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계사(주지 토진)가 11월 11일 빼빼로데이에 묻혀 잊기 쉬운 ‘농업인의 날’을 맞아 도농 교류를 위한 행사 ‘우리 떡하니 사랑합시다’를 마련했다. 행사는 농민들이 뿌리를 내리고 사는 땅(土)의 의미를 되살리고 도농 화합을 도모하기 위해 11시 11분 11초에 시작됐다. 11(十一)은 土를 풀어쓴 형태를 지니고 있다. 조계사 주지 스님의 법명도 토진(土眞)이라 연관이 크다는 게 조계사측 설명이다. 토진 스님은 “떡을 써는 칼은 우리 농민의 시름을 씻어내는 부처님의 지혜일 것이다. 조계사가 농민들의 시름을 덜어내고, 농민의 날을 되찾아 오겠다”고 말했다. ?
11월 2일 양양 낙산사에서 열린 세계평화기원대법회에 앞서 (사진 왼쪽 앞부터) 일중한국제불교교류위원장 이토오 유이신 스님과 한국불교종단협의회 회장 자승 스님, 중국불교협회장 쳉인 스님이 기념식수를 하고 있다. 이날 스님들을 비롯한 한중일 불자들은 부처님 가르침을 인연으로 맺어진 황금유대를 재확인하며, 세계평화와 인류행복의 실현을 위해 수행정진할 것을 다짐했다. 특히, 종단협 회장 자승 스님은 세계평화기원 메시지에서 “한중일 삼국 불자들은 인류와 사회를 바꾸는 진정한 힘은 선한 마음에 있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 혼자 누리기보다 함께 나누는 미덕, 폭력으로는 아무것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 세상의 어떤 재화도 생명보다 귀중한 것은 없다는 것, 선을 이기는 어떤 악도 없다는 것을 세상에 인식시켜야 한다
“그는 그렇게 산이 되었다” 10월의 마지막 날 어느 조간신문은 눈 덮인 안나푸루나의 사진 위에 목 메인 조사(弔辭)를 제목으로 올렸다. 사진은 10월 18일 안나푸루나 등반 중 실종된 산악인 박영석 대장과, 함께 실종된 신동민 대원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수색작업은 종결됐다. 그들은 윤회를 끊어내듯 오르고 오르는 일을 끊고 오르고 오르던 산이 돼버렸다. ‘죽음’이라 말하지 않겠다.”며 소설가 박범신이 글을 이어갔다. ‘“산에 가야 산악인이지!” 박영석 대장의 목소리가 여전히 우렁우렁 귓속을 울린다. 그와 그들은 단지 산악인이 아니었다. 우리의 꿈을 대신 짊어지고 간 극상의 모럴, 참된 비전이었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아직 그들을 떠나보내지 않았다.’ 이제 그들은 더 이상 산을 오르지도
비가 온다. 비를 맞으며 산새들이 개울 위를 날아간다. 산새들이 건너간 개울 위로 낙엽이 떨어지고, 눈을 감아야 들리는 노래처럼 소리 없이 가을비가 내린다. 오솔길이 눈을 감고, 돌계단 위의 낙엽들이 눈을 감는다. 도량이 가을비에 젖는다. 도갑사다. 월출산 기슭에 자리 잡은 도갑사는 신라 말기에 도선(道詵ㆍ827~898)국사가 창건했다. 조선시대 수미 스님이 중건했으며 연담, 허주, 초의 선사 등 선지식들이 주석했다. 정유재란과 병자호란, 그리고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도량이 많이 소실됐다. 최근까지 대웅보전을 복원하는 등 불사가 이어졌으며, 옛 가람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어느 날 한 처녀가 개울에서 빨래를 하다가 떠내려 온 오이를 건져 먹는다. 그리고 그녀는 아이를 갖게 된다. 전
신흥사 조실 무산 스님이 조계종 제23회 포교대상을 수상했다. 조계종 포교원(원장 혜총ㆍ79)은 10월 25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제23회 포교대상 시상식을 개최했다. 무산 스님은 수상소감에서 그동안 만해축전에 노력해 온 많은 사람들을 거명하며 “당연한 만해 스님 선양 업적으로 상을 받아 부끄럽다. 지금까지 만해축전 개최에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이수성 前 국무총리, 시조인들, 신흥사 본말사 주지 스님을 비롯한 모든 사부대중에게 수상의 공덕을 회향하겠다”고 말했다. 무산 스님은 이날 이사장으로 있는 만해사상실천선양회가 수상한 대원상 수상금과 포교대상 수상금을 포함한 2000만원을 논산육군훈련소 신축법당 기금으로 기부했다. ?
