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55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전국의 사찰이 연등과 장엄등 제작 등 본격적인 봉축행사 준비에 들어갔다. 사진은 4월 14일 안양 한마음선원 청년회원이 제등행렬에 동참할 보현등에 채색을 하고 있는 모습.
까마득히 먼 옛날에 우리도 모르는 우리를 알아보시고, 길 위에 있는 길 일러주신 부처님. 우리 모두가 당신과 같다고 하셨지만 2 천년이 넘도록 부처님처럼 사는 이를 볼 수가 없다. 그 많은 경전을 찍고 그 많은 도량을 지었음에도 세상은 아직도 어수선하기만 하다. 조석으로 종을 치고 북을 울려도 지옥은 늘 지옥이다. 절마다, 길마다 연등이 걸리기 시작했다. 부처님오신날이 또 다가온다. 어느 해 이맘 때 수덕사 마당을 걸었던 적이 있다. 절 마당에 걸린 연등이 봄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오후의 햇살이 짙어 가고 700년 묵은 법당 안에는 행자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그래도 부처님 다녀가셔서 이 세상 이만하지 싶었다. 부처님 그리운 이 시절, 오늘도 절 마당에 연등을 매달고 다시 한 번 서원한다. 부처님
“MB정권은 민족문화에 대한 천박한 인식과 반생명적인 정책으로 성보의 보존관리가 불교를 위한 특혜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조계종 제7교구 예산 수덕사(주지 지운)는 4월 9일 1000여 사부대중이 한자리에 모여 민족문화수호 및 자성과 쇄신을 위한 제7교구 본ㆍ말사 사부대중 결의대회를 개최했다. 주지 지운 스님은 인사말에서 “현 정권의 출범 이후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행위와 특장종교에 편향적인 공직사회의 불교 폄훼 행위는 한국불교가 처한 절체절명의 외부적 위기 상황”이라며 ““MB정권은 백제의 미소로 널리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이나 보원사지, 백제재현단지 내의 능사 등 불교문화유산을 한낱 구경거리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스님은 “정부는 신앙의
서운암에서 된장 한 통 사들고 내려오는 길이었다. 양산 통도사. 도량엔 눈부신 햇살이 넘치고 포근한 봄바람이 불고 있었다. 아득한 태양의 끝에서 새싹들은 돋아나기 시작했고, 꽃잎만한 입으로 외치는 산새들의 지저귐이 연둣빛 숲을 흔들었다. 23.5도의 자전축이 만들어낸 통도사의 4월은 그렇게 포근하고 눈부셨다. 걸어야 했다.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는 그 길을 걸어야 했다. 누군가는 새들이 흔들어 놓은 연둣빛 숲속을 걸어야 했다. 겨울에 써놓은 시를 덮고 새싹들이 움트는 오솔길을 걸어야 했다. 걷는 동안의 일들을 사랑해야 했으며 걷는 동안의 생각들을 소중히 간직해야 했다. 자연이 주는 사색의 기회였다. 사색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갔던 소로우는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삶을 나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기 위함이었
