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후반 활동한 조각승 호남 색난, 영남 승호와 다른 계보 목불을 주로 조성 문헌 통해 활동 시기·지역 가늠 경기와 영서 중심으로 활동하며 조각승 혜희를 계승한 직계 제자 상주 운봉사 괘불 조성 시주 17세기 후반에 호남의 색난(色難) 스님, 영남의 승호(勝湖) 스님 등과 같은 시기에 중부지방인 경기(京畿)와 영서(嶺西)에서 활동한 금문(金文)스님은 17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혜희(惠熙, 慧熙) 스님의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彫刻僧)이다. 금문 스님은 스승 혜희와 마찬가지로 주로 나무로 불상을 제작하면서 불교공예품 등을 중수였다. 현재 금문 스님이 우두머리가 되어 만든 목조불상은 전국에 걸쳐 3건 20여 점이 조사되었다. 아직까지 금문 스님은 언제 태어나서 열반에 들었는지 등 조각승이 된
17세기 후반 불교조각사 거두 호남 활동한 색난 스님과 쌍벽 목불 아닌 佛石으로 불상 조성 문헌 통해 활동 시기·지역 가늠 경주 기림사 중심으로 활동하며 전국 걸쳐 석불 수백점 만들어 기림사·수도사 시주자 참여도 17세기 후반에 호남에서 활동한 색난 스님과 쌍벽을 이루는 영남에 거주한 조각승은 승호(勝湖, 勝浩)스님이다. 승호 스님은 색난 스님과 달리 경주에서 산출되는 불석(佛石)으로 석불을 제작하였다. 불석은 일명 경주석(慶州石)이라고 부르는 돌로, 수분을 먹으면 조각도로 조각할 수 있지만, 수분이 없어지면 아주 단단한 특징을 가진다. 흔히 노스님들이 석고로 만든 불상이 전각에 봉안되어 있다면 대부분 불석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 승호 스님이 만든 석조불상은 전국에 걸쳐
솜씨가 교묘한 목장인으로 추앙 전국 걸쳐 수백 점의 불상 제작 조선후기 불교조각사 한획 그어 생몰 미상… 발원문·사적기 통해 색난 스님의 활동 지역 등 가늠 주로 호남 지역 중심 불상 조성 고흥 능가사 주석·부휴문도 추정 조선 후기(1600~1910)에 불교조각사의 최정상에 있는 작가는 색난(色難) 스님이다. 당시 대부분의 불상을 만든 조각승들을 화원(畵員), 양공(良工) 등으로 불렀다. 하지만 색난 스님은 달랐다. 일부 문헌을 살펴보면 색난 스님은 솜씨가 교묘(巧妙)한 목수(木手)라는 의미로, ‘교장(巧匠)’이나 ‘조묘공(彫妙工)’으로 기록돼 있다. 이만큼 당시에도 색난 스님의 조각 기술의 명성이 높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색난 스님이 만든 불상은 전국에 걸쳐 20
임란 거치며 조선후기 불사 증가 불상 조성참여자 모두 출가 스님 18세기 이후 수요 줄며 뒤안길로 불상 조각승 예술 세계 조명함은 불교문화재 생명력 불어넣는 작업 현진, 수연, 색난, 진열, 계초…. 다소 생소한 이들 스님의 이름을 아는 독자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 스님들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끝나고 사찰을 중건할 때 법당에 모실 부처님을 조성한 조각가들이다. 이들이 조성한 불상은 10여년 전부터 보물이나 유형문화재 등으로 지정될 정도로 문화재적 가치가 밝혀졌지만, 정작 불상을 만든 스님들은 여전히 우리들 관심 밖에 있다. 조선 후기 불교조각은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에 제작된 불교조각에 비해 미적 완성도가 떨어지고, 300년 동안 유사한 형태를 반복적으로 만들어 양식적인 변천이 없다는 선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