전국이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 가운데 설악산이 먼저 절정을 맞았다. 10월 18일 백담사가 있는 백담계곡에는 많은 불자들과 관광객들로 야단법석을 이뤘다. 물이 마른 계곡에는 불자들의 서원이 담긴 돌탑들이 넘쳤고, 숲은 간절한 서원 만큼이나 붉게 물들어 갔다. ?
‘아하! 공자는 노나라 240년간의 사적을 추려서 책을 만들고 라고 이름을 지었다. 240년 동안의 외교와 전쟁에 관한 사적도 단지 한 번 봄(春)에 꽃이 피고, 가을(秋)에 낙엽 지는 덧없는 인생의 짧은 시간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박지원의 중. ‘춘추’, 그 두 글자의 간격은 그토록 먼 것이며 또한 한순간처럼 가까운 것이었다. 누군가 설악산 오솔길 끝에 집을 짓고 그 이름을 ‘무금(無今)’이라고 했다. 백담사 무문관 무금선원(無今禪院). 돌담 위에 낙엽이 쌓여있다. 공자의 ‘춘추’처럼 ‘무금(無今)’이란 두 글자도 그 덧없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리라. 지난 봄에 꽃이 피었고, 이제는 낙엽이 진다. 꽃이 피고, 낙엽이 지는 ‘지금(今)’은 늘 사라지고 없는(無) 것이다. 우리
산을 쓸고 내려온 바람이 돌담의 코스모스를 흔든다. 노랗게 익은 감들이 햇살에 빛나고, 양지 바른 쪽의 단풍은 붉은 물이 올랐다. 드문드문 드나들던 인적도 끊어진 마당에는 낙엽이 이리저리 구르고, 조용한 석탑 하나가 긴 그림자를 그리고 있다. 거조암이다. 지눌 스님의 정혜결사(定慧結社)가 시작됐던 곳이다. 거조암은 은해사의 산내 암자로 신라 효성왕 2년(738) 원참 스님이 창건했다. 13년 뒤에 혜림(慧林) 스님과 법화 스님이 영산전을 짓고 오백나한(五百羅漢)을 모셨다. 영산전은 몇 안 되는 고려시대 건물로 국보(제14호)다. 영산전이다. 은은한 불빛 속에서 오백나한의 눈빛이 별처럼 반짝이고 있다. 그 옛날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는 눈빛, 그 눈빛들 사이를 걸으면 부처님의 설
‘2011 미스 아시아 퍼시픽 월드 컴피티션 코리아’ 참가자들이 10월 4~5일 목동 국제선센터(주지 현조)에서 한국 불교문화 체험을 위한 템플스테이를 실시했다. ‘2011 미스 아시아 퍼시픽 월드 컴피티션 코리아’는 아시아, 유럽, 미주 등 전 세계 71개국을 미녀들이 모여 경합을 벌이는 슈퍼탤런트 대회로, 이날 템플스테이에는 50여 명의 참가자들이 참여했다. 행사는 새벽예불을 비롯해 참선, 연등 만들기 등이 진행됐다. ?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혹성탈출(2001)’에서는 원숭이가 인간을 영혼이 없는 존재로 몬다. 영혼이 없는 존재로 몰린 인간의 괴로움은 ‘기막힘’이다. 그 기막힘에서 탈출하기 위해 인간은 영화 속에서 죽도록 고생한다. ‘탈출’은 영혼의 존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 영혼으로 인해 인간은 고단하다. 지금 당장은 ‘가을’이다. 차가운 바람은 뜨거운 눈물이 되고, 뒹구는 낙엽은 움직일 수 없는 언어가 되는 시간. 고독한 시간은 신앙이 되고, 망설이던 시선은 철학이 되는 시간. 영혼을 가진 존재로 살아가는 것. 그것은 쉴 새 없이 사는 것이다. 잠시도 쉴 수 없는 영혼, 영화에서처럼 영혼을 가진 우리는 죽도록 고생하고 있다. 온전한 영혼의 존재로 돌아가기 위해 이 가을을 죽도록 살고 있다. 돌담