며칠은 가랑비가 날짜를 휙휙 넘기더니 며칠 째 꽃샘추위가 날짜를 붙들고 섰다. 3월의 보폭은 예측불허다. 며칠이 휙 지나간 것 같을 때도 있고, 몇 날이 그대로인 것 같을 때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쯤이면 꽃이 피기 시작한다. 꽃을 볼 수 없는 곳에서 차를 몰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꽃을 볼 수 있는 시기가 3월이다. 마치 차를 모는 몇 시간 동안 꽃이 핀 것 같다. 고창 선운사. 돌담 너머로 노란 산수유가 피었다. 며칠 붙들렸던 날짜가 다시 도망가기 시작했다. 다시 차를 몰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꽃은 질 것이다. 그랬다. 차를 모는 몇 시간 동안 돌담 너머 노란 산수유는 모두 져버렸다. 그랬다. 그 해 삼월은 그렇게 지나갔다. 다시 3월. 곧 꽃이 필 텐데 슬픔 속에 서게 된 이들이 있다. 잠 못 이루는
낮달이 기울면서 도량엔 긴 그림자들이 내려 안기 시작했다. 밥 냄새 물고 올라간 후원의 연기가 여기저기 밥 때를 알리고 다녔다. 도량 위 차밭에선 백구 한 마리가 고양이를 쫓고, 이 고랑 저 고랑으로 도망 다니던 고양이는 간신히 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숨을 돌렸다. 앞뒤 없는 풍경소리가 도량을 흔들고, 경을 넘기던 스님의 손끝에는 어느새 목탁이 걸려있다. 멀리 차 밭에서 백구가 짖는다. 백구가 생각이 많아진 것 같다. 나무 밑을 떠나지 못하고 계속 짖어댄다. 나무에 매달린 고양이는 백구가 돌아가기만 기다리고 있다. 후원의 밥 냄새도 도량의 그림자도 점점 짙어만 갔다. 공양하고 나오니 백구도 고양이도 보이지 않았다. 어디선가 백구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떻게 된 걸까. 백구와 고양이는…. 보고 들은 것
늘 봄 소식은 꽃이 먼저 전해온다. 2월 20일 부여 무량사에는 목련이 꽃봉오리를 부풀리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섰으면 금방이라도 꽃이 필 것만 같다. 곧 하얀 꽃을 틔울 목련이 영산전 마당에서 멀리 5층석탑에게 봄소식을 전하고 있다.
하루가 저문다. 기억될 수 있는 하루였을까. 기억될만한 하루는 누구에게나 그리 많지 않다. 새로운 하루가 오늘의 하루를 잊게 하고 또 다른 하루가 그 하루를 잊게 한다. 짙어진 어둠 속에서 법고 소리가 들려오고, 대중은 각자의 ‘하루’를 들고 법당에 든다. 힘겹게 하루를 살았지만 보고 들은 만큼 가슴은 채워지지 않았고, 가슴을 채우고 있던 생각들은 세상을 채우지 못했다. 부처님을 부르는 대중의 목소리가 파도처럼 부처님 전에 부딪히고, 지옥으로 떠났던 종소리가 파도처럼 돌아온다. 무릎 밑의 좌복보다도 작은 가슴을 오늘도 채우지 못한 채 하루를 또 잊어야 한다. 이천 오백 년 전의 잊히지 않는 그 하루가 오늘도 대중의 무릎 위에 놓이고, 기억될 수 있는 하루를 위해 대중은 다시 부처님을 부른다. 어느 해
잠들 시간도, 깨어날 시간도 따로 없는 절, 서울 견지동 조계사. 산문 밖에선 고단한 차들이 새벽 범종소리를 물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백발의 할머니는 차가운 향에 불을 붙인다. 달빛이 할머니의 그림자를 끌고 법당으로 가고, 법당 지붕 위에선 잔설이 빛난다. 산새소리도, 걸어 들어갈 숲길도 따로 없는 절, 서울 견지동 조계사. 잠들지 못하는 부처님 곁에서 참새들이 목탁소리를 듣고, 차가운 좌복 위에 쓰러진 이마엔 이내 땀방울이 맺힌다. “관세음보살” 표주박 걸린 수각도, 거미줄 지나간 부도밭도 따로 없는 서울 견지동 조계사. 밤새 달빛에 빛나던 잔설 위로 아침 햇살이 찾아오고, 석조의 빌딩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풍경을 흔들어댄다.
