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축년 대홍수 100년, 청호 선사 자비 정신 잇자”

11월 1일, 봉은사 미륵광장서 추모제 희생자 극락왕생·국태민안 발원 708명 구한 청호 선사 자비정신 기려 "자비와 연대 이어지는 계기 되길"

2025-11-01     여수령 기자
사단법인 국가무형유산 봉은사 생전예수재 보존회는 11월 1일 봉은사 미륵광장에서 ‘을축년 대홍수 추모문화제’를 열고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했다.

서울 봉은사에서 을축년 대홍수 발생 100주년을 맞아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재난민 708명을 구해낸 청호 선사의 자비 정신을 기리는 법석이 펼쳐졌다.

사단법인 국가무형유산 봉은사 생전예수재 보존회(이사장 원명 스님, 봉은사 주지)가 11월 1일 봉은사 미륵광장에서 개최한 ‘을축년 대홍수 추모문화제’에는 주지 원명 스님과 선원장 관도 스님을 비롯한 사중 스님들, 조계종 미래본부 사무총장 일감 스님, 조계종 포교국장 도진 스님, 서명옥‧고동진 국회의원,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 김길영·김형재 서울시의원, 복진경 강남구의회 부의장 등 사부대중이 참석했다.

‘20세기 한반도 최악의 홍수’로 불리는 을축년 대홍수는 1925년 여름 한반도를 강타해 막대한 사상자와 피해를 냈다.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청호 선사(1875~1934)는 사중 재산을 투입하고 직접 구조대를 이끌어 고립된 708명의 목숨을 구했다. 1927년 스님의 공덕을 기리는 시와 그림을 엮은 <불괴비첩>이 출간됐고, 1929년에는 봉은사 경내에 ‘나청호대선사 수해구제 공덕비’가 세워졌다.

1부는 조계종 어산어장 인묵 스님의 집전으로 개식과 신중작법, 상단불공, 영단시식이 진행됐다. 상단불공에서 참가 대중은 “을축년 대홍수 추모문화제로 희생자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극락왕생하고, 이 자리에 참석한 인연 대중들은 그동안 지은 업이 청정해지고 부처님의 품 안에서 신심이 견고해져 최상의 깨달음을 얻길 기원한다”고 발원했다.

봉은사 생전예수재 보존회 이사장이사 봉은사 주지 원명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부 기념식은 내빈들의 헌화로 문을 열었다. 이어 을축년 대홍수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영상이 상영됐다.

보존회 이사장이자 봉은사 주지인 원명 스님은 인사말에서 “올해 을축년 대홍수 100주기를 맞아 당시 희생된 모든 분들과 여러 사건사고로 그동안 한강에서 목숨을 잃은 분들, 목숨을 잃고도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방황하는 모든 분들의 넋을 추모하고, 청호 스님과 많은 대중이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준 진정한 자비 보살행 정신으로 국민들과 함께 사회적 어려움을 극복하고 국태민안을 발원하는 의지를 담아 오늘 추모문화제를 봉행한다”고 말했다.

이어 “을축년 대홍수 당시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마음과 정성을 모았던 그 숭고한 정신은 오늘날 우리 모두에게 ‘세상의 어려움을 절대 외면하지 말라’는 무언의 가르침이라 생각한다”며 “그 가르침과 교훈을 우리 스스로가 실행하는 주체가 되어 나와 우리 이웃이, 나아가 모든 국민이 평안하게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참석자들이 을축년 대홍수 당시의 상황을 보여주는 추모 영상을 시청하고 있다.

서명옥 국회의원은 추모사에서 희생자들의 명복을 기원하고 “청호 선사께서 보여주신 헌신과 용기는 시대를 넘어선 연대와 자비의 정신으로 우리 근현대사에 길이 남아 있다”며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내던진 스님과 봉은사 사부대중의 숭고한 정신을 깊이 간직하고, 우리 사회를 자비로운 세상으로 만드는 표상으로 삼아 지켜나가겠다”고 말했다.

최호정 서울시의회 의장은 “소중한 생명을 앗아간 절망의 현장에서 뱃사공들과 함께 소중한 목숨을 구한 청호 스님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삶에 되살린 자리이타의 정신을 보여주셨다”며 “서울시의회도 그 가르침을 마음에 깊이 새겨 자비와 나눔의 사상을 시정 곳곳에 녹여내겠다”고 말했다.

이호귀 강남구의회 의장은 복진경 부의장이 대독한 추모사에서 “청호 스님의 이타적 헌신은 시대를 넘어 우리 모두의 귀감이 되고 있다”며 “강남구도 을축년 대홍수의 역사적 교훈과 선조들이 보여주신 정신을 잊지 않고 국민 안정과 화합을 위해 책임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축하 영상을 통해 “을축년 대홍수라는 절망의 순간 봉은사는 자비의 품이 되어 주었다. 이것은 곧 자리이타의 실천”이라며 “오늘의 추모문화제가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봉은사의 자비와 연대의 마음이 이어지는 자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특별전 ‘미증유의 대홍수’에 대해서는 “과거의 교훈을 마음에 새기며 재난에 강하고 회복력 있는 서울이 되겠다는 마음을 담은 전시”라고 소개했다.

봉은사연합합창단과 국악합주단의 추모 공연.

3부는 희생자들의 극락왕생과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공연으로 꾸며졌다. 봉은사연합합창단과 국악합주단의 추모가, 어쏘티드의 추모 뮤지컬, 봉은사무용단의 진혼무, 국악인 오정해 씨와 가수 정태춘 씨의 공연이 선보였다.

이날 봉은사 경내에는 을축년 대홍수의 참상을 전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사진 전시와 발원문 달기 등 다양한 문화 행사가 펼쳐졌다.

을축년 대홍수 추모문화 특별 전시.
추모 발원문 달기.

 

을축년 대홍수와 봉은사

을축년 대홍수는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7월부터 9월까지 우리나라를 덮친 홍수를 말한다. ‘20세기 한반도 최악의 홍수’로 불리는 을축년 대홍수는 황해도를 시작으로 약 두 달 동안 한반도 전역을 강타해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전국 사망자가 674명, 가옥 유실 6363호, 가옥 붕괴 1만7045호의 피해가 났으며 재산 피해액은 당시 국가 1년 예산의 58%에 달했다.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청호 선사(1875~1934)는 사중 재산을 투입하고 직접 구조대를 이끌어 고립된 708명의 목숨을 구하는 등 헌신적인 구조 활동을 펼쳤다. 당시 신문에는 “광주군 언주면 봉은사 주지 라청호 씨는 목선(木船) 3척을 주선하여 부리도(浮里島)민 114명을 구호하여 자기 절에 수용하고, 18일에는 목선 두 척을 사서 잠실리(蠶室里) 주민 218인을 구하는 등 현재 봉은사에 수용된 자만 404인이라더라”는 기사가 실렸다.

청호 선사의 보살행이 알려지자 1927년 스님의 공덕을 기리는 시와 그림을 엮은 <불괴비첩>이 출간됐고, 1929년에는 봉은사 경내에 ‘나청호대선사 수해구제 공덕비’가 세워졌다.

청호 선사 진영. 현대불교 자료사진.

 

서울 봉은사 부도전에 모셔진 '나청호대선사 수해구제 공덕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