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야의 시, 불교를 만나다] 21. 잃는다는 것 : 오세영의 ‘10월’
낙과의 계절 이별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시 무언가 잃음은 얻음, 자연 이치 멀어짐에도 연습이 필요하다
모든 것이 떨어지고 흩어지는 낙과(落果)의 계절이다. 밤과 감도 떨어지고 까치밥만 홀로 남아 이별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기후 변화 때문인지 요즘엔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 말해야 한다고 한다. 그만큼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여름, 겨울이 길어지고 있다. 유난히 덥고 길었던 여름이 끝나고 가을을 기다렸는데, 어느새 찬바람이 살을 파고든다. 그래도 아직은 가을이라 우기고 싶다. 온 산하를 붉게 물들인 단풍도 아직 보내지 않았으니까.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 10월의 마지막 밤을.”
이용의 ‘잊혀진 계절’이 유행할 때만 해도, 10월 31일이 돌아오면 레코드 가게와 라디오에서 하루 종일 들을 수 있었다. 예전만은 못하지만 그날이 오면 아직도 이 노래를 떠올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가수 또한 이날만큼은 공연을 다니느라 바쁘게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아직도 기억하고 찾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10월은 ‘잊혀진 계절’로 우리의 마음속에 남아 있다.
낙과의 계절에 가을 시 한 편을 만났다. 바로 오세영 시인의 ‘10월’이다. 잃는다는 것, 이별에 대한 의미를 새롭게 성찰할 수 있는 작품이다. 시인은 ‘낙과(落果)의 투신’을 슬퍼하지 말라고 노래한다. 마지막 이별은 이별이 아니라 또 한 번의 만남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서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과연 시인에게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오세영 시인은 1968년 박목월 시인에 의해 〈현대문학〉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게 된다. 시인이자 대학교수로 활동해서인지 오세영은 시집뿐만 아니라 학술서도 많은 편이다. 대표적인 시집으로 〈사랑의 저쪽〉을 비롯해 〈바람의 그림자〉, 〈마른하늘에서 치는 박수 소리〉 등이 있다. 특히 2016년에는 영어로 번역된 시집 〈밤하늘의 바둑판〉이 미국의 문학 비평지인 〈시카고 리뷰 오브 북스(Chicago Review of Books)〉에 의해 최고의 시집(Best Poetry Books) 12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만해문학상을 비롯해 목월문학상, 정지용문학상, 소월시문학상, 고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08년에는 문화예술 발전에 이바지한 공로가 인정돼 국가로부터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오세영은 한국시인협회장을 역임했으며 예술원 회원이기도 하다.
올봄에는 지난 60여 년 동안 쓴 작품 가운데 400여 편을 모아 〈시사백 사무사(詩四百 思無邪)〉라는 시집을 출간했다. 공자가 〈시경(詩經)〉 300여 편을 압축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思無邪]’라고 했던 말에서 따온 제목이라 한다. 그만큼 사적인 욕심이나 거짓 없이 시를 쓰고 바르게 살아왔다는 자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시인의 말처럼 “그 같은 마음의 자세를 견지하려고 지금까지 노력해 왔던 한 시인의 애잔한 시작 생애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오늘의 시 ‘10월’은 ‘한국대표 명시선 100’ 가운데 오세영의 〈천년의 잠〉에 실린 작품이다. 책에는 제목이 ‘1월’부터 ‘12월’까지 돼 있는 시들도 함께 담겨 있다. 오세영의 ‘10월’을 검색해 보니, AI 브리핑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가을의 끝자락에서 모든 것을 잃고 홀로 남은 화자가 자연의 변화를 바라보며, 이별을 성숙과 만남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깨달음을 담은 작품입니다.”
AI의 해석에 공감이 가면서도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진다. 앞으로 인간의 역할이 얼마나 남아 있을까 싶어서 그렇다. 또한 “가을의 쓸쓸함 속에서 인생의 이별과 성숙, 그리고 새로운 시작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라는 부연 설명까지 해 주고 있다. 인공지능의 해석이 얼마나 마음에 다가오는지 시를 감상해 보기로 하자.
“무언가 잃어 간다는 것은 / 하나씩 성숙해 간다는 것이다. /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 돌아보면 문득 / 나 홀로 남아 있다. /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 분분히 지던 꽃잎은 얼마나 슬펐던가. /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 화상 입은 잎새들은 또 얼마나 아팠던가. / 그러나 지금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때, / 이 지상에는 / 외로운 목숨 하나 걸려 있을 뿐이다. / 낙과落果여, / 네 마지막의 투신을 슬퍼하지 마라. / 마지막의 이별이란 이미 이별이 아닌 것 / 빛과 향이 어울린 또 한 번의 만남인 것을, / 우리는 / 하나의 아름다운 이별을 갖기 위해서 / 오늘도 / 잃어 가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잃음은 또 다른 얻음이다
인공지능보다 얼마나 해석을 잘할지 모르겠다. 어찌 보면 이 글도 AI 브리핑과 비교 대상이 될 것 같다. 바야흐로 인간이 AI와 경쟁하는 시대다. 어차피 인정할 거라면 빨리 인정하는 것이 좋다. 결국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이 시를 읽으면서 문득 영화 ‘화엄경’에서 주인공 선재의 대사가 생각났다. 선재는 진리를 찾기 위해 배낭 하나 짊어지고 여기저기 떠돌아다닌다. 때로는 현자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일부러 사고를 치고 교도소에 들어가기도 한다. 진리를 찾지 못하고 실의에 빠진 주인공에게 어느 날 새로운 깨달음이 다가온다.
