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연의 수행 다이어리] 죽어도, 죽지 않는 ‘마음’의 작용

22. 의식과 무의식

2025-11-21     강소연/ 중앙승가대 교수

 

살아있을 때든 죽었을 때든(몸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마음의 찰나적 생멸과 그것의 상속’은 계속된다. ⓒ강소연 

눈[안근眼根]과 대상[안경眼境]이 만난다[촉]. ‘눈이 본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으면 ‘촉’이 생겨나고 사라짐을 관찰할 수 있다. (대상이 무엇인지 파악하려는 또는 판단하려는) 인식 또는 분별의 작용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즉, 주관적 의식화가 되지 않는다. 대상이 무엇인지 알려는 ‘집착’이 들러붙지 않은 상태다. 보고 있어도 보는 게 아니다.

쏜살같은 전개를 선수 치는 ‘반야’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라는 ‘풀’(김수영 시인)의 한 구절이 떠오른다. 알아차림이 빠르면 빠를수록, 파도의 전개를 일찌감치 끊을 수 있다. 연속적으로 덩어리지는 현상들의 전광석화 같은 상속(相續), ‘알아차림’은 그것보다 빠르게 일어나야 그것을 이길 수 있다. 그래야 6근과 6경의 만남[촉]이 유발하는 다양한 정신적 물리적 현상의 연계와 그것에의 휘말림을 예방할 수 있다. 

알아차림과 거의 동시에 발사되는 반야[慧 : 통찰지]로 인해, 조건들은 산산이 부서지고 상속은 끊어진다. 업행(業行)이 멈추니 업식(業識)은 청정해질 수밖에 없다. 이것이 ‘청정도(淸淨道: 청정으로 가는 길 또는 방법)’이구나! 그런데 반대로 알아차림을 못하면 자신이 지은 ‘습(習: 습관)’대로, 현상은 생겨나고 그것이 ‘있다’라는 착각(무명)이 일어난다. 결국 거기에 휘말려 행(行: 반응 또는 의도)을 일으키기를 무한 반복한다. 이렇게 되면 업행은 ‘오염일로’이다. 

정리하자면 “6근과 6경이 만나[촉]→6식이 생겨나 의식화되면→나와 대상[주객主客]이 생겨나고→여기에 (‘있다’라는 착각이 생기며 일어난 자의식은 상온을 근거로) ‘좋다 또는 싫다’의 반응을 일으키고→그 반응에 (이미 일어난 동일시가) 다시 집착과 갈애가 불러일으키면→생각이 생각을 낳고 망상이 망상을 낳고 번뇌는 번뇌를 낳는 단계”까지 진행돼 버린다.  

죽음과 재생, 그 과정상의 ‘마음의 상속’

아비담마에서는 ‘한 생각’이 일어난 데에는 ‘17심찰나’, 즉 ‘17번의 (조건적) 생멸이 일어나 상속된다’고 한다. 17심찰나는 “①과거의 무의식(바왕가)-②무의식(바왕가)의 동요-③무의식(바왕가)의 멈춤-④오문전향(다섯 감각의 문을 향함)-⑤오식(다섯 갈래의 의식)-⑥받아들임-⑦조사-⑧결정-⑨∼⑮속행(자와나, 생각-촉진)-, 경험의 등록”으로 진행된다. 이 과정은 우리가 죽어서 다시 태어날 때의 과정과 동일하다. 단, 죽을 때는 (심장이 약한 상태라) 15심찰나의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한 생각이 일어나는 과정’ 또는 ‘한 사람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과정’ 상의 전개를 낱낱이 꿰뚫어 보다니! 그저 놀랍다.

글머리에 (눈과 대상이 만났을 때) 사례로 든 것을 여기에 대입해서 풀이하면 다음과 같다. ①과거의 무의식에서 ④오문전향까지는 일어났으나 의문전향(⑧결정)의 단계에서 ‘알아차림’이 들어가서 속행(⑨∼⑮)이 부정업(不淨業)의 전개가 아닌, 청정업(淸淨業)의 전개로 바뀌어 버린 것이다. 17심찰나 중 ‘결정’의 단계에서 반야(통찰지)가 작용해 ‘속행’은 ‘청정’으로의 전환이 일어난다. 만약 ‘죽음의 마음’이 ‘재생연결식’으로 이어질 때, ‘결정’의 순간에 반야가 일어난다면 윤회의 등급은 달라질 것이다. 

다양한 마음들과 그것의 기능들

오온(색·수·상·행·식) 중에 ‘수상행식(受想行識)’이 다양한 마음 요소들의 상호 작용에 해당한다. 마음의 분류와 기능은 학파마다 조금씩 다르다. 〈유식(唯識)〉에서는 전5식·제6식(의식)·제7말라식·제8아뢰야식으로 구분한다. 초기불교에서는 찟따·마노·샨냐·윈냐나 등으로 불린다. 깨달음의 마음도 빤야·쌈파쟈냐·삿띠 등 다양한 기능과 역할을 하는 마음들로 나누어진다. 특히 마노(Mano, 의意)의 경우, 유식에서는 자아의식을 지칭하는 말나식의 어원인 마나스(Manas)와 연관된다. 이는 남자 또는 사람(또는 인류)이라는 뜻의 영어인 ‘맨(Man)’의 어원이기도 하다. 유식에서는 제7말나식을 뜻하지만, 아비담마에서는 그 역할이 사뭇 다르다. 마노(의意)는 (17심찰나의 과정에서) 오식의 앞뒤에서 연결을 시켜 주는 매체의 역할을 한다. 오식의 앞에서 오문전향의 기능을, 오식의 뒤에서는 의문전향의 바탕이 되는 ‘받아들이고 조사하는 마음’으로 연결시키는 역할을 한다. 즉, ‘의(意)’는 이러한 연결을 통해 ‘식(識)’으로 전환시키는 기능을 한다.

아무튼 요지는 우리가 막연히 마음 또는 의식과 무의식 등으로 부르는 개념(덩어리)은 반야로 인해 해체(분해)된다는 것이다. 의(意)와 식(識), 작용만 하는 마음, 과보의 마음, 바왕가, 죽음의 마음, 재생식, 마음과 마음부수, 조건 마음의 유무 등으로 무수히 쪼개진다. ‘17심찰나 (또는 15심찰나)’가 드러남에 따라 우리가 살아 있을 때든 죽었을 때든 (몸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마음의 찰나적 생멸과 그것의 상속’은 멈추지 않고 계속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제 ‘무엇을 상속할 것인가’만이 관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