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간과 출세간] 한쪽 바퀴로는 수레를 굴릴 수 없다

출가, 현대 고통 꿰뚫고 지혜 제시  재가, 능동적 실천·현실 화두 제기 불교혁신 출·재가 파트너십에 달려 

2025-11-14     박수호 교수/ 중앙승가대 불교사회학부

산중에 고립된 승가와 세속에서 파편화된 신도, 일방적 가르침과 수동적 외호라는 비대칭적 관계가 고착되면서 불교는 변화의 수레를 한 발짝도 밀고 나가지 못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한국불교가 잠들어 있던 내재적 혁신 동력을 깨워야 할 때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혁신의 강물을 흐르게 할 것인가? 그 해답은 불교 공동체를 떠받치는 두 기둥, 출가와 재가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데에서 찾아야 한다. 불교의 미래는 이 두 주체가 서로의 역할을 재정의하고 대등한 파트너로서 협력할 때 비로소 열릴 것이다.

먼저 출가 승가는 ‘지혜의 깊이’를 책임져야 한다. 단순히 경전을 암송하고 연찬하는 수준을 넘어서 기후 불안, 디지털 소외, 관계의 파편화 등 현대인들이 겪는 새로운 형태의 고통을 진단하고 시대의 고통을 꿰뚫어 보는 ‘창조적 해석자’가 돼야 한다. 자비와 연기의 가르침을 개인의 마음 문제를 넘어 사회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는 지혜로 확장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일방적으로 답을 주는 권위적 스승이 아니라 대중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 ‘안내자’로서 열린 토론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사찰을 기복적 의례 공간을 넘어 명상과 심리 상담 등 실질적 위안을 주는 ‘실천적 수행’의 공간으로 개방하는 것 역시 출가자의 몫이다.

다음으로 재가불자는 ‘실천의 넓이’를 구현해야 한다. 세속의 삶 자체가 수행의 장이므로 스님의 법문에 의지하는 수동적 신자의 모습에서 벗어나 ‘능동적 실천가’가 돼야 한다. 이는 자신의 소비 생활이나 직업윤리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정신을 구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불교가 외면해서는 안 될 ‘세상의 질문자’로서 사회적 약자의 고통이나 환경 문제 같은 현실의 화두를 교단에 끊임없이 제기해야 한다. 이러한 질문은 단순한 비판이 아니라 잠들어 있는 불교의 지혜를 깨워 현실과 만나게 하는 가장 중요한 공양이다. 이러한 ‘사회적 실천’은 개인의 해탈을 넘어 공동체의 안녕과 시대의 아픔을 보살피는 보살의 길과 다르지 않다.

결국 불교 혁신의 성패는 이 둘의 파트너십에 달려 있다. 이 관계는 서로의 고유한 역할을 존중하는 ‘상호 인정’과 일방적 공격이나 무시가 아닌, 끊임없는 대화로 합의를 만들어 가는 ‘설득’의 토대 위에 서야 한다. 물론 그 과정에는 필연적으로 이견과 갈등이 따를 것이다. 그러나 이 생산적인 긴장이야말로 더 높은 차원의 합의를 도출하는 화쟁의 과정이다. 재가가 삶의 현장에서 길어 올린 절박한 질문을 던지고, 출가는 깊은 성찰로 지혜로운 방향을 제시하는 선순환이 이뤄져야 한다. 출가가 지혜의 ‘수직축’을 세우고 재가가 실천의 ‘수평축’을 넓힐 때, 비로소 불교는 우리 사회의 좌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살아난 불교는 각자도생의 시대에 새로운 공동체의 희망을 제시하고, 우리 사회에 대안적 삶의 가능성을 보여 줄 것이다. 출가와 재가라는 두 바퀴가 함께 굴러갈 때, 불교라는 수레는 시대의 고통을 싣고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