“세상은 자신을 잃어 가면서 세상이 된데요. 하늘은 비를 잃어 허공이 되고요, 강은 강을 잃어 바다가 되죠. 나무는 꽃을 잃어 열매가 되고요, 나는 마음을 잃어 허공이 되었어요. 마음을 잃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탐내고 원망하고 다투는 어리석은 고통의 바다를 헤어나지 못해요.”
선재의 말처럼 하늘이 비를 잃지 않으면 허공이 될 수 없다. 마찬가지로 강이 강을 잃지 않으면 바다가 되지 않는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자신을 잃지 않으면 열매가 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보면 무언가를 잃는다는 것은 다른 무언가를 얻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강을 잃는 것은 곧 바다를 얻는 것이며, 꽃을 잃는 것은 열매를 얻는 것이다. 계절의 변화 또한 마찬가지다. 봄을 잃었다는 것은 곧 여름을 얻었다는 의미다. 여름을 잃어 가을을 얻으며 단풍을 잃어 하얀 눈을 얻는 것이다. 자연의 이치가 그렇다.
우리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오랜만에 친구의 아들을 만나 “너 언제 이렇게 많이 컸니? 이제 성인이 다 됐구나”라고 말하는 경우를 흔히 본다. 이때 성인은 어린이를 잃어서 된 것이다. 나이 드신 분들이 가끔 청춘을 잃었다고 한탄하는데, 거꾸로 생각하면 이는 곧 백발을 얻은 것이 된다. 근육을 잃음은 주름을 얻은 것과 같다. 어둠과 밝음,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 등이 모두 그렇다. 자연스러운 변화의 과정일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무언가를 잃으면 슬퍼한다. 잃었다는 사실에 방점을 찍고 세상을 보는 것이다. 시인의 지적처럼 ‘그리움에 목마르던 봄날 저녁 분분히 지던 꽃잎’은 무척 슬펐다. ‘욕정으로 타오르던 여름 한낮 화상 입은 잎새들’ 또한 많이 아팠다. 아프고도 슬픈 삶의 과정이다. 이때 시인은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라고 말한다. 무언가를 잃었다는 것은 성숙해 가는 것이라고. 이렇게 보면 어린아이를 잃은 것은 어린이가 성숙해져서 성인이 된 것과 같다. 잃음이 아니라 얻음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잃었다고 슬퍼할 것이 아니라 새로움을 얻었다고 기뻐할 일이다.
이별 또한 마찬가지다. 시인은 마지막의 이별이란 빛과 향이 어울린 또 다른 만남이라고 노래한다. 그러니 이별했다고 슬퍼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는 것이다. ‘원시(遠視)’라는 시에서 오세영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는 사람아, /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 내 나이의 이별이란 /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이별이란 헤어짐이 아니라 멀어지는 일이라는 시인의 통찰이 새롭게 다가온다. 이별을 멀어지는 일로 받아들이려면 연습이 필요하다고 시인은 말한다.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서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갑자기 찾아온 이별에 어쩔 줄 모르고 힘든 시간을 보내야 한다. 특히 이별이 죽음일 경우는 더욱 그렇다.
장자는 죽음을 가리켜 ‘자연으로부터 받은 옷을 벗는 일’이라고 하였다. 삶이라는 옷을 입고 열심히 살았으니 죽음이라는 잠자리에 들 때는 옷을 벗는 것이 자연스럽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현실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평소 ‘이별 연습’이 필요한지 모를 일이다.
얼마 전 암 투병으로 힘들어하던 벗이 10월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세상과 작별했다. 한 친구는 “사느라 고생했다”란 이별의 말을 남겼다. 이별은 곧 새로운 만남이라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중생으로서 슬픔을 가눌 수는 없었다. 벗의 명복을 빌면서 법당에 인등을 밝혔다. 친구가 아플 때는 이름만 있었는데, 그 옆에 쓰인 ‘영가’란 글씨를 보자 애써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다. 이별은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믿어 본다. 이곳에서의 이별은 ‘또 다른 빛과 향이 어울린’ 저곳에서의 만남이라고. 이 또한 연습이 필요한 일이다.
▶한줄 요약
시인은 무언가 잃음은 성숙해 가는 것이고 이별은 또 한 번의 만남일 뿐이라고 노래하며 아름다운 이별을 위해 잃어 가는 연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