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배의 24번의 계절] 21. 입동_봉은사 길을 걷다
새봄 위해 생명 품는 겨울의 서막
펄럭이는 깃발들 너머로 보이는 것은 장엄한 새 세상의 모습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불보살과 천신들이 부처님의 곁을 호위하고 삼계의 독경 소리가 노래처럼 울려 퍼지는 곳.
영원히 지지 않는 꽃들의 향기 가득하고 결코 춥지도 않고, 배고픔도 없는 그런 세상. 그 안에 들어설 방법은 오직 지난날 내가 쌓은 자비와 선업(善業)만이 말해 줄 것이다.
지금은 차가운 계절. 모진 바람 몰아치는 이 세계를 바꿀 방법은 오직 하나, 그뿐이다.
겨울이 일어선다
입동(立冬). 마침내 겨울이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24절기 중 19번째 절기이자, 겨울의 첫 관문인 입동. 여름과 겨울. 연중 가장 극단에 서 있는 두 계절의 차이점은 크게 음양의 기운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염없이 상승하는 불의 기운을 지닌 여름. 폭발하듯 피어나는 그 에너지는 깊이 잠들어 있던 뭇 생명의 잠을 깨우고 생장을 재촉하는 생명의 기운이다. 반면 겨울은 나날이 짙어지는 냉기와 함께 움츠러들고 생장 반응이 느려지며 마침내 모든 활동이 멈추어 버리는 음의 세계인 것이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국립민속박물관 편찬)에 의하면, 입동 즈음에는 ‘동면하는 동물들이 땅속에 굴을 파고 숨으며 산야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풀들은 말라 간다’고 전해진다. 또 중국 전한 시대의 회남왕 안(安)이 편찬한 〈회남자(淮南子)〉에서는 “추분(秋分)이 지나고 46일 후면 입동(立冬)인데 초목이 다 죽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자연이 순행하며 벌어지는 결과일 뿐, 겨울을 마냥 죽음의 계절로 낙인찍는 것은 큰 실수다. 겨울의 폭설은 겨우내 땅의 수분을 유지해 주고 낙엽이 지는 것은 나무들이 겨울 동안 영양 소모를 최소로 하기 위한 생명의 본능.
그렇게 움츠렸던 자연도 새로운 해가 시작되고 입춘이 오면 다시 잠들었던 몸을 일으킬 것이다. 하지만 새봄이 오기까지 겨울이 모든 생명에게 냉혹한 시간임은 변함이 없다. ‘겨울이 일어선다’는 뜻은 곧 길고 긴 고난의 시기를 예고하는 것이니까.
겨울과 함께 살아가는 법
거대한 설인(雪人)처럼 일어서는 이 계절에 맞서 우리가 준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먼저 집안의 냉기를 막고 난방비를 절약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찾는 것. 또 가장 중요한 겨울 채비인 김장 준비로 전국이 떠들썩해지는 것 또한 이 무렵 풍경이다. 두꺼운 겨울 옷가지와 신발을 꺼내고 독감 예방을 위한 노력도 마찬가지.
하지만 진짜 월동 준비는 그보다 더 넓은 영역에서 이루어질 터다. 자비, 연민, 보시, 공존. 이 모든 좋은 것의 이름으로.
불과 얼마 전까지도 농촌에서는 입동 무렵 크고 작은 고사를 지내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햅쌀로 떡을 하고, 먹을거리를 모아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동제를 지내는 것. 또 곳간과 부엌, 마루, 특히 외양간에서 소를 향해 고사를 올리던 전통이다.
설령 고사를 지내진 못하더라도 겨울이 오기 전까지 소들이 좋아하는 풀을 가득 베어 먹이고 그들의 수고를 잊지 않는 것은 흔한 풍경이었다. 비록 짐승일지라도 함께 살아가는 뭇 생명에게 감사하는 의식은 우리 민족에게 익숙하고, 또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었던 셈이다.
우리네 옛 어른들은 감나무의 감을 거두며 남김없이 모두 따 버리는 것을 인정 없는 행동으로 여기고 나무랐다. 겨울철 먹을 것이 줄어 배곯을 새들을 위해 일부러 좋은 감을 따지 않고 두었던 ‘까치밥’. 땅이 없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 벼를 일부 베지 않고 남겨 두거나, 추수한 뒤에도 그들이 주워 갈 이삭을 남겨 두는 ‘이삭줍기’. 아무리 가난한 시절에도 입동이 되면 십시일반 힘을 모아 마을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며 건강을 기원했던 ‘치계미(雉鷄米: 꿩, 닭, 쌀) 잔치’.
