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을 묻는 이에게] 우주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근원이 바로 한 점의 마음에 달려 있다

이 공부는 모든 걸 무효로 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내 앞에 어떠한 가시밭이 닥친다, 낭떠러지에 떨어져 금방 죽는다 하더라도 눈도 깜짝거리지 말아야 되는 것이 본부를 찾는 법입니다.

2025-10-17     현불뉴스

꼭 오계를 받아야 하나요?
질문 이번에 선원에서 수계법회가 있다고 친구의 간곡한 권유를 받고 수계를 신청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공부 하는 데 꼭 오계를 받아야만 할까요?

답변 여러분이 보이는 데에서 이 오계를 받았지만 보이지 않는 데서는 여러분의 몸에 마크가 붙은 거와 같아요. 청와대에 들어가는데 그냥 들여보내지 않습니다. 꼭 표시가 있어야 들여보내죠. 그와 같이 우리가 당장 죽으면 그 마크를 보고서 모셔 가고 그 마크가 없으면 지옥으로 먼저 들어가죠. 지금, 예를 들어서 경찰서에 먼저 들어가듯. 경찰서에 들어가서 웬만큼 다 서류를 꾸려서 다 해 가지고 검사로 올라가 가지고 검사가 또 해 가지고 판사로 올라가는데, 그만큼 그 위대한 마크가 있다면 그냥 무사통과거든요, 무사통과. 이게 그런 마크나 똑같아요. 스님네들은 십계를 받고 그렇게 하지만 이 신도들은 단 오계도 잘 지키지 못하니까 오계를 받게끔 한 거죠. 오계라도 잘만 받으면 그거는 무사통과예요. 못 믿거든 요담에 한번 보세요. 요담에요, 내가 지금 살아 있으니까 못 보겠지만 한번 요담에 꼭 내가 보겠다 하면 그대로 보여져요. 또 때에 따라서는 가르쳐도 줘요.

사람은 겉으로 못 보지만 이 공부 한 사람은 다 보죠. 갈빗대가 몇인지도 보고 다 봐요. 외려 가서 펼쳐 놓고 보는 것보다도 더 세밀하게 볼 수 있죠. 하지만 여러분은 못 보시니까 천상 꿈이라고 붙여야 이게 볼 수 있겠죠. 그렇죠? 하여튼 여러분이 살면서 고통이 아무리 오더라도 ‘허허, 이것 또 물이 파도가 치는구나. 바람이 불지 않게만, 주인공, 너만이 할 수 있다면 물은 잔잔할 텐데.’ 이렇게 그냥, 그게 시적이죠. 아주 얼마나 좋아요. ‘바람만 안 불게 한다면 물은 잔잔할 텐데, 너만이 할 수 있잖아.’ 하고선 진짜로 믿는다면 웃음이 나고 그런 말을 해 놓고도, 믿지 못한다면 바둥바둥 뛰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나왔다 들어갔다 하고 급한 일이 생기면 온통 야단나죠. 그게, 그게 어디 진짜 사람 사는 일이에요? 그러니까 이 수계에 대해서 가볍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마음공부에 있어 중요한 게 무엇인지요
질문
대자유인 되기 위하여 한마음 도리를 공부하고 있습니다만 마음공부를 함에 있어서 중요한 게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일러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변 부처님께서도 자기가 부처다, 또는 중생들은 중생들이다, 이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예를 들어서 곤충에 이르기까지 나 아님이 없다는 얘깁니다. 잘못하는 사람을 봤을 때에는 전자에 내가 모를 때의 그 모습으로 보고, 나하고 둘이 아니게 보니까 안타까운 거지, ‘내가 잘 알고 저 중생들이 불쌍하다.’ 이건 멀쩡한 거짓말이에요. 알겠어요, 이 뜻을? 나 아님이 없다고 할 때 둘이 아닌 거예요. 수억겁을 거쳐 나오면서 돌아 나올 때 어떤 거는 안 됐을 거 같습니까? 곤충에서부터 진화돼서 화하고, 화해서 진화되고 나투면서 이 세상에 출현했을 텐데 어떤 것이 안 됐을 성 부르냐 이겁니다.  

