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시대의 불교를 다시 묻다

한국·인도서 수행한 불교 사상가 형이상학 불교에서 경험의 불교로 세속 시대를 위한 불교의 재해석

2025-11-20     여수령 기자

오늘날 불교는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 가까이에 들어와 있다. 최근의 ‘힙불교’ 열풍뿐만 아니라 명상을 향한 대중적 관심, 이웃 종교와의 활발한 교류, 기후 위기와 인권 문제 등 사회 문제에 대한 불교의 역할이 강조되면서, ‘과거의 가르침을 어떻게 현재적 의미로 되살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직면하게 됐다. 영국 출신의 세계적 불교 사상가 스티븐 배철러(Stephen Batchelor)의 〈불교 이후〉는 이러한 문제의식 위에서 출발한다.

저자는 1974년 21살의 나이에 출가해 7년간 인도, 스위스, 독일에서 티베트 겔룩 전통의 스승들과 수학했다. 1981년 5월에는 송광사에서 방장 구산 스님의 지도로 선불교를 수행했다. 이 같은 경험과 공부를 토대로 저자는 불교를 다시 ‘지금 여기의 삶’ 속에서 읽어 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책의 근본적 질문은 단순하다. 

“현대 세속 사회에서 불교의 다르마(법)를 어떻게 살아 있는 가르침으로 이해할 것인가.” 

그는 불교를 초월적 신념이나 형이상학적 진리 체계가 아닌,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천적 지혜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불교가 특정한 교단 구조나 신화적 권위 안에 머무른다면 우리 시대의 실존적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은 전통적 사성제를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한 ‘네 가지 과제(The Four Tasks)’에 집약된다. 그는 사성제를 고통을 이해하고, 집착을 놓고, 평정 속에서 행동하며, 그 길을 지속하는 수행의 과제로 재구성한다. 이는 깨달음이 초월적 경지가 아닌 당장의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실천해야 하는 태도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또한 불교를 ‘궁극적 진리’를 주장하는 종교로 이해하는 태도를 경계한다. 공성(空性)의 개념 또한 초월적 실재가 아니라 관계적 존재로 살아가는 인간의 감수성, 즉 “이 땅에서 깨어 있는 방식”으로 설명한다.

또한 불교를 절대화하거나 신비화하려는 시도 대신, 구체적 경험에서 시작하는 ‘세속적 감각’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속’은 단어의 본래 의미인 ‘이 시대, 이 세계’이며, 이는 불교가 내세보다 지금의 세계에서 수행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강조한다.

기후 위기, 사회적 불평등, 과학기술의 급격한 변화 등 인류가 마주한 문제에 불교가 응답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에는 수행자로서의 진지함과 사회적 책임 의식이 함께 담겨 있다.

저자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송광사에서의 경험은 이 책에 제시된 불교관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이었다”며 “화두 수행은 의심(疑心)의 중심성을 이해하게 해 주었고, 이는 다양한 불교적 실타래들을 ‘세속 다르마’라 부르는 것으로 엮어 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불교 이후 / 스티븐 배철러 지음 / 강병화 옮김 / 운준사 / 3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