츠 황금산업에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이 도매금으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 안타까운지, 다른 한 친구는 ‘아 다시 달맞이꽃 피누나/ 공 하나에 미처 버린 조국이여!/ 환장할 시인이여!’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왔다. 누구든 한마디 거들고 있으니, 월드컵 마술에 걸린 것
최근 발표된 2005년 종교인구조사 결과는 불교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10년 사이 종교인구가 늘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인구는 정체를 면치 못하고 있음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이를 계기로 불교계 내부에서는 포교 방법 및 전략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붓다뉴스(www.buddhanews.com)는 포교전략 수립시에 최우선으로 감안해야 할 사항이 무엇인지를 묻는 독자여론조사(6월 1~13일)를 시행했다. △미래 불교의 주역이 될 어린이·청소년 계층 포교 △인구가 밀집돼 있는 도심에 대한 포교 △포교 프로그램의 다양화 △스님들의 포교마인드 고취 △포교방법 다양화 등 5개 항목을 선택지로 제시했다. 57명이 참여한 가운데 응답자의 33%(19명)가 어린이·청소년 포교 강화를 시급한 과제
{image1}미래를 향한 불교의 전진에 적신호가 켜졌다. 통계청 조사 결과에 따르면 특히 청소년 불자는 10년 사이에 16.5%나 감소한 것으로 드러났다. 더구나 청소년 종교인구는 10년사이 49.0%에서 50.6%로 1.6%가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이런 추세로 간다면 미래에는 사찰 등은 단지 문화 유산으로만 남고 불자들은 없는 세상이 오지 않을까 걱정이다. 놀랄 일은 아니다. 인과법으로 보아 당연한 결과이다. 그동안 불교계에서 이루어진 불사들이라는 것을 분석해 보라. 사찰, 불상 등의 불사가 주종을 이루었고, 인재불사, 특히 미래 불자들을 키우는 불사는 상대적으로 정말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우선은 돈이 들어가기만 하고 당장 회수가 안된다는 것 때문에
{image1}사람이 어울려 사는 세상에 이런 저런 분쟁이 어찌 없겠는가. 그래서 법이 있고 우리는 법이 만인에게 평등 공정하고 엄격할 것을 바란다. 그러나 ‘공정’과 ‘평등’에 대한 해석은 당사자의 입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문제는 같은 사안에 대한 판결이 재판관이 바뀌면 달라지는데 있다. ‘법리적 해석의 차이’가 아니고 재판관의 이념이나 철학에 의해 다수가 납득할 수 없는 쪽으로 뒤집힌다면 법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지 않겠는가. 안마사로 생계를 꾸려온 시각장애인이 아파트에서 투신자살 했다, 어떤 이는 온몸에 시너를 끼얹으며 분신을 시도하고, 강물에 투신하고, 고속도로에서, 광화문에서, 복지부청사 앞에서 시위가 있었다. 현재도 마포대교에서 시각장애인들의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5월 2
{image1}오대산 사고에 보관되었다 도쿄대로 건너간 약탈문화재 조선왕조실록 47책을 불교계의 조선왕조실록 환수추진위원회(환수위)와 서울대의 노력으로 되돌려 받는 성과를 거두었다. 귀한 문화재를 돌려받게 된 것은 우리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기쁨이다. 약탈 문화재의 환수는 최근 텔레비전 방송의 오락프로그램에서 이 문제를 타이틀로 삼을 만큼 우리의 지대한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병인양요때 프랑스 군인들이 가져간 외규장각 도서에 대한 반환 협상에서 보았듯이 약탈 문화재의 환수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협상은 1992년 7월부터 시작됐지만 아직도 지지부진하다. 이에 비한다면 이번에 조선왕조실록을 되돌려 받은 일은 괄목할만한 성과이다. 환수위에서는 올 3월부터 도쿄대와 조선왕조실록의