그랬을 때 자기가 전자에 거쳐 온 걸 알기 때문에, 그 모두를 봐도 남의 잘못 같지 않고 바로 그때의 내 모습으로 보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안타깝고 눈물 나고, 모두가 나를 버렸기 때문에 더불어 눈물이지, 나 혼자 불쌍하다고 눈물 흘리는 게 아니다 이겁니다. 일체 한마음의 눈물이지, 나 개별적인 눈물이 아니다라는 얘기예요. 여러분이 공부를 하다 보면 그 뜻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진짜로 여기저기 끄달리지 마라.” 그러는 것은 뭐냐. 털구멍을, 내면의 털구멍 한 구멍밖에는 통신처가 없다 이겁니다. 털구멍이라고 하는 자체도 방편이에요. 이게 가르치려니까 털구멍이라는 말이 나오는 거지, 털구멍이란 이름 없는 그 이전을 털구멍이라고 그런 겁니다. 그러니까 털구멍에 들여놔도, 많은 거를 다 들여놔도 두드러지는 법이 없고, 다 내도 없어지는 일이 없다 이겁니다. 마음이란 그렇게 묘하고 광대해서 이 삼천대천세계에, 과거 현재 미래 모든 대천세계에 우주 전체가 다 한마음, 체도 없는 마음 속에 자리를 해도 손색이 없다 이거죠. 그리고 두드러지지도 않고 말입니다. 얼른 쉽게 말해서 물을 몇 그릇 갖다 바다에다 부어 보세요, 두드러지나. 물을 몇 그릇 떠서 써 보세요, 물이 주나. 그와 같다 이겁니다.  

그러니 이 공부는 안 하고는 그냥 갈 수 없는 공부예요.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 공부를 하니깐 그냥, ‘여기서 그냥 미쳐야 되겠다’ 이런 생각은 하지 마세요. 즉 생활도 잘하면서, 이게 그대로 생활 자체가 재료니까, 내가 공부할 수 있는 재료니까. 그러니까 어디까지나 공으로 떨어지게 하지도 말고 물질로 흐르게 하지도 말라 이겁니다. 정당하게 생각하고 뛰면서, 뛰면서 생각하는 게 그대로 행주좌와 그냥 참선이다, 그대로. 그게 도심이에요. 

가장으로서 잘하고 싶은데… 
질문
사는 데 급급하다 보니 애들을 키우는 가장의 역할에 소홀했나 봅니다. 애들이 좀 난폭해지고 있어요. 가장으로서의 자질을 향상시키고 싶습니다. 도와주십시오.   

답변 소소하게 우리 살아나가는 데도 그 영향이 애들한테 얼마나 미치느냐는 거를 알아야 합니다. 임신을 했을 때는 내가 먹는 대로 영향이, 의학적으로는 먹는 대로 영향이 애한테 간다, 약을 먹으면 약이 영향이 가고 이런 것만 알았지, 보이지 않는 기묘한 그 뜻이 전달이 되는 거는 도대체 모르거든요. 인연에 따라서 만나서 여기에 내가 임신을 했다면 자기의 그 영향대로 거기에 미치게 됩니다. 그러니 내가 작으면 그 아이도 작지 어떡하겠습니까? 영향을 자꾸 받았으니까. 그래서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느니라.” 이런 말을 했지 않습니까.  

비록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난하고 쪼들리고 배우지 못하고, 어떠한 영향을 받는다 할지라도 마음이야 가난해서 되겠습니까?  마음이 가난하지 않는다면 모든 일이 전체 가난하지 않아요. 하다못해 죽을 한 그릇 먹어도 허허 웃으면서 ‘대장부 살림살이 이만하면 족하도다.’ 하고 아마 하늘을 보고 웃을 겁니다. 이 정도로 돼야죠. 지금 우리는 이 손바닥만 한 데 오물쪼물 모여서 살고 있는데,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고요. 네 가정 내 가정 찾고 온통 야단들을 하는데 나는 도무지 아주, 그래요. 이 지구 한 덩어릴 딱 따져 놓고 본대도, 그 손바닥도 못한 놈의 거를 가지고 온통 야단들이거든. 이게 도무지 이게 될 노릇이냐 말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애들한테, 낳을 때 배 속에서 받는 영향은 너무도 큰 겁니다. 그런 데다가 사회 상식이라든가 교양이라든가 이런 건 또 낳아서 받는단 말이죠. 낳아 가지고도 받아요, 그놈의 걸. 애 보는 데 뭐, 별 욕 다 하고 별 싸움 다 하고, 그저 나가고 들어오고…. 벌어먹는 것도 중하지마는 벌어먹는 것도 사람이 본부가 있다면 본부에다 연방 전달을 해 가면서, 상응하면서 한다면, 만약에 부부 벌이를 한다 하더라도 그 애들이 천상 착해요. 본부가 항상 지키고 본부가 항상 있기 때문에요.  

