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해곡 스님 통일 염원하며 창건 와불, 고행상, 조경 등 독특한 가람 연 30만 외국관광객 방문, 태국 20만 인도 스님이 보내준 나무로 와불조성 “와우정사 불사 아직 끝나지 않아” 마지막. 그 말 앞에서 유·무정을 가리지 않고 모든 것은 숙연해진다. 더 이상 체감할 수 없다는 것, 그것은 가깝게는 추억의 시작이며, 멀리서는 역사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모든 것의 마지막 모습은 언어로 해석되기 보다는 의미로 기억된다고 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부처님의 마지막 모습은 그 어느 것보다 인류에게 의미 있는 ‘마지막’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 마지막 모습은 열반상(涅槃像), 즉 와불상(臥佛像)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경기도 용인시 연화산에 자리 잡은 와우정사에 가
서해안서 새로 떠오는 관음성지 명성 매일 정오 대웅전 부처님 지붕 위로 현현 10m 금불로 만든 ‘열반와불상’ 조성해 심신을 모두 놓아두고 편안하게 쉬고 싶은 도량. 경내서 서해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절. 바로 태안반도 끝자락에 위치한 보타락가사이다. 대개 우리나라 해안 사찰에는 관음상이 웅대한 자태로 서 있다. 3대 관음성지라는 동해의 낙산사와 서해의 보문사, 남해의 보리암에도 예외 없이 관음보살상이 있으며, 이외에도 부산 기장군 용궁사와 강릉 정동진 등명낙가사에도 또 이곳 태안 보타락가사에도 있다. 특히 이런 관음상은 해수관음상이라 해서 ‘바다’로 상징되는 사바세계서 헤매고 있는 중생들을 구원하는 존재로 여겨진다. 불경에 의하면 관세음보살님은 보타낙가산 해안가 절벽에 항상 계신다
척박한 땅에 자라 더욱 고운 색채 순창의 2대 자랑거리 강천산 풍경 신라 887년 창건… 암자 12채 있던 대찰 용이 승천하는 지세로 용천사라고도 불려 기봉, 괴석 어우러진 단풍 명소 전북 순창 강천사의 가을 단풍은 내장사, 백양사 단풍에 뒤지지 않을 만큼 곱다. 단풍 중에서도 척박한 땅에서 자란 단풍이 아름답다 했는데 바위틈에 힘겹게 뿌리내리고 가지를 뻗은 강천산의 단풍도 바위틈에서 자라 그런지 붉은 빛이 뚜렷하다. 강천산(584m)은 고추장과 함께 순창의 2대 자랑거리다. 순창읍에서 10km정도 떨어져 있는 작은 산이지만 도처에 기봉이 솟아 있고 수많은 계곡과 기암괴석, 봉우리가 첩첩하게 어우러져있다. 계절마다 다른 산새를 볼 수 있고 크고 작은 수많은 바위 사이로 폭
고구려서 온 아도화상이 창건한 삼국 사찰 삼신불괘불탱, 부도 등 국보 및 보물 다수 월인석보판본도 보존…한글 연구 중요 자료 매년 영규대사 및 호국의승 기리는 추모재 갑사는 ‘으뜸 甲’자를 쓸만큼 삼국시대의 중요사찰중 하나였다. 추갑사라는 명성에 걸맞게 해마다 11월초 가을이면 주변이 오색단풍으로 곱게 물들며 장관을 연출한다. 1975년서 1983년까지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수필, 이상보님의 '갑사로 가는 길'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갑사의 11월 초순은 단풍이 절정이다. 추갑사(秋甲寺)란 말이 그냥 나온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황홀하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연천봉 아래 위치한 갑사는 계룡산국립공원 내 아홉 개 계곡 중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으로 유명하다. 공주에서 19킬로미터 떨어져 있고
