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일의 불모열전 시즌2] 18. 관해(觀海, 寬海) 스님
17세기 중반 호남 명산대찰에 불상 조성 응원·인균 스님 잇고 30여 년간 활동 1640년대부터 수화승, 회감 스님 등 협업 진주 성전암·장성 백양사 등에 불상 조성
관해(觀海, 寬海) 스님은 17세기 전·중반을 대표한 조각승 응원(應元, 應圓) 스님과 인균(印均, 仁均, 印筠) 스님의 제자로, 호남 지역을 중심으로 당대 여러 명산대찰 전각에 불상을 제작한 조각승이다. 스님은 초기에 스승인 응원인균 스님을 보조하며 불상 조성에 참여했고, 이후에 후배 조각승인 회감이나 제자인 초안 스님 등과 함께 작업하며 자신만의 조형적 특징을 갖춘 작품을 만들었다.
관해 스님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은 1624년 음력 9월에 응원·고한(高閑)·인균 스님과 함께 순천 송광사 응진당 목조석가여래삼존상과 소조십육나한상(보물) 제작에 참여한 사례에서 확인된다. 당시 관해 스님은 열 명의 조각승 중 여섯 번째로 기록돼 있어, 1620년대에는 조각승 집단 내에서 중간급 보조 장인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1633년 10월에는 인균 스님을 도와 김제 귀신사 영산전의 소조석가여래좌상과 십육나한상(도 유형문화유산)을 제작했는데, 이때는 열두 명 중 네 번째 기록돼 이전보다 중심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관해 스님은 1643년 음력 5월 18일부터 7월 15일까지 약 두 달 동안 진주 성전암 목조여래좌상(도 유형문화유산)을 수화승으로 제작했다. 이 불상 조성에는 회감(懷鑑)·설의(雪儀)·인영(印英)·초안(草安) 스님 등이 함께 참여했으며, 이들 중 회감인영초안 스님은 1660년대 호남과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발히 활동한 조각승들이다. 불상 한 구(높이 59㎝)를 여섯 명이 두 달 동안 제작했다는 기록은 조선 후기 일반적인 불상 제작의 상황에 비추어 다소 긴 편이므로, 작은 사찰이나 암자 전각에 삼불상(三佛像) 또는 삼존상(三尊像)을 조성한 가운데 한 구가 지금의 성전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일 가능성이 높다.
관해 스님은 1648년에도 약 석 달 동안 11명의 조각승과 함께 남원 백장암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소재 미상, 조성발원문만 있음)을 수화승으로 제작했다. 이어 1650년에 김제 금산사 대장전의 목조석가여래삼존상(군산 동국사 봉안, 보물)을 제작할 때 응매(應梅) 스님을 도와 부화승으로 참여했으며, 당시 공덕주는 관해 스님과 협업하던 회감 스님이었다.
1651년에는 진주 단속사 삼존불상과 통영 안정사 삼존상(소재 미상, 조성발원문만 있음)을 수화승으로 회감·성현(性玄)·인영 스님 등 13명과 함께 만들었고, 1653년에는 장성 백양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도 유형문화유산)을 수화승으로 제작했다. 다만 이 불상은 부화승 초안 스님이 1654년에 제작한 고성 화암사 안양암 목조지장보살좌상(속초 보광사 봉안, 도 유형문화유산)에서 볼 수 있는 인상이나 착의법 등이 매우 유사해서 관해 스님이 상징적 존재로 참여했을 가능성이 많다.
현재 확인되는 관해 스님의 활동 기간은 1624년부터 1653년까지로 약 30년이다. 기록과 현존 작품을 바탕으로 보면 스님은 1600년 전후에 태어나 1610년대에 수련기를 거쳤으며, 1620~1630년대에는 응원인균 스님이 주도한 불사에서 보조 조각승으로 활동했다. 이후 1640년대부터는 수화승으로 독립적인 조각승 집단을 이끌면서 불상 조성 활동을 했으며, 1650년대 중반까지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관해 스님은 주로 호남 지역 주요 사찰의 영산전이나 명부전 같은 부속 전각에 불상을 제작했다. 그중 수화승으로 주도한 작업은 진주 성전암, 통영 안정사 등에서 확인된다.
관해 스님의 조각승 계보는 응원(1613~1635, 이하 활동 연대)→인균(1614~1662)→관해·석삼(釋森, 1623~1640)·회감(1633~1666)→인영(1643~1657)·초안(1653~1659)으로 이어진다.
관해 스님이 주도해 만든 불상 가운데 현존이 확실한 작품은 진주 성전암 대웅전 목조여래좌상이다.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녹색 비단의 묵서(墨書)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이 불상은 1643년 음력 5월 18일부터 7월 15일까지 약 두 달 동안 관해·회감·설의·인영·초안 스님 등이 협력해 조성했다.
이 목조여래좌상은 높이 59㎝의 중형 불상으로, 상반신을 곧게 세우고 고개를 약간 앞으로 숙인 차분하고 안정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머리에는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육계(肉)와 뾰족하게 표현된 나발(螺髮), 이마 위 중앙에는 반원형 중간계주(中間珠), 정수리에는 낮은 원통형 정상계주(頂上珠)가 표현됐다. 얼굴은 각진 형태로, 가늘게 뜬 눈과 곧은 콧대, 미소를 머금은 입이 조화로운 인상을 준다. 목 아래에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으며,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안정된 비례감을 보인다.
착의법은 대의(大衣) 안 오른쪽 어깨에 부견의(覆肩衣)를 짧게 걸친 이중 착의 형식이다. 오른손을 어깨까지 들어 올린 동작의 영향으로 대의 자락은 가슴 부분에서 V자형으로 주름을 만들며 나머지 옷자락은 팔과 몸을 따라 자연스럽게 흘러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복부에서는 부견의가 대의 안쪽으로 접혀 들어간 형태가 나타나며, 하반신의 대의 주름은 중앙의 길게 늘어진 주름을 축으로 좌우가 대칭되게 표현됐다.
왼쪽 무릎에는 나뭇잎 모양의 소맷자락이 덮여 장식적 효과를 더한다. 가슴을 덮은 승각기(僧脚崎)는 상단을 수평으로 정리한 뒤 대각선 방향으로 접어 마무리했다. 뒷면은 목둘레를 감싸는 대의 끝단과 왼쪽 어깨에서 길게 늘어진 자락으로 구성된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어깨까지 들어 올리고, 왼손은 무릎 위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댄 형태로, 조선 후기 석가여래를 제외한 여래상이나 보살상에서 널리 볼 수 있는 형태이다.
관해 스님이 주도해 제작한 불상 중 현존이 확실한 작품은 이 한 점뿐이지만,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과 안정적인 신체 비례, 오른쪽 어깨에 짧게 늘어진 대의 자락, 하반신의 나뭇잎 모양 소맷자락 등은 스승인 인균 스님의 양식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 준다. 이러한 양식적 특징은 후배인 조각승인 회감 스님이나 초안 스님에게도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한줄 요약
관해 스님은 17세기 중반 호남 지역에서 응원·인균 스님의 계보를 잇고 영산전·명부전 등 사찰 부속 전각의 불상 조성에 활약한 조각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