그런데도 불구하고 고아들처럼 내버리고, 이것은 뭐, 먹을 거나 주고 그저 조금 저거 하면 돈이나 주고 이러니까 애들이 아, 외롭고 ‘야, 집에 들어가 봤자야 뭐, 그것도 없는데, 친구한테나 가야지.’ 이럭하다 보면은 망가지는 거죠. 그러니까 벌어먹고 사는 것만 중요시하지 말고 남편들도, 젊은 사람들은 이거 꼭 들어둬야 할 일입니다. ‘나는 벌어먹고 살기 위해서 이러니까 남편이라도 생각해 주겠지.’ 천만에요. 자기의 욕구가 제대로 되지 않을 땐 아무리 정성을 다해서 살려고 앨 써도 그것은 아랑곳없어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 리라도 쫓아다니면서 살아요.  

또 어느 가정에서든지 남편이 손이 안 닿을 때에 일하는 건 괜찮아요. 와서 가깝게 닿을 때는 언제나 내가 항상 사랑을 주는 어머니가 돼야 됩니다. 동생이 돼 주고 딸이 돼 주고, 때에 따라서는 할머니도 돼 줄 수 있어야 그 가정이 풍부하고 그 본부의 근본을 따라서 오직 해 나갈 수 있는 그런 것이 있다 이겁니다. 또 남자는 언제나 아버지로서 아버지의 행을 다하면서 또 결국은 아버지도 됐다가 친구도 됐다가, 또는 동생도 됐다가 아들도 될 수 있는 그런 이치가 있어야 그 집안은 화목하고 재미있는 집안이에요.  

이러한 문제들을 모두 안다면 사랑이 무엇인지 이것을 알 겁니다. 사랑? 사랑이 뭐 말라빠져 죽은 사랑이야? 도대체 그러한 값싼 사랑, 값싼 눈물, 값싼 행동. 이거, 아이고! 눈 감고 아웅이지, 도무지 나는 신청부 뒷다리 같아요. 뭐, 죽느니 사느니 하다가도 그저 조금 어떻게 됐다 하면은, 딴 데 좀 냄새를 맡았다 하면 그냥 이거 언제 봤더냐 그러죠. 어떻게 할 수가 없으니까, 자기가 둥우리를 만들어 놓고 할 수가 없으니까 그냥 있다 뿐이지, 이건 그냥 뭐…. 그러한 값싼 사랑은 차라리 사랑이란 말도 하지 말아야지 사랑은 뭐 말라빠져 죽은 사랑입니까, 그게? 

진짜 부처님의 자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못났든 잘났든 아름다운 자비. 이 자비로써, 이 본부의 법으로써 모든 일을 행해 나가는데 아니, 우리 몸, 가정뿐인가. 세계뿐인가. 우주 삼천대천세계의 모든 근원이 바로 한 점의 마음에 달려 있으니, 이 높은 뜻을 어떻게 여러분이 아시겠습니까? 모르기 때문에 여러분은 열심히 자기 주인공에 의해서 진실하게, 값싸게 찾지 말고 진실하고 무겁게, 오뚝이가 무거워서 어디다 내던져도 우뚝우뚝 서듯이 말입니다. 시장바닥에 내던져도 우뚝우뚝 서듯이. 

