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스님의 문자 반야] 18.유마방장
좁은데 왜 이리 넉넉할까?
〈유마경〉‘부사의해탈품’에는 주인공 유마 거사의방,이른바 유마방장이 소개된다.그 방은 가로세로1장(丈),즉 약3미터남짓이었다.
유마 거사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듣고붓다의 제자들이그를 문안하러 찾아왔다.그때 사리불은속으로이렇게 생각했다.
“방 안에 의자 하나 없는데,이 많은보살들과 제자들은 어디에앉는단말인가?”
그의 마음을읽은 유마가말했다.
“진정 법을 구하는 이는 자신의 몸조차돌보지않습니다.하물며 의자 따위에 마음을 쏟을이유가 있겠습니까?”
이 말을 마친유마가 신통력을 일으키자,그 좁은 방 안에3만2천 개의 법좌가 들어왔다.놀랍게도그 많은 좌석이서로넉넉히 자리를차지하고도 방은 여전히 여유로워 보였다.
이 일화는 환상도,전설도 아니다.유마의 방과 의자는상징이다.마음에 분별과 차별이 없고 자애로사람을 대하면,비좁은 곳에서도 번잡하지 않고늘넉넉하다는뜻이다.
이와 통하는 선시가 있다.
“내게하나의 주머니가 있으니,
넣고또넣어도늘 여유롭고,
퍼내고또퍼내도여전히 가득하도다.”
동서양의민담과 신화에도이와 같은 ‘요술 주머니’ 이야기가 전해진다.그리스 신화에는 ‘마르지 않는 주전자’ 이야기가 있다.제우스는 아들 헤르메스와 함께 인간의 모습으로프리기아 지방을 여행했다.두 신은여러 집의 문을두드리며 하룻밤묵을 곳을 청했으나,누구도초라한나그네를 받아들이지 않았다.오직한 집,산기슭의 초라한오두막만이 그들을 맞이했다.그곳에는 늙은 농부 필레몬과 그의 아내 바우키스가 살고 있었다.노부부는가진 것이 거의 없었지만,정성을 다해 나그네를 대접했다.식탁은소박했으나,그들이 가진 것 중가장 좋은음식으로 차려졌다.그런데 한 병뿐이던 포도주는 잔을 따를 때마다 다시 가득 채워졌다.차별 없는연민과 자비의마음이‘마르지 않는 주전자’를 불러온 것이다.
필레몬과 바우키스의이야기는 이후수많은예술가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괴테는 〈파우스트2부〉에 그들을 등장시켰고,고골은 단편 〈옛 기질의 지주〉에서 이 신화를 풍자적으로 재해석했다.너새니얼 호손은 〈기적의 주전자〉에서같은 모티프를 차용했다.
화려한 대저택에서도고립과 적막 속에 사는 이가 있다.반면 비록 좁은 집이라도 좋은 벗들이 드나들며 웃음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다.
지금 나의 방은어떤가.과연 ‘유마의 방’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