신라 진덕여왕 7년(653년) 자장 스님 창건 한국전쟁 이후 제 3교구 본사로 승격 이관 지역 사회복지사업에 매진, 새바람 일으켜 1995년 寺名 첫 머리 ‘神’서 ‘新’으로 바꿔 화려한 가을이다. 형형색색의 단풍 때문이다. 산은 온통 노랗고 붉게 치장해 ‘만산홍엽(滿山紅葉)’의 절경을 선사한다. 그래서 이맘때면 화려하게 수놓은 단풍여행에 나서는 인파로 북적댄다. 10월의 설악 단풍은 가을철 최고의 볼거리로 손꼽힌다. 웅장한 산과 골짜기를 따라 곱게 물든 단풍은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다. 울산바위, 흔들바위 등 설악산 명소로 가려면 거치는 곳이 조계종 제 3교구본사인 신흥사다. 사찰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불상이 반긴다. 크
비로자나불 상주하며 지혜와 자비 전해 앉은뱅이 전설 얽힌 ‘돗자리’ 눈길 김구 선생 기리는 기념관 경내 세워져 ‘춘마곡 추갑사’는 말이 전해 질 정도로 봄의 경치가 뛰어나다는 마곡사. 완연한 가을에 찾은 마곡사는 봄 풍경에 버금가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었다. 태화산 일대의 소나무 숲이 이어주는 아름다운 길을 따라 가다보면 금세 산굽이가 이어져 어느새 사찰에 닿게 된다. 굽이굽이 길에 실려 흔들려 가는 맛이 또 다른 정취를 낳는다. 마곡사는 사계절의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입구에서 내리면 산사의 호젓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 마곡사 만의 장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마곡사가 위치한 절묘한 자리 덕분이기도 하다. 마곡사가 있는
동양 최대 소조삼존불 등 성보 다수 김시습, 설잠 스님으로 말년 기거 예로부터 정토길 여는 ‘광명지혜’ 전해 무량(無量). 한없이 그지없고, 측정할 수 없는 만큼을 뜻하는 이 말은 극락세계의 아미타 부처님의 광명이 한량이 없어 무엇으로도 셀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래서 무량이란 이름이 붙은 사찰은 보통 극락정토를 염원하는 이들이 이상향으로 구성한 곳이다. 부여 만수산(萬壽山) 기슭에 자리한 무량사는 바로 서방 극락정토를 가기를 원하는 이들의 마음이 하나로 모인 곳이다. 무량사가 위치한 산의 명칭인 만수(萬壽) 또한 무병장수와 함께 극락을 의미한다. 서방정토를 의미하기에 사찰에 흐르는 분위기는 장엄하면서도 고요하다. 퇴색된 단청을 그대로 놔두어 오히려 고즈녁한 분위기를 뽐낸다.
중국 청량산 닮은 곳에 자장율사가 창건 숭유억불 시대에도 불교경전 발간한 곳 신비로운 분위기 풍기는 단풍나무 숲 유명 지난 밤 내린 비로 인해 기온이 뚝 떨어졌다. 가을의 문턱에선 나무들의 가을 준비가 부산하다. 여름동안 짙푸른 신록을 뽐내던 문수사 단풍나무들도 가을 옷을 갈아입을 준비를 마쳤다. 문수사가 자리한 청량산은 문수산이라고도 불린다. 이웃한 전남 장성에서는 축령산 혹은 취령산이라고도 부르고 있다. 축령산이나 취령산은 부처님께서 설법하시던 영축산에서 따온 이름이고 청량산이나 문수산은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도량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청량산은 해발 620m 남짓한 작은 산이지만 노령산맥의 중심부에 있어 남으로는 전남 영광, 동으로는 장성, 북으로는 정읍의 한가운데 우뚝