‘부처니 중생이니 내 알 바 아니니 / 평생을 그저 취한 듯 미친 듯 보내려네 / 때로는 일 없이 한가로이 바라보니 / 먼 산은 구름 밖에 층층이 푸르네’ 경허(鏡虛ㆍ1894~1912) 스님은 늘 고독했다. 고독은 시를 쓰게 했다. 동학사에서 강사를 지내던 스님은 어느 날 동학사를 나와 고향으로 향한다. 스님의 글 곳곳엔 ‘호서로 돌아가는 승 경허’라는 대목이 있다. 꽃잎이 얼마 남지 않은 백일홍 위로 가을비가 떨어진다. 붉은 잎이 섞이기 시작한 단풍나무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 차가운 비에도 나비들은 날고, 거친 바람에도 산새들은 나무를 떠나지 않고 있다. 안양루가 손님을 맞는다. ‘호서로 돌아가는 승’, ‘경허’가 어느 날 문득 동학사를 나와 생사의 절박함을 묻고 깨
동국대 연극학부 출신 동문들이 뜻을 모아 ‘후배사랑 멘토 장학기금’을 조성했다. 동국대(총장 김희옥)는 9월 15일 동국대에서 연극학부 동문회(회장 이효정)와 멘토 장학금 약정식을 했다. 장학금 조성에는 이덕화 강석우 임예진 이경규 이효정 홍학표 이경실 김상중 김유석 최준용 최유라 남성진 홍진경 채정안 이정재 최정원 소유진 류시원 김수로 등 20여 동문이 동참했다. 이들 연예인(멘토)들은 직접 오디션을 통해 학생(멘티)과 1:1 결연을 맺은 후 한 학기당 250만원의 장학금을 제공하는 등 멘토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또 한 번 계절이 바뀌려 한다. 다한 계절은 새들이 날아간 길처럼 사라져가고, 다가오는 계절은 그리운 사람의 이름처럼 멀고도 가깝다. 멀어져 가는 것과 다가오는 것 사이에서 고단한 걸음은 또 한 번 길을 잃는다. 뜨거운 시 한 줄에 무릎을 꿇고, 차가운 바람으로 눈물을 닦아내도 길은 없는, 가을이다. ‘이 가을 저녁, 인간으로 태어난 것이 결코 가볍지 않다.’ . 일본의 한 줄짜리 시(하이쿠)다. 인간으로 태어나 길을 잃고, 결코 가볍지 않은 존재로 살아야 하는 이 가을. 산사의 숲은 점점 헐거워지고, 산새는 숲에 맞춰 울기 시작했다. 어찌해야 할까. 숲도 산새도 갈 길을 찾기 시작했는데…. 누구의 것인지. 댓돌 위의 고무신은 쉽게 길을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 누구도 이
종로노인종합복지관(관장 정관)은 추석 명절을 앞두고 9월 6일 ‘한가위’ 송편 나눔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복지관 어르신들과 신한생명 직원들이 함께 빚은 송편은 홀몸어르신 31 가구에 전달됐다. ?
언제부턴가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8월 29일 남원 실상사 연못에 연꽃이 지고 난 연밥 위로 고추잠자리가 날아와 앉았다. 영원할 것만 같던 여름이 잠자리 날갯짓 한 번에 가을로 가을로 밀려간다. 연못에 날아든 잠자리처럼 가을이 날아들고 있다. ?