“선림원은 이론과 실참 수행의 조화를 통해 전통 수행법인 참선을 체계적으로 이해하도록 했습니다. 선림원이 불교의 사회적 위상 향상에 일조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선림원 원장을 맡은 조계사 주지 토진 스님은 선림원에 대한 높은 기대를 나타냈다. 2년 4학기 과정으로 열리는 ‘선림원’은 불교와 선에 대한 이해와 참선 입문 프로그램, 특강으로 구성된다. 매 학기별 법문에는 전국 선원의 방장ㆍ조실, 선원장 스님이 참여하며 법문과 참선입문 프로그램이 병행돼 이론 교육과 실참 수행이 조화를 이루도록 구성했다. 선림원은 사회 지도자들이 참선 교육에 참여해 개인의 변화와 사회적 실천을 통한 삶의 질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토진 스님은 선을 알리고 교육하는 지속가능한 단체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고스님,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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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새벽별 아래서 홀로 알게 된 세상이 길을 걷게 하고, 고독한 시간을 견디며 끊어낸 생각들은 아득한 시간을 건너온다. 그의 이름은 잊히지 않았고, 그 날 새벽하늘에 빛나던 별빛은 오늘도 빛나고 있다. 작년 12월 16일. 새벽별이 진 지리산 자락엔 그의 이름을 기억하는 이들이 길을 걷고 있었다. 그들이 홀로 알게 된 세상은 어떤 것이었을까. 무엇이 그들을 길 위에 세웠을까. 길 위에 방부를 들인 납자들의 화두는 ‘이뭣고’도 ‘뜰앞에 잣나무’도 아니었다. 그들의 화두는 ‘위기의 사바’였다. 고독한 시간이 길 위에서 그들을 기리고, 그들이 끊어낼 생각들이 아득한 시간을 시작하고 있었다.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아득한 시절, 홀로 알게 된 세상 때문에 고독해야했던 그를 떠올리며 새벽길을 걷고
“산을 내려가면 큰절이 있잖아요? 큰절 아래로 내려가면 또 뭐가 있죠?” / “사바세계.” / “사바세계?” / “스님은 사바세계에서 왔어요?” / “그럼. 해진이도 거기서 왔지.” / “큰스님두?” / “응.” / “왜 모두가 사바세계에서 왔죠?” 20여 년 전에 개봉됐던 영화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에서 어린 해진 스님은 후원 부뚜막 앞에 앉아 저녁을 짓고 있는 기봉 스님에게 그렇게 물었었다. 이태 전, 영화를 찍었던 영산암엘 갔었다. 기봉 스님 대신 한 스님이 영화 속 요사로 나왔던 송암당 아궁이에 불을 지피고 있었다. 장작불 위로 해진 스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왜 모두가 사바세계에서 왔죠?” 그날도 암자엔 모두 사바에서 온 사람들뿐이었다.
지난 해 겨울, 노장 한 분을 만나러 월명암에 갔었다. 부설거사가 세웠다는 암자는 부설의 이름이 생각난 듯 하염없이 눈을 맞고 있었다. 불도를 닦던 부설은 20년 만에 입을 연 묘화의 청혼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도반들과 이별을 하고 묘화와 혼인을 한다. 아들 등운과 딸 월명도 낳는다. 어느 날 도반들이 부설을 찾아온다. 자신들의 공부를 뽐내며 부설을 딱하게 여기던 도반들은 뒤늦게 부설의 공부에 놀라며 고개를 숙인다. 부설의 이름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리고 그가 가는 곳엔 눈이 내렸다고 한다. 내리던 눈발이 잦아들었다. 안거 중이던 스님들이 포행을 나왔다. 찾아간 노장은 후학들과 함께 안거 중이었다. “먼 길 왔으니 공양부터 하세요.” 노장의 법문이 기다리고, 월명암엔 다시 눈이 내리기