혜소국사 7나한 설화 전해지는 도량 어사 박문수 나한기도로 과거 급제 입시철이면 학부모 기도행렬 이어져 임꺽정·궁예 등 역사 얽힌 설화 많아 “뱉어낸 듯 붉은 해가 푸른 산에 걸려 있고/ 기러기는 자로 잰 듯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지네/ 나루를 찾는 나그네 발걸음은 응당 급히 재촉하고/ 절로 돌아가는 스님의 지팡이는 한가롭지 않네/ 초원에서 풀 뜯는 소 허리 가운데 그림자 띠 둘렀고/ 댓돌 위에 서방 기다리는 아낙의 쪽진 머리 뒤로 처지네/ 고목으로 저녁 짓는 남쪽 마을에 푸른 연기가 올라가고/ 나무하는 초동은 즐거운 듯 풀피리를 불고 있다.” 안성 칠장사에서 하룻밤 묵은 인연으로 장원급제한 어사 박문수가 과거시험에서 써냈던 ‘몽중등과시’다. 수차례 과거 낙방 이후 마지막이란 각오로 과거시험을 치르고
350년 고려 각진국사가 창건 비구니 선방 ‘백암선원’ 유명 주변에 5천그루 비자림 조성 사찰음식 템플스테이 인기 백두대간에서 나온 노령산맥이 남서쪽으로 뻗다가 호남평야에서 솟아 오른 높이 741m의 명산 백암산이 된다. 백암산은 백학봉과 상왕봉, 사자봉 등의 기암괴석이 많고 고불총림 백양사가 있는 산으로 알려졌다. 전남 장성군 백암산(白巖山) 끝자락에 둥지를 튼 고불총림 백양사(古佛叢林 白羊寺). 일주문에서 백양사 경내까지는 1.5km. 차로 그냥 지나치면 5분이면 지날 이 길을 걸어서 올라가면 좋다. 아기단풍나무와 벚나무가 양편으로 늘어선 이 길은 ‘한국의 가장 아름다운 길 100선’과 ‘가장 걷고 싶은 길’에 선정돼 있다. 함박눈이 내리는 겨울엔 눈 터널로, 새싹 돋는 봄엔 꽃 터널로, 단
신라시대 창건된 봉선사 말사 조선후기 왕실 후원으로 사세 번창 김시습 10년간 머물렀다고 전해져 수락산 바위 깎아 만든 미륵불 ‘눈길’ ‘바위가 벽으로 둘러치고 있으니, 물이 굴러 떨어져 수락(水落)이요, 모래가 눈처럼 쌓였으니, 골짜기의 물이 맑아 구슬물이다. 바위들이 서로 걸터 앉았으니 이름하여 향로, 경천의 기봉을 이룬다.’ - 〈내원암 칠성각 신건기〉 서울시와 의정부시, 그리고 남양주시에 걸쳐 있는 수락산(水落山)은 북한산, 도봉산, 불암산과 더불어 서울 북부지역의 4대 명산으로 꼽히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해발고도 638미터로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제법 덩치가 크고 우람한 암산이다. 실학자 신경준은 〈산경표〉에서 수락산을 ‘백두대간에서 뻗어 내린 한북정맥이 흐른다’고 표현하기도
삼국시대 검단선사가 창건 고려, 조선 전쟁 거치며 전각 파괴 고려후기 대웅전 중수 등 부흥기 명부전과 응진전 한지붕 두가족 ‘눈길’ 선운사를 거쳐 참당암 가는 길은 계절마다 슬며시 옷을 갈아입는다. 봄이면 녹차 밭 연초록색으로 갈아입고 초여름이면 옅은 노란 상사화 빛으로, 가을에는 붉은 꽃무릇 색인가하면 어느새 중후한 중년 여인의 옷자락과 닮아 있다. 삼복 중에 찾아가는 참당암길은 차 한대가 지나갈만한 넓직한 길은 초록의 터널길을 지나야 한다. 잠시 더위를 식히려 도솔천 물이라도 한줌 쥘라치면 금방이라도 쪽빛으로 물들 것만 같다. 선운사의 산내암자인 참당암은 애초 선운사의 본찰이었다. 지금은 조계종 24교구 본사인 선운사보다 먼저 창건되었다. 1천년의 세월이 흘러 선운사의 산
