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Weekly 선명상] 44.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밤은 밤대로, 낮은 낮대로 아름답다 모든 모습은 나의 눈을 통해 나타난 것 분별이 있어 美醜, 善惡 경계가 생겨나 감정, 인과의 근본…감정 드러내지 말라 기도, 보시, 참선은 어려움 극복하는 힘
[오늘의 명상]
고요한 밤하늘에 속삭이는 내 별 네 별
반짝반짝 별빛 모아 햇님이 되었나.
아침 햇살 동 터 오니 온 세상이 형형색색
내 마음 펼쳐진 모습 아름답기도 하여라.
밤에는 밤대로 아름답고, 낮이면 낮대로 아름답습니다.
모든 모습들은 결국 내 마음의 형상이 눈을 통해 펼쳐진 것들입니다. 아름다움을 분별로서 본다면 추한 것 또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의 아름다움이란 분별의 마음으로 보는 것이 아닙니다. 분별에서 벗어나서 보면 오히려 진정한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꽃은 어떤 꽃이라도 대개가 다 예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꽃을 보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것이니, 만약 마음이 복잡하여 꽃을 볼 여유가 없다면 설사 꽃을 보아도 아름다울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꽃이 예쁜 것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꽃을 예쁘게 만드는 겁니다. 어느 때는 마음의 여유가 있어서 예쁘게 보이기도 하고, 어느 때는 마음이 복잡하여 예쁘게 볼 수 없다면 결국 진정한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복잡하게 하는 것은 분별을 짓는 마음 때문입니다. 원효 스님께서 해골 물을 먹고도 아무 탈이 없었던 것은 해골 물이라는 분별된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나 해골 물이라는 분별된 마음을 가진 즉시 토하고 말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
어차피 중생의 마음 모양은 두 가지 분별로서 만들어졌고, 그 마음이 현현하여 사바세계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항상 분별심(分別心) 때문에 늘 복잡한 선택과 고민과, 탐진치(貪嗔痴-욕심, 성냄, 분별) 삼독심(三毒心)이 생기게 되고 또 반복하게 됩니다.
불자라고 한다면 마음의 수준을 격상시켜야 합니다. 저속한 마음에서 교양 있는 근사한 마음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금방 웃었다 금방 울었다 하며 스스로를 초라하게 해서는 모양이 나지 않습니다.
웬만한 일에 있어서는 인과(因果)가 나타나는구나, 인연의 흐름이구나, 나의 업(業)이 나타나는구나, 이득과 손해는 결국 없는 것이니 마음을 뺏기지 말아야겠구나, 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의 어려운 업이 생길 시간이 되었구나, 정말 싫다는 것은 내 마음속에 있는 싫은 감정이 드러나는구나, 조급한 것은 내 마음이 아직 여유가 없구나하고 늘 자신을 살펴봄으로써 업(業)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옳고 그름, 하고 하지 않고는 얼마든지 해도 좋으나, 좋다 싫다는 감정을 얹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감정은 인과(因果, 원인 결과)의 근본이 되니, 어떤 상황에서도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어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와 보시(布施, 베품), 참선(參禪, 분별하지 않는)과 정진(精進, 향상)은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힘을 만들어 줄 것입니다.
[오늘의 명상]
장마 땐 해 그립고 가뭄 땐 비 그리워
장마 길어도 먹구름은 걷어지고
가뭄 길어도 비구름은 올 것인데
그리운 마음만 애간장을 태우네.
밤낮이 있어서 하루가 완성되고 4계절이 있어서 1년이 완성되듯 유년기와 청년기, 장년기와 노년기가 있으니 일생이 완성됩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말이 있듯이 어려움 없는 기쁨은 없는 것이고, 사라짐이 없이는 탄생의 의미가 없듯이 죽음이 없는 태어남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렇듯 세상의 모습은 이것과 저것이 서로를 의지하며 굴러가고 있으므로 어느 한쪽만 택할 수도 없고 택해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없는 것이 되니 둘 다 버리던지 아니면 둘 다 받아들이던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론 둘 다 받아들이는 것과 둘 다 버리는 것은 차이가 없으니, 결국 같은 것이 됩니다.
둘 다 버린다는 의미는 분별하지 않는 마음으로서 깨달음의 경지를 뜻하는 것입니다. 둘 다 받아들인다는 의미는 인과의 도리를 의심 없이 바라보고 수용한다는 뜻으로서 어느 것에도 치우치지 않고 한쪽만을 선택하지 않으므로, 이 또한 분별하지 않는 무분별심(無分別心)의 편안한 마음을 유지할 수가 있게 됩니다.
세상에 어느 것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선도 악도 정의도 불의도 그 어느 것 하나 버리려야 버릴 수도 없고 버려서도 안 될 것이나, 버리려면 둘 다 버려야 합니다.
본래 선악(善惡)과 정부(正否)도 없는 것이나, 인간들의 무명(無明)에 의한 분별심 때문에 어느 한쪽만을 택하려다 보니 다른 한쪽이 자동으로 발생되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은 이와 같이 명료합니다.
내게 일어나는 마음과 세상의 모습은 이것과 저것,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인과에 의해 인연 따라 오고 갈 뿐, 더 이익을 얻거나, 더 손해를 보거나, 더 좋거나, 더 나쁘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시절인연(時節因緣)의 때가 되어 그저 인과가 나타나고 사라질 뿐입니다.
그러니 변하거나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데 스스로 마음을 쓰면 쓸수록 복잡하게 되고, 번뇌로울 뿐이니, 일어나는 모든 일에 굳이 마음 써서 힘들어 하지 말고, 마음을 놓고 또 놓고 매사를 있는 그대로 봄으로써 스스로 편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극락을 선택하면 지옥이 따라붙고 낮을 선택하면 밤이 따라붙고 봄, 여름을 선택하면 가을, 겨울이 따라붙고 밀물을 선택하면 썰물이 따라붙고 멀리가면 멀리 와야 하고 산이 높으면 골이 깊습니다.
선을 선택하면 악이 따라붙고, 즐거움을 선택하면 괴로움이 따라붙고, 행복을 선택하면 불행이 따라붙고, 이기려 하면 지는 것이 따라붙고, 성공을 원하면 실패가 따라붙고, 얻으려 하면 잃는 것이 따라붙고…. 이와 같이 마음과 세상은 두 가지가 어울려서 완벽하게 굴러갑니다.
문제는 하나만을 선택하려는 마음입니다. 낮과 밤이 있어야 하루가 완성되듯이 이것과 저것이 함께 해야 일생이 완성됨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만을 선택하려 하기 때문에 마음과 실제가 어긋나서 불편하고 괴롭게 되는 것이니, 그 어떤 것이라도 거부하거나, 하나만을 집착하지 말아야 합니다.
탐하고 성내고 분별하지 않으면 티끌에도 걸림 없는 완벽하게 편안한 마음이 되나, 업으로 똘똘 뭉쳐진 몸과 마음이 쉽게 삼독심을 버릴 수 없다면, 차라리 탐하고 성내고 분별을 마음대로 해도 좋습니다.
다만,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른다는 것을 반드시 깨달아 찰나 간에도 잊지 않는다면 어리석은 신구의(身口意-행동, 말, 생각) 삼업(三業)을 조금이나마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한줄 요약
감정은 인과(因果)의 근본이 되니, 어떤 상황에서도 함부로 감정을 드러내어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