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자비로 세상을 밝히다

생명존중과 자비실천의 미학 조명 “미학적인 삶은 가장 자기다운 삶” 교육·포교 매진 백원기 교수 유작

2025-11-07     여수령 기자

한국 근대사의 거대한 지성, 만해 한용운(1879~1944) 스님. 독립운동가나 시인이라는 프레임만으로는 스님의 사상과 삶을 담아내기 어렵다. 

〈만해 한용운 미학의 철학〉은 만해 스님의 삶과 사상을 ‘미학’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로 해석한 책이다. 저자인 고 백원기 교수〈사진〉는 스님의 불교적 실천과 문학, 그리고 근대적 사유가 어떻게 ‘생명존중과 자비의 미학’으로 통합되는지를 추적한다.

'만해 한용운 미학의 철학'의 저자 백원기 교수.

저자는 만해 스님의 삶을 ‘창조적 저항의 미학’으로 해석한다. 스님에게는 모든 존재가 서로 조화를 이루고 화합하는 사랑과 평화의 관계망을 구축하는 것이 화두였고, 이것이 곧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의 상실과 아픔을 치유하고자 끝까지 노력한 ‘미학적 삶의 전형’이라는 설명이다. “자유가 없는 삶은 죽음과 같고, 평화가 없는 세상은 지옥과 같다”는 스님의 외침은 불교적 자각과 독립운동의 명분을 연결하는 근간이 됐다.

책은 총 10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책은 ‘미학적인 삶은 가장 자기다운 삶’이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이어 초반부에는 만해 스님의 삶과 사상을 살피고, 중반부에서는 〈님의 침묵〉의 문학적 상징 세계를 깊이 파고든다.

만해 스님에게 ‘님’은 조국이자 불성(佛性)이자 진리의 이름이며, 동시에 모든 존재를 향한 자비의 상징이다. 스님의 시 속에서 꽃과 나무, 침묵과 바람은 현실의 고통과 초월적 진리를 동시에 품는다. 저자는 이러한 상징이 불교의 연기론과 화엄 사상, 그리고 서정적 초월의 미학이 만나는 자리임을 보여 준다.

특히 주목되는 대목은 ‘심우송(尋牛頌)’과 ‘십우도(十牛圖)’에 대한 해석이다. 저자는 만해 스님이 소 찾기의 은유를 통해 자기 탐구와 깨달음의 길을 그리고, 이를 민족 현실의 극복과 연결했다고 본다. ‘심우’는 잃어버린 자아와 민족의 혼을 동시에 되찾는 서사였고, 이 과정에서 만해의 시 세계는 현실을 넘어서 초월의 미학, 즉 ‘무한한 자유의 세계’를 노래한다.

후반부에서는 스리랑카의 불교개혁가 다르마팔라와 만해를 비교함으로써 만해 사상의 국제적 보편성을 탐색한다. 두 사람 모두 식민 현실 속에서 불교를 근대적 사상으로 재해석하고, 민족 해방과 인간 해방의 길을 모색했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만해 사상이 인류 보편의 평화와 연대를 지향하는 ‘불교적 미학의 세계화’를 예시했다고 본다.

저자는 “동체대비의 생명존중과 자유와 평등 기반의 깊은 불교적 사유에서 형성된 만해의 삶과 문학작품들은 일제강점기라는 어두운 시대의 고난을 극복하고 해방된 미래를 지향하게 할 뿐만 아니라, 갈등과 반목, 전쟁 등 오늘날의 불안한 시대적 상황에서 우리의 상황인식과 그에 대한 철저한 대응전략과 자기다운 삶의 필요성을 일깨워 준다”고 의미를 짚었다.

저자인 백원기 교수는 동국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영어 교사를 거쳐 동국대 전산원과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의 교수로 재직했다. 

용인불교학생회와 반야회를 창립하고 조계종 국제포교사회장을 맡는 등 포교에도 앞장섰다. 퇴직 후 후학을 지도하다 올해 4월 별세했다. 〈자연 관조와 명상, 시가 되다〉 등 20여 권을 출간했으며 이 책이 고인의 유작이다.

만해 한용운 미학의 철학 / 백원기 지음 / 운주사 / 2만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