스님이 물었다. ‘마음’이 무어냐고. 방안으로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 대답도 스님이 했다. 당신의 질문을 듣고 있는 그놈이 마음이라고. 노장의 질문과 대답이 바람처럼 지나갔다. 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앉아있었다. 방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던 햇살을 구름이 거둬가고 스님은 다시 물었다. 동그란 원을 하나 그려 보이며 “이 원 안에 들어가도 30봉을 맞고, 들어가지 앉아도 30봉을 맞아야 한다면 어찌 하겠냐”고. 노장이 다시 답까지 했다. “그렸던 원을 지우면 된다.”고. 노장의 질문과 대답이 또 한 번 바람처럼 지나갔다. 동안거를 이틀 앞둔 법주사 총지선원 선방에서 우리는 그날 나뭇가지처럼 앉아있었다. 선방 벽에는 다가올 시간처럼 죽비가 걸렸고, 치열한 한 철은 또 시작됐다. 푸른 눈을 뜨고 걸
시방(十方)에 도량(道場) 아닌 곳이 없지만, 굳이 불전(佛殿)을 찾는 것은 깎아놓은 부처님이라도 보아야 하는 중생심 때문일 것이다. 눈으로 부처님을 만나러 다니는 것이다. 그래도 중생의 일상 중에 그보다 기대되는 일이 또 있을까. 절집에 들어 극락 아닌 곳이 없겠지만, 당우마다 각자 이름이 걸려있는 것은 아직도 이름 없인 아무데도 갈 수 없는 미혹함 때문일 것이다. 아직도 마음을 정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해 늦은 가을날, 그날도 그렇게 절을 찾았다. 구례 화엄사. 각황전 지붕 위로 산새들이 날고, 만월당 처마 밑에는 예쁘게 깎아 널은 감들이 주련처럼 매달려 있었다. 바람 하나에 매달려 다니는 산새들이나, 하루하루 계절에 매달린 감들은 그래도 한 곳으로 마음을 정한 듯했다.
불일암으로 오르는 대나무 숲길은 바람이 다니는 길이었다. 사람의 발자국보다는 수군거리는 바람소리가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길이었다. 불일암 대나무 숲길은 침묵이 고이는 길이었다. 어떤 언어도 그 바람소리 앞에서 뜻을 가질 수 없었다. 발자국도 없이, 언어도 없이 걸어간 숲길 끝에 불일암이 있었다. 부처님 모신 집 한 채와 밀짚모자 벗어놓은 요사 한 채가 가랑비에 젖고 있었다. 한 동안 불일암에 살았던 법정 스님은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고 했다. 새들이 떠난 적막한 숲처럼 스님이 떠난 암자는 적막했다. 숲에 남은 적막도 암자에 깃든 적막도 모두 떠난 이가 남긴 분명한 흔적이었다. 적막도 흔적이었다.
“이곳은 대한불교조계종 무문관입니다. 지금 각 방에는 단기 3개월 장기 6년간 묵언으로 방문출입을 하지 않고 하루 일종식으로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이 계십니다. 그러므로 이곳에서는 그 어떤 물음에도 대답하지 않으니 물음이 계신 분은 백담사 주지 스님을 찾아가십시오. 대한불교조계종 무금선원 선원장 합장” 지난 해 11월이었다. 동안거 결제 하루 전날 백담사 무금선원. 법납 20년이 넘는 구참 스님들이 선방 문틈에 문풍지를 바르고 있었고, 선방 흑벽엔 위와 같은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겨울이 되어가는 설악산 골짜기로 산새소리가 날아들고, 방부를 들인 스님들은 문 없는 문을 닫아걸었다. 닫힌 선방 문 위엔 ‘무금’이라고 쓴 편액이 시계처럼 걸리고, 흐르지 않는 시간이 흘러가기 시작했다.
‘지구촌 평화를 위한 G20 세계종교지도자 회의’가 11일 동국대 정각원 G20서울 정상회의가 진행 중인 가운데 세계종교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계평화와 인류공영과 공생을 위한 지혜를 나누고 ‘세계평화공동선언문’을 채택했다. 불교 개신교 가톨릭 이슬람교 힌두교 유대교 시크교 일본신도 등 세계종교지도자 34명은 ‘지구촌 평화를 위한 G20 세계종교지도자포럼’를 11일 동국대 정각원에서 연 데 이어 12일 안양 한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