봄·가을이면 음악회와 단풍축제 열려 관음 바위 얽힌 전설 고스란히 전해져 서울시 문화재 ‘목조보살좌상’ 눈길 좌선대에 앉으면 서울 전경 한눈에 비바람이 몰아친 후 썩은 가지들을 훌훌 털고선 나무들의 기상이 더욱 싱그럽다. 장맛비가 잠시 그친 8월 서울 인근의 작은 사찰을 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곳이 있다. 바로 북한산 심곡암(深谷庵)이다. 심곡암은 북한산 동편 형제봉 아래 자리하고 있는 자그마한 암자다. 국민대를 지나 북한산 입구 긴골을 따라 올라가면 그 끝에 심곡암이 있다. 깊은 계곡인 심곡(深谷)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심곡암은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 안에 위치해있다. 지금은 길이 나 있어 힘들지 않게 갈 수 있다. 정릉의 북악터널 입구에서 올라가는 길 옆에는 맑은
659년 원효대사가 ‘원통암’으로 창건 2009년 화재 소실 대웅전 최근 복원 매년 연말 일출 기도객으로 불야성 겨울에도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지 않을 정도로 따뜻한 남쪽 나라 전라남도 여수(濾水)는 ‘물이 좋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미항이자 손꼽히는 휴양지로 여수의 바다는 유인도 51개와 무인도 269개 등 총 317개 섬이 연꽃처럼 내려앉아 그야말로 넓은 바다에 꽃이 피어난 듯 아름다움의 극치를 보여 준다. 강풍이 세차게 몰아치는 한겨울에도 언덕에 붉은 동백꽃이 피어나는 인상적인 오동도를 비롯하여 317개의 연꽃이 그려 놓은 한려해상국립공원, 검은 모래의 만성리 해수욕장, 그리고 임진왜란 때는 왜적을 막아 낸 군사적 요충지로 충무공과 관련된 유적지가 많으며, 2012년 여수세계
신라시대 철감선사 도윤 스님이 창건 한국전쟁때 피해 없어 옛모습 간직 토속신앙과 불교 융합된 모습 전해져 자연과 따로서지 않고 일점을 더하듯 세워져 어느새 스스로 자연이 된 암자 약사암. 암자는 봉우리를 품고, 봉우리는 암자를 오랜 지기로 마주보는 모습에 보이는 이의 가슴이 저절로 따뜻해진다. 약사암은 이렇듯 서로 다독이며 어울려 살아가라는 부처님 말씀을 말 없이 전해준다. 약사암은 호남의 진산인 무등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 ‘無等’, 비할데 없이 높은 산이자 평등을 상징하는 불교에서 비롯된 이름을 지닌 산이다. 약사암의 주소는 광주광역시 동구 운림동이다. 지번으로는 도심 속에 있는 듯 보이지만 무등산 속에 숨어있는 작은 암자다. 증심사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 증심사 일주문이 보이는 갈림길에서 왼쪽
신라 선덕여왕 14년 원효 스님 창건 〈반야바라밀다심경〉 대웅전에 보관 폭포, 샘, 동굴 등 원효대사 흔적 곳곳에 ‘천천히 생각하며 걷는다’는 뜻을 가진 소요산(逍遙山) 기슭. 이 곳에는 원효 스님과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전해지는 자재암(自在庵)이 있다. 원효 스님은 잘 알려진 것처럼 무애자재(無碍自在)의 경지를 몸소 보여줬던 이다. 속세를 뒤로 하고 출가했던 원효 스님이 요석공주를 만나 설총을 낳고는 또 다시 뜻을 세워 이곳 자재암에서 정진했다. 그리고는 스스로 파계승을 자처하며 거지 행세로 세상의 저잣거리를 구석구석 떠돌았다. 원효 스님은 세속의 더러움에 발 디디더라도 일미(一味)의 맑고 깨끗한 행을 잃지 않는 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처념상정(處染常淨)하는 연꽃처럼 사는 것이 힘든
