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차라리 계(戒)를 지키며 하루를 살지언정 계를 깨뜨리고 백년을 살기를 원치 않는다.” 율사 자장. 신라 조정의 재상 자리를 마다하고 산으로 들어가 정진하던 어느 날, 아름다운 새 한 마리가 과일을 물고 날아와 공양하고, 천인(天人)이 다가와 5계를 주는 꿈을 꾼다. 그리고 636년(선덕여왕 5) 스님은 제자들과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다. 청량산에서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부처님 진신사리 100과와 가사 1벌을 받아 돌아온 스님은 모시고 온 부처님 진신 사리를 오대산 상원사, 태백산 정암사, 영축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에 모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원도 영월 사자산에 모신다. 법흥사다. 법흥사에 가면 일주문을 지나 원음루 앞에 서면 불어오는 산바람이 나그네의 고개를 들춘다. 고개를 들어 바람의 뒤
정암사, 세속과 끊고 청정 수행하란 뜻 정선군, 수마노탑 국보승격 추진 효봉, 지월 스님 등 현대 선지식 수행 정암사는 자장율사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곳이자, 일생을 마친 유서깊은 곳이다. 율사와 대국통으로 권력 핵심에 있던 자장이, 이 산골 오지까지 온 이유는 무엇일까. 선덕여왕 당시 당나라를 다녀온 자장은 핵심 인물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선덕여왕은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등장한 김춘추와 김유신의 견제를 받았다. 이 신진세력은 당 태종을 모델로 하는 유교치국책을 지향했고, 진덕여왕을 거쳐 김춘추가 왕위에 오르면서 자장은 정치적으로 불안해질 수밖에 없었다. 구역불교의 마지막 세대였던 자장의 활동에 제동이 걸린 반면, 신역불교를 받아들인 원효와 의상은 왕성한 활동을 벌였다. 불교계에도 세대교체가
부처님께서 열반하시자 주변의 8개 왕국의 왕들이 부처님의 사리를 받아가고자 구시나가라를 찾았다. 우여곡절 끝에 사리를 8등분하기로 하였는데, 제천의 천왕들과 용궁의 용왕들도 찾아와 사리를 원했다. 결국 부처님의 사리는 하늘과 사람과 용궁으로 골고루 돌아갔다. 이때 여덟 나라에는 저마다 8만 4천 과의 사리가 돌아갔다. 그리고 각자 돌아가 사리를 봉안하고 칠보탑을 세웠다. 진신 사리는 부처님과 동일체로 불상이 조성되는 시기까지 예배의 대상이었으며, 불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후에도 그 의미와 가치가 이어졌다. 사찰에는 ‘적멸보궁’이라는 전각이 있는데, 부처님 사리를 모신 법당이다. 신라 선덕여왕 재위 646년 왕명으로 당나라에 유학 갔던 자장 율사는 청량산에서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 진신 사리 100과와 가사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는 높이 16m해수관음상 화재후 김홍도의 ‘낙산사도’보고 원형 복원 템플스테이·무료국수·다도 등 체험해 볼만 사찰에도 만일 색깔이 있다면 강원도 양양 낙산사는 푸른색일 것이다. 동해의 넘실대는 파란 물결이 바로 눈앞에 있어서이다. 바다라는 빼어난 풍광은 절 특유의 고즈넉함과 어울려 아름다운 경치를 연출한다. 낙산사서 만난 외국인들이 “원더풀(Wonderful)”과 “뷰티풀(Beautiful)”을 연발하는 것도 결코 오버액션이 아니다. 낙산사는 이 처럼 경내 어디서나 조금만 높이 올라가면 바다가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 해송(海松) 숲길을 따라 사찰 안으로 들어갈 때만 해도 깊은 산자락에 들어서는 듯했다. 하지만 오봉산 중턱 원통보전 앞에 서니 시원스레 동해바다가 펼쳐진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삼산면 매음리 629번지. 강화도 옆 석모도. 섬에서 다시 ‘섬’이라고 부르는 그 곳을 오늘은 ‘산’이라 부른다. 낙가산(洛迦山). 그 이름은 관세음보살의 상주처인 보타락가산에서 왔다. 그곳엔 관세음보살을 모시고 있는 도량 보문사가 있다. 남해 보리암, 동해 양양 낙산사와 함께 3대 해수관음도량이다. 보문사에 가면 낙가산 보문사. 관세음보살이 상주하고 있는 보타락가산의 ‘낙가산’은 바다 가운데 솟은 산을 말한다. 보문사가 있는 석모도는 작은 섬이다. 앞서 말한 대로 ‘낙가산’이다. 도량을 열었던 회정 스님이 생각나는 대목이다. 스님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것이 아니라 관세음보살이 계신 곳을 찾은 것이다. 그 낙가산이 시작되는 곳에 문 하나가 열려 있다. ‘보문(普
“관세음보살.” 힘들어 고단할 때. 깊은 한숨과 함께 그의 이름을 불러보지 않은 사람은 중생이 아니리라. 처마 끝에 매달린 풍경(風磬)처럼 늘 중생의 입에 걸려 흔들리는 말, 관세음보살. 어둠에서 깨는 날까지,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날까지 우리는 관세음보살을 불러야 할 것이다.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상주리 금산 남쪽 봉우리엔 관세음보살의 도량이 있다. 푸른 남쪽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오는 해수관음도량이다. 양양의 낙산사, 강화의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수관음도량이다. ? 보리암은 683년(신문왕 3) 원효 스님이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했다. 그때 암자의 이름을 보광사라고 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이곳에서 왕조를 열기 위해 백일기도를 올렸다. 태조는 원이 이루어진다
해맞이 일품 명소로 자장율사가 창건 일주문 돌기둥엔 ‘정동’ 알리는 글 새겨져 세계 유일 청자 오백나한상 나한전 봉안 철분 함유된 등명약수 부인병 효험 입소문 계사년 새해가 밝았다. 새해 첫 날이면 동해의 이름난 일출 명소엔 인산인해를 이룬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이중 매스컴의 시혜를 톡톡히 입은 곳은 분명 정동진이다. 고현정이 주연한 로 일약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정동진은 서울의 정동 쪽에 있는 ‘진(津)’이라는 뜻이다. 진은 나루나 나루터를 의미하는 말이다. 정동진의 인기와 더불어 함께 여행객들의 발길을 잡아 둔 사찰이 있다. 바로 등명낙가사다. 겨울 바닷가 인근의 사찰은 각별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파도 소리뿐인 한적한 바다와 고즈넉한 절집이 어우러진 정취는 한겨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