유난하지 않은 그 이름에, 무심하도록 일상적인 공동의 원칙 속에 우리네 진짜 겨울의 풍경이 담겨 있다.
봉은사 생전예수재
서울시 강남구 삼성동. 지하철 봉은사역에 내려 조금만 걷다 보면 천년고찰 봉은사의 모습을 마주한다. 무역센터와 공항터미널, 대형 호텔과 테헤란로를 가득 메운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선 땅. 너무나 도시적인 그 풍경 속에 봉은사는 마치 또 다른 세상처럼 유유히 그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난 10월 말, 봉은사 도량은 온통 형형색색의 깃발과 번으로 장식돼 펄럭였다. 거대한 반야용선이 극락정토를 향해 떠나는 때가 바로 이런 모습일까.
이날은 봉은사 생전예수재(生前豫修齋)의 회향일. 대한민국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된 봉은사 생전예수재는 생전에 공덕을 미리 닦아 사후의 고통에서 벗어나고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한국불교만의 전통의식이다. 이번 생전예수재에는 일주문에서 법왕루까지 길게 뻗어 있는 오방번을 중심으로 모두 3100여 개의 번, 2000송이의 지화가 장식됐다고.
현생의 삶에서 지은 무수한 과보(果報)를 참회하고 복을 미리 일궈 사후의 자신을 구원하는 것. 하여 죽은 자를 위한 것과 같이 49일간 재를 지내며 기도의식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니 정성껏 장엄한 이 도량이 반야용선의 모습과 같으리라 여겨도 이상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현생의 죄를 미리 닦는 생전예수재. 얼핏 중세 교회의 면죄부를 떠올리게도 하지만, 예수재의 참뜻은 도리어 정반대의 길을 제시한다.
예수재는 과거의 생과 현생, 다음 생에 거쳐 수행을 멈추지 않겠노라 다짐하는 약속의 의식이다. 내 안의 불성을 닦아 깨달음을 얻고 끝내 뭇 생명을 향해 회향하는 삶. 모든 불제자의 꿈인 그것은 돈으로 살 수도, 누군가 대신해 줄 수도 없다. 그러니 살아 있는 이들은 죽음 너머의 나를 빌어 지금 이 순간을 더욱 맑히겠노라, 다짐하는 것이다.
성스러운 약속으로
조선 시대와 현대 한국불교 의례를 집대성한 대표적인 의례집으로 평가받는 안진호 스님의 〈석문의범(釋門儀範)〉. 그 안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해진다.
“예수코자(예수제를 행하고자) 하거든 방생부터 먼저 하라. 세상 사람이 매양 중을 청해서 불사(佛事)를 작(作)하야 미리 닦는 것은, 진실로 죽은 뒤에는 육도(六途)에 윤회함에 업식(業識)이 망망(茫茫)할지라. (중략) 대저 세간(世間) 자선(慈善)은 방생보다 더 좋은 것이 없으니 내가 자비지심(慈悲之心)으로 방생하야 불·보살의 자비지덕(慈悲之德)에 감동되면 반드시 불·보살의 복을 입을 것이니라.”
이는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자비행을 실천하고 또 실천해야 한다는 간곡한 당부다. 오직 그것만이 더 나은 세계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것을.
지난 2012년 러시아 툰드라 지역에서 ‘실레네 스테노필라’라고 불리는 시베리아 토종 꽃 씨앗들이 발견됐다. 무려 3만2000년이나 얼어붙어 잠들었던 씨앗. 영겁과 다름없는 시간을 얼어 있었지만, 학자들은 그 꽃씨에 생명이 머물러 있음을 의심치 않았다. 그리고 그 믿음은 작고 사랑스러운 백색 꽃들로 피어나 온 세상에 3만2000년 전의 봄날을 보여 준 것이다. 결코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 성스러운 약속. 선근(善根)이란 아마도 그와 같으리라.
휘날리는 깃발 저 너머 세상이 아득해진다. 저 아름답고도 아득한 세계에 끝내 도달하는 방법은 함께 맞잡은 손을 놓지 않는 것. 오직 자비행으로 이 차가운 계절을 이겨 내는 것뿐이다.
▶한줄 요약
24절기 중 19번째 절기. 겨울의 첫 관문인 입동은 새봄을 맞기 위해 에너지를 비축하는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