여기 선원에 다니다가 보니까 아니, 잘못돼서 “아이고! 내가 아무리 다녀도 뭐 효득이 없던데요. 그거 뭐, 다니나마나지.” 그러는 사람도 있는데 그것은 여기 온다고 해서 잘못되는 게 아닙니다. 자기가 이미 벌여 놓은 게 있기 때문이에요. 그거를 수습을 하려면 크게 수습이 될 걸 작게 수습을 할 수밖엔 없는 도리가 있기 때문이에요. 여러분이 그렇게 어떠한 뭐가, 자갈밭이 닥친다 가시밭이 닥친다, 어떠한 낭떠러지가, 낭떠러지에 떨어져서 금방 죽는다 하더라도 눈도 깜짝거리지 말아야 되는 것이 본부를 찾는 법입니다. 

인과의 법칙을 벗어나려면
질문
불교에서는 인과의 법칙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데 그러한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도 있겠지요?

답변 나는 항상 그럽니다. 다른 이름을 믿고 빌고 기도하고, 또는 형상을 믿고 기도하고 그러지 말고 어느 법당엘 가든지, 강당엘 가든지 형상은 네 형상과 똑같이 둘 아니게 봐라. 그 마음이 둘 아니다. 내 형상과 둘 아니고 마음도 둘 아니고 법 또한 둘 아니다. 그러니 둥글게 내 마음과 모든 걸 한데 합쳐서 일배를 올리더라도 둥글게 일배를 지극하게 올리고, 나올 때 다시 주인공에다 맡기고 나오너라. 우리가 주인공이라고 말하는 것은, 내 몸뚱이 속에도 헤아릴 수 없는 생명들이 있죠? 시공을 초월해서 돌아가죠? 모두가 초월해서 돌아가는데 어떻게 그것을 ‘님’으로다가 하나로 붙이겠습니까? 그래서 주인공이라고, 자기 주인공입니다. 각자.  

그래서 자기 님을, 즉 말하자면 과거에 수없이 살아오고 형성시킨 자기 자랑스러운 임을 ‘주님’이라고 하는 거죠, 본래는. 그런 건데 모두 기독교에서나 가톨릭교에서나, 나도 가톨릭쿄에 좀 있어 봤습니다마는 말이에요, 내가 기껏 잘못해 놓고 고해 성사 할 때는 신부님한테 가서 다 옮기고 돌아서죠. 그러곤 편안하다고 돌아서는 거예요. 나도 그래 봤으니깐요. 그게 말이나 될 법한 일입니까? 에누리가 없는 게 세상살이에요. 삶이에요, 모두가. 우연히도 없어요. 두 부부가 만나도 우연이 없어요. 이 세상에 나가 보세요. 전부 끼리끼리 놓여 있죠? 상점에도 끼리끼리 놓여 있지 뒤섞여서 있습디까?

그러니까 끼리끼리 차원대로 만나는 거죠. 그러니까 누구의 잘못도 따로 네 탓이다 내 탓이다 할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죠. 그러니깐 내가 망해도 ‘네가 잘못해서’, 뭐, ‘재수가 없어서 안됐느니’ 이런 소린 아예 하지 마라 이 소리죠. 모두가, 모두가 자기 차원에 따라서 자기 탓이니까 자기가 아무리 잘했어도, 자기가 돈을 벌었어도, 또 망했다 하더라도 자기 탓이에요. 자기가 없다면 뭐가 있습니까? 자기가 있기 때문에 자기 탓이죠. 안 그래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법당엘 가거나 강당에 가면 기도하면서 아휴, 그냥 ‘하느님 아버지시여!’ 또 불당에 가면 ‘아이고, 부처님이시여! 관세음보살이여! 지장보살이시여!’ 뭐, 그냥 별놈의 이름을 다 찾죠. 그러나 그게 없는 이름은 아닙니다. 다 있어요. 우리가 아파서 주인공에다 맡기면 약사가 되거든요, 약사보살. 진짜 자기가 약사보살이 돼요. 또 자기가 가난하고 어떠한 법칙에 의해서 문제가 생겨서 너무 답답할 때에 거기다 맡기면 관세음이 되죠, 관세음보살이. 명이 짧아서 어쩌나 그러고 걱정될 때는 칠성부처님한테 맡기는 게 아니라 내 주인공한테 맡기면 내 주인공으로 하여금 통신이 돼서 그 칠성부처가 책임을 맡죠. 참 묘합니다. 그러니까 칠성부처가 그 명을 다루죠.  