{image1}어떤 과정이었든 어떤 결과였든 그것이 우리에게 교훈이 되지 않는 것은 없다. 이번 5.31 지방자치 단체 선거 과정이나 결과 역시 마찬 가지다. ‘집권 여당의 완패’ ‘한나라 당의 싹쓸이’ 로 표현되는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 수많은 분석과 해석이 뒤따르고 있다. 주로 현 정권 구성원의 독선과 오만, 저급한 통치 스타일이나 세계사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아마추얼리즘, 경제경시 정책 등 국민정서에 역행하는 정치 행태에 대한 지적이 많다. 맞는 말이다. 여권에서도 이점을 처음으로 반성하는 기미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번 선거가 그동안 점진적으로 발전시켜 온 한국의 민주적 선거문화에 새로운 경험과 반성을 더해 주고 있음도 살펴야 한다. 지난 반세기동안 선거 판은 혼탁하고 부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종교인구 조사결과를 보면 두통을 느낄 정도다. 이웃종교인 가톨릭이 지난 10년 동안 증가한 종교인구 237만명의 92.5%를 차지하는 등 폭발적인 신도 증가세를 보였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불교인구는 1072만명으로 전체 종교인구의 22.8%를 차지해 불교가 아직 가장 많은 신자를 가지고 있다고 나타났지만, 연령별 분포도나 한국사회에서의 신임도나 영향력 등을 놓고 볼 때 이런 숫자는 의미가 희박해지기 때문이다. 그동안 천주교가 보여준 불교에 대한 우호적 태도, 전통적 관혼상제와의 유연한 접목 등은 이러한 결과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학자들은 불교의 부진원인을 승려중심의 교단운영과 청렴성 결여, 조직력과 결속력 부재, 복지 마인드 부족 등으로 꼽고 있다. 불교내부에서는 이
{image1}내가 한 달에 한번 정도 찾아가는 미니 식물원이 있다. 갈 때마다 다른 꽃들이 피어있고 잎이 자라 항상 새로운 기운을 느끼는 곳이다. 물속에서 편안하게 자라는 수련 등 연꽃 종류가 있는가 하면 연화바위솔과 같은 다육식물 들은 건조한 환경에서 잘 자라고 있다. 꽃과 잎이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 아름다운 향기로 찾는 이를 즐겁게 하는 애기라일락, 논가나 밭에서 녹비식물로 짧은 생을 마치는 자운영도 대접받으며 천수를 누리고 있다. 여러 나무, 야생초, 야생화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식물원을 보면 참 자연스럽다는 생각을 하게된다. 그러면서 현재 봉직하는 우리 학교의 교육환경은 얼마나 자연스러운가 생각하면서, 요즈음 세간 언론에 다뤄지는 교육소식들을 상기해본다. 언젠가부터 언론매체에 회
한 시민단체가 스님·신부·목사 등 종교인에 대해 과세하지 않는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면서 종교인에 대한 근로소득세 부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시민단체가 종교인으로부터 세금을 걷지 않는 국세청을 ‘직무유기’라는 이유로 고발한 가운데, 국세청 또한 종교인에 대한 과세가 가능한지 여부를 재정경제부에 질의하는 등 내부적으로 과세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관심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붓다뉴스는 5월 10일부터 23일까지 14일에 걸쳐 종교인에 대해 근로소득세를 부과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묻는 독자 여론조사를 시행했다. 139명이 참여한 이번 설문에서 62%인 86명이 종교인에 대한 과세의 정당성을 인정했고, 38%(53명)는 과세가 부당한 것으로 간주했다. 댓글을 통해 파악된 찬
{image1}금어(金魚) 만봉(萬奉) 스님이 입적했다. 세수 96세. 평생을 붓 하나로 붓다의 모음(母音)을 세상에 전하더니, 이제 먼 길을 떠났다. 우리 불모(佛母)의 역사에서 하나의 전환점을 보는 것 같다. 스님은 10대부터 금어 예운 스님의 문하에서 붓을 들었다. 1926년 봉원사로 출가한 이래 금어의 길을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독보적인 길, 그러나 외롭고도 어려운 길이었다. 식민지, 분단, 전쟁, 독재, 민주화의 길을 겪으면서 그리고 서구문화 팽창시대를 겪으면서 전통불화를 지킨 그의 일생은 새삼 경이로워 보인다. 아무리 정부에서 스님에게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 예능보유자로 지정(1971년)하여 기린다 해도 스님의 빛나는 행적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으랴. 나는 지난해
