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전하는 무정설법

동식물 78종에 담긴 ‘신의 섭리’ 자연에 대한 같고도 다른 시선

2025-11-07     여수령 기자

연꽃, 코끼리, 사자. 자연스레 ‘불교’가 연상되는 단어들이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포도나 가시나무, 뱀 등이 아닐지.

〈성경 속 동물과 식물〉은 서울대교구 허영엽 신부가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연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16년 만에 개정판으로 단장한 이 책은 성경에 등장하는 78종의 동식물을 통해 각 존재가 지닌 상징과 의미를 세심하게 풀어낸다. 눈앞의 꽃 한 송이, 길가의 새 한 마리에도 ‘신의 섭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말씀 속 살아 숨 쉬는 동물 이야기’에서는 뱀과 비둘기, 낙타처럼 익숙한 상징에서부터 용, 모기, 벼룩 같은 의외의 피조물까지를 다룬다.

성경에서 50여 차례 언급되는 뱀은 선과 악의 두 가지 의미를 지닌다. 창세기에서는 아담과 이브를 유혹해 선악과를 따먹게 만드는 간교한 존재로 그려지지만, 비잔틴 교회나 콥트 교회 주교들의 지팡이에 새겨진 뱀 형상은 지혜를 상징한다. 비둘기가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건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온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 비롯됐음도 알 수 있다.

이와 함께 이리는 거짓 예언자를, 개구리는 하느님의 재앙을, 메뚜기 떼는 심판의 도구를, 독수리는 해방과 강인함을 상징한다는 것을 성경과 그 시대 역사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설명한다. 

같은 동물을 바라보는 각 종교의 다른 시선을 짚어낸 점도 흥미롭다. 상상의 동물인 용은 불교에서는 중생을 지혜의 세계로 인도하는 동물로 여겨지는 반면, 기독교에서는 서양 문화 전반이 그렇듯 악한 세력의 상징으로 여긴다.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적대 세력으로 자주 등장하기에, 용과 싸워 승리하는 이야기는 기독교 미술에서 애용되는 주제였다. 

‘하느님의 정원 가득 채운 식물 이야기’에서는 평화와 축복의 상징 포도와 축복의 근원이 되는 밀, 부활을 상징하는 편도나무, 승리와 평화를 나타내는 올리브나무 등을 소개한다. 특히 아주 작은 사물에 비유되는 겨자씨는 불교에서 ‘수미산이 겨자씨 속에 들어간다’는 비유로 실상의 깨달음을 끌어내고, 성경에서는 ‘하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는 말로 작은 믿음에 엄청난 능력이 내재되어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는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 해와 달, 동물과 식물 등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만드신 뒤, 흙으로 사람을 빚었다고 기록하고 있다”며 “하느님께서 들려주신 노래를 들을 수 있기에 들판에 핀 한 송이 꽃에서도 우리는 큰 은총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염수정 추기경은 추천의 글에서 “성경에 나오는 문화, 역사 등 특별한 환경을 알면 훨씬 재미있게 성경을 읽을 수 있고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책을 읽고 나면 ‘들판의 꽃을 보라. 하늘을 나는 새를 보라’는 성경 구절에 불교의 ‘무정설법(無情說法)’을 겹쳐 보게 된다. 언어를 넘어선 가르침이 자연 속에 이미 펼쳐져 있기 때문이다.

 

성경 속 동물과 식물 / 허영엽 지음 / 가톨릭출판사 /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