1675년 조선시대 위봉산성과 함께 건립 19세기 말경 조성된 만불탱화 일화 유명 조선불교 초대교정 박한영 스님 출가사찰 전북 완주 태조암(太祖庵)은 지금은 위봉산이라 불리는 주출산 정상인 되실봉(524m) 아래 위치해 전주 시내와 드넓은 호남평야를 굽어보고 있다. 예로부터 되실봉을 중심으로 위봉사쪽에 비가 내리면 위봉폭포로 흘러가고, 태조암쪽에 내리는 비는 송광사앞으로 흘러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산 정상 부근에 자리하고 있다. 태조암이 창건된 것은 1675년 위봉산성이 축성될 때다. 1592년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면서 전주 경기전에 보관된 조선 태조 이성계의 어진과 조경묘의 전주 이씨 시조 위패를 피신시키기 위해 쌓은 위봉산성안의 행궁과 함께 태조암도 창건됐다. 실제로 조선말(1894년
신라고찰 천불사 주춧돌 옮겨와 중건 1980년 서정주 등 불자 마음모아 양측에 계곡끼고 아름다운 가람배치 긴 산골의 길을 지나 신록이 찬연한 곳에 위치한 천불사. 서울에서 약 3시간 가량 구불구불 이어진 계곡길을 따라 가면 나오는 숨겨진 보고(寶庫)다. 철원군 천불산에 신라 법흥왕 17년(530년) 혜각 스님이 창건한 화천 천불사. 현재 군법당인 천불사가 자리하기까지에는 긴 세월이 필요했다. 신라고찰인 천불사는 전소된 이후 조선 인조 16년(1638년)에 혜운 스님이 중건했다. 당시만 해도 천불사는 작은 규모로 천불암이라 불렸다. 천불사가 제대로 된 사격을 띄게 된 것은 고종 31년(1894년) 중수되면서 부터다. 하지만 천불사는 다시금 수난을 겪게 된다. 바로 민족 상잔의 비극 한국전쟁이다.
3차례 소실, 1969년부터 본격 불사 대웅전 안 목조관음좌상 문화재 지정 대불, 현무암 불상 참배객들에게 ‘눈길’ 한라산 650m 기슭에 자리한 조계종 제 23교구 본사인 관음사는 제주의 30여 사찰을 관장하는 제주 불교의 중심도량이다. 그 힘의 근원은 제주의 불교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관음사는 불교전래 초기에 창건돼 발전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증거는 제주의 여러신화, 전설, 민담에 관음사를 괴남절(제주 방언으로 관음사), 개남절, 동괴남절, 은중절이라고 민간에 유포돼 전래해오는 것이다. 구전에 따르면 고려 문종때(1046~ 1083) 창건됐다는 설이 있고, 조선시대에도 존재한 사찰이라는 기록이 남아있다. 그러다 조선시대인 1702년 이형상 목사에 의해 제주지역 사찰 전부가 훼철되면서 관음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 전설 깃든 고찰 폐사 후 1990년대 들어 본격 복원 시작 고증거친 3천여평 구품연지와 구화루 장관 제주 중문 앞바다는 서해쪽 해류가 흐르는 지역이다. 이 해류는 제주 남쪽 해협으로 올라와서 중국 요동반도까지 올라갔다가 다시 중국대륙연안을 따라 쿠로시오쪽으로 흐른다. 통일신라때 해상왕 장보고는 이 해류를 따라 해상활동을 하면서 물자공급을 받고 안전한 뱃길을 기원하기 위해 기도처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것이 제주 하원 법화사를 장보고가 창건했을 것이라는데 무게가 쏠리는 이유다. 특히 산둥반도 적산촌 법화원과 청해진 법화사, 그리고 제주의 법화사가 당시에 주존불로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었고 사찰의 지세와 위치, 전경 등도 다른 법화사와 일치하고 있을뿐더러 신라시대 사찰에 보이는 기단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