{image1}2006 지방선거의 선거운동이 시작됐다. 거리마다 후보자를 알리는 현수막이 넘쳐난다. 이번 지방선거는 1952년 이후 8차 선거이고 동시선거로는 1995년 이후 4차이다. 전국에 걸쳐 3867명을 선출하는 이번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광역자치단체장, 광역의원, 기초자치단체장, 기초의원, 그리고 광역 비례대표와 기초 비례대표의원 선출을 위한 정당투표로 모두 6표를 행사하게 된다. 기초의회의 비례대표의원은 이번 선거부터 새롭게 도입되는 제도이다. 광역의회와 같이 유권자들이 정당에 대해 투표하고 정당별로 얻은 득표수에 따라 기초비례대표의원이 배정되고, 지역에서 선출하는 기초의원에 대해서도 처음으로 정당공천제가 실시된다. 지역의 광역의원은 선거구당 1명씩 선출하지만 지역 기초의원의 경우 선거구
{image1}조계종 종단 차원의 청소년 단체인 파라미타가 창립 10주년을 맞았다. 미래 불자를 양성하기 위한 전국 규모의 청소년 단체로서, 파라미타는 많은 기대를 모으면서 출발하였고, 또 조계종 청소년 포교 분야를 대표하면서 나름대로 업적을 이루어 왔다. 지속적인 청소년 지도자 양성과 청소년 포교를 위한 기초 자료 집적, 전국 규모의 캠프를 통한 청소년 불자들의 참여 마당 확대 등은 그 대표적인 공헌이라 하겠다. 그러나 과연 파라미타가 종단 차원의 기구라는 위상에 걸맞는 내실있는 활동을 해 왔는가를 묻는다면, 그 대답은 그렇게 긍정적이지 못하다. 그 정도 위상의 기구라면 누가 하더라도 그만큼은 할 수 있다는 정도의 평가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업적으로 든 캠프만 하더라도 종단의 위상을 업
{image1}어린이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뜻은 무엇인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법화경의 가르침을 빌어서 알아보면 ‘여래께서 알고 계신 것을 제시(開)하고 가르쳐서(示) 제대로 알게(悟)하고 여래처럼 되게(入)’하기 위해서이다. 멋있게 나타내면 중생을 구제해서 부처님처럼 맑고 향기로운 삶을 살게 하는 것이요, 조금 진솔하게 표현한다면 나를 알아주는 이들을 많이 만들어서 남이 아닌 우리가 되게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이 맘처럼 쉽지 않아서 인류가 지속적으로 고민해 왔다. 그래서 2천 년 전 동굴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새겨진 글의 내용을 알아보니 ‘요즘 것들은 버릇이 없다’는 내용이라고 한 것 일게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많은 이들이 ‘그래, 그래’하며 마치 여래의 법문을 들은 제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스님은 올해 부처님오신날 봉축기간에 상징성 지닌 몇 가지 행보를 보여 주었다. 천주교 성가정입양원 방문과 5명의 사형수에 대한 수계식, 그리고 봉축문화마당에서의 시각장애 체험 등이 그것이다. 이는 조계종 총무원장으로서는 첫 시도로 앞으로 조계종의 방향성을 보여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image1}성가정입양원 방문으로 이웃종교와의 평화로운 공존을, 죽음에 대한 공포가 남다를 수밖에 없는 사형수들에게 수계함으로써 불교의 진정한 가치를, 시각장애 체험으로 어려운 이웃에 대한 불교의 역할을 강조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동안 타종교에 비해 사회적 역할이 한참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아 온 불교로서는 당연히 지향해 나아가야 할 일들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이 같은 봉축
{image1}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래없는 저출산과 높은 고령화속도에 직면해 있다. 시골 어느 마을은 아기의 울음소리가 끊긴지 오래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경우도 각 가정마다 하나씩만 낳아 잘 기르자는 것이 시대적 조류가 되었다. 심지어 출산을 기피하는 젊은 부부들도 적지 않다고 한다. 한편 출근시간이 지나면 전철에는 노인분들로 가득하다. 소득수준의 상승과 의료혜택에 힘입어 평균수명이 괄목할 수준으로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되면 몇 년 후 우리나라는 고령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960년 6.0명으로 매우 높았다. 그러나 1960년대 초 경제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출산억제정책이 도입된 이래 1983년에 대체인구수준인 2.08명에 도달하였다. ‘인구대체수준’이란