그리고 또 누구나가 차원대로 모습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죽으면 자기가 산 대로, 행동한 대로, 말한 대로 그대로 모습이 돼서 나오거든요. 그러니까 개로 나왔다면 개 대접밖엔 못 받죠. 우리가 살아 보지 않아요? 개 새낀 개 새끼지 뭐 사람의 새끼냐 이러죠. 뱀이라면은 뱀의 대접밖엔 못 받죠.  여자는 여자대로 남자는 남자대로 대접을 받죠. 그러니까 그렇게 자기가 한 대로 조금도 어김없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공부는 모든 걸 무효로 시키는 데 목적이 있는 겁니다. 잘되고 잘못되는 거를 다 그냥 무효를 시키면서 새로이 내가 원하는 모든 거를 개척해 나가는 거죠. 그러니 여러분이 이 공부는 누구를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기도하고 빌어서, 빌어먹는다는 말이 있죠, 왜? 빌어서 뭐를 조금 얻어서 쓴다 하더라도 고거 없어지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러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하시렵니까? 

어떤 때는 사람들이 그래요. “아, 나한테 좀 더 마음을 크게 내 주셔서 해 주시오.” 이러죠. 그러나 나는 다 생각이 있습니다. 본인을 가르치는 데는 그렇게 “그러세요.” 이래서는 절대 안 되죠. 본인이, 본인이 직접 하게 만들면서 해 줘야죠, 재주를 가졌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래서 본인더러 “그대의 주인공에 관하시면 되죠. 열심히 해 보세요, 좋은 일이 있을 겁니다.” 마음이 편안해야 또 되겠으니까. 나부터라도 지금 집안에서 콩 튀듯 팥 튀듯 하는데 마음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면 말 한마디라도 편안하게 해 줘야죠.

어떤 사람이 뭐가 잘못돼서 모든 걸 은행으로 뺏기고 인제는 집까지 뺏기게 돼서 거리로 애들하고 나서게 된다고 하면서 그냥 땅바닥에, 내가 길에 나왔는데 그 땅바닥에다가 절을 했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이 어리석어서 그랬을까요? 보잘것도 없는 고깃덩어리, 한 중한테 뭐 볼 게 있다고 거기다가, 길바닥에서 절을 하겠습니까? 남의 말은 들었지만 자신은 그 식구들을 살리기 위해서 자기라는 거를 다 버린 겁니다, 아주. 아시겠습니까? 자기라는 거, 자기 위신이라는 거, 양심이라든가 뭐 이런 것도 다 그냥 몽땅 몸째 그냥 다 그냥 버린 거예요. 죽어 버린 거예요.  

그러니까 나는요, 아무 생각이 없어요. 아무 생각이 없이 ‘잘 죽었다, 잘 죽었어. 어차피 죽으려면 그렇게 죽어야지.’ 그러고선 왜 땅에서 이럭하시느냐고 일어나시라고 이렇게 해 놓고는 열심히 관하시라고, 그래도 관하시면 좋은 일이 있지 않겠느냐고, 그저 관하시면서 부지런히 뛰시라고 이랬어요.  그랬더니 얼마 있더니 “아이, 집은 건지게 됐습니다.” 또 얼마 있더니 “아유, 그 공장 하던 것도 되찾게 됐습니다.” 그래요. 

이 정신계의 무의 법이 그렇게 귀중하고 사람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문제들이죠. 그런 법이 바로 50%에 모두 해당된다고 볼 수 있죠. 할 줄 아는 사람만 하는 게 아니에요. 다 권리를 가지고 다 지니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모든 분들이 죄가 없다는 사실, 도둑질을 하고 사기질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죄가 없다. 모르니까 그런 거지, 알면 그럴 리가 없거든요.  그리고 신기한 건, 보시면 보는 대로 그냥 있는 게 없죠? 강도질을 했다 하더라도 그냥 돌아서서 벌써 과거가 돼 버렸어요. 그래서 인과응보라는 게 있어서 그 강도질을 했다면 되와야 하죠? 그런데 되오기 전에 입력을 없애 버리는 거죠,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건요. 되오기 전에 입력이 되니까. 다른 입력으로 들어가니깐. 그래서 이것을 묘법이라고 한답니다. 그러니까 기도해서 비는 게 아니라 자기 주인공한테 맡겨 놓는다면 인과응보도 벗어날 수가 있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