해탈교를 건너자 돌장승이 눈을 맞춘다. 속세를 드나들 것 같지 않은 산새의 울음소리나, 태고의 그늘이 숨 쉬고 있을 것 같은 오솔길은 없다. 무릎을 세우고 올라야 할 돌계단 대신 곡식이 들어찬 들과 연잎 가득한 연못을 지난다. 남원의 실상사로 가는 길이다. 그 옛날, 영산에서 범왕이 부처님께 설법을 청하며 연꽃을 올리자 부처님이 연꽃을 들어보였다. 대중은 아무도 그 뜻을 알지 못했다.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지었다. 문자를 버리고, 뜻 없는 뜻이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해지던 그 날, 선종은 시작됐다. 구산선문의 최초 가람인 실상사는 신라 흥덕왕 3년(828) 홍척 스님이 당나라에서 선법을 배우고 돌아와 세운 절이다. 신라불교에 선풍을 일으키며 번창했던 실
아시아 8개국 청소년 불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조계종 국제선센터(주지 현조)는 8월 25~29일 세계청소년 불자교류 템플스테이를 개최했다. ‘지금 그리고 여기서 삶을 깨워라(Now and Here, awakened life!)’를 주제로 열린 행사에는 한국을 비롯한 일본 대만 홍콩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에서 한국을 찾은 50여 청소년이 참가했다. 청소년들은 예불과 발우공양 등을 통해 한국 전통사찰의 수행 및 신행을 경험했다. (차주상보)
‘사람이 살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서럽고도 서러운 업일까. 어머니를 안으니 문득 그런 생각이 났다.’ 박완서의 단편 에서 주인공이 22년 만에 아버지와 오빠의 첫 제사를 모시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신의 무릎에 누워 잠든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며 하는 생각이다. 책에서 주인공과 그녀의 어머니는 오랜 세월 가슴 속에 얽어매고 살았던 가족의 서러운 죽음을 온전한 죽음으로 회향하기 위해 절을 찾고, 절에 머물며 제사를 올리는 동안 많은 사유를 하게 되는 이야기다. 우리 모두는 부처님 근처에 살고 있다. 무엇에든 그 ‘근처’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손닿을 곳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마음 놓이는 일인가. 죽음이 삶의 근처에 있고, 삶 또한 죽음의 근처에 있다고 보면 우리가 부처님 근처에
도량은 불사중이다. 아담한 도량의 절반 이상이 제 모습이 아니어서 호젓한 절집의 분위기를 느낄 수가 없다. 풍경소리, 목탁소리 대신 망치 소리와 기계소리로 도량이 어수선하다. 하지만 앞산 운제산으로 올라가 멀리서 절을 바라보면 서운했던 마음이 사라진다. 많은 것들이 생략된 원경이 다시 호젓한 절을 느끼게 해준다. 호수 위에 절이 하나 떠있다. 오어사다. 오어사는 신라 진평왕 때 창건됐다. 처음에는 항사사(恒沙寺)였다. 자세한 창건 내력은 전해오지 않는다. 항사사가 오어사가 된 이유는 혜공 스님과 원효 스님 때문이다. 혜공 스님은 만년에 항사사에 머물렀다. 분황사에 머물던 원효 스님은 의심나는 게 있으면 혜공 스님을 찾았다. 어느 날 두 스님이 시냇가에서 물고기와 새우를 잡아먹고 돌 위
어제 남긴 말 한 마디가 지옥을 한 칸 지었다. 나를 떠난 말이 나를 가두었다. 내가 던진 말에 내가 갇혀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지옥이 아니고 또 무엇일까. 오늘은 그 지옥을 벗어나기 위해 또 다른 지옥을 짓는다. 입만 열면 지옥이 한 칸 씩 생긴다. 여름 안거가 끝났다. 치열했던 한 철 걸망에 담아 길을 나서는 스님의 뒷모습이 한가롭다. 내려놓기 위해 짊어졌던 그 걸망엔 무엇이 남고 또 무엇을 담았을까. 저 작은 걸망에 담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걸으면 걷는대로 길이 담기고, 들으면 듣는대로 물음도 담길 것 같다. 담고 싶은 것 담고, 내려놓고 싶은 것 내려놓고, 짊어지고 싶을 때 짊어지고 내려놓고 싶을 때 내려놓을 수 있는 스님의 걸망이 극락이지 싶다. 오늘 내가 내뱉은 말 한마디가 또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