조용헌 교수. 사진=고영배 기자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여 다시한번 불교는 무엇인가 하고 질문해 본다. 시간만 나면 자문자답해 보는 문제이다. 20대에는 ‘깨달음’이라고 생각하였다. 불교는 무엇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스스로 깨달음을 얻는 것을 중시하는 종교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30대가 되니까 약간 변하였다. ‘자유를 얻는 종교’라고 생각하였다. 약간 구체화 된 것이다. 40대가 되니까 다시 변한다. ‘불교는 번뇌를 없
온갖 존재는 실체가 없고 평등할 뿐이다. 만약 온갖 존재에서 안팎을 구분한다면, 이는 마음에 장애가 있기 때문이다. 마음을 떠나 별개의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서울남부지방법원의 한 판사의 권위주의적인 처사로 인해 법원일반직 직원들의 분노가 폭발했다. 당직근무에서 발생한 착오의 원인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직원들이 식사는 물론 화장실도 가지 못한채 7시간 동안 판사로부터 추궁을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법원행정처가 내부통신망에 올린 직원들의 항의글을 삭제하고 접속을 차단하면서 대법원과 법원노조가 대립하는 양상으로 번지고 있다. 법원노조가 “직원을 7시간 넘도록 감금하고도 반성은 켜녕 판사만을 감싸는 행정처의 행태를 두고 볼 수 없다”며 단식투쟁을 시작했고, 사법의 상징 대법원 내에서 이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어린이날과 겹치는 5월 5일이다. 동심(童心)은 불심(佛心)에 가장 가까운 마음이다. 순수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깨침도 순백의 마음으로 되돌아가자는 뜻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순수인가? 순수를 어리석음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순수는 어리석음과는 전혀 다르다. 순수는 선(善)이지만 어리석음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역행하는 죄업이라 할 수 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순수의 세계로 돌아가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잘 아는 ‘천상천하유아독존’의 선언이다. 이 선언은 존재의 주인이 누구이며, 존재사이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가를 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석가모니가 대각을 통해 얻은 예지는 인류사에 등장한 많은 고등종교들과도 사뭇 달랐
최근 붓다뉴스(www.buddhanews.com)에는 친구들과 어울리기 위해 교회에 나가야 하는 자녀 이야기를 담은 어머니 글이 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이 글에는 교회 가겠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느낀 당혹감, 적절한 대처방법을 찾기 위해 고심한 흔적 등이 생생하게 녹아있어 독자들 사이에 적지 않은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관련기사보기] 이 글을 계기로 독자들은 “어린이·청소년 포교에 주력하지 않으면 20~30년 후에는 불교인구가 현격히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부터 수행에 비해 포교가 간과되는 현재 한국불교 풍토에 대한 비판, “포교 원력을 세운 스님들을 불자들이 지원해주자”는 자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목소리로 붓다뉴스 게시판을 뜨겁게 달궜다. 이처럼 이 글이 관심의 초점이 된 까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