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인 스님의 문자반야] 13. 무정설법(無情說法)
인공지능 시대에 필요한 책
“보이는 만물은 관음이요,들리는 소리는 묘음이라.보고 듣고 이 밖에 진리가 따로 없으니,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이 말씀은1981년 해인사에서성철 스님이 조계종 종정으로 추대되며 하신 법어이다.당시 ‘산은 산이요,물은 물이로다’라는구절이 신선한 울림으로널리회자되었다.하지만‘보이는 만물은 관세음보살이고,들리는 소리는 미묘한 설법’이라는 구절은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무정설법은 유정설법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진리는 인간이나 지식인만이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산천초목 역시 늘 설법하고 있다는 뜻이다.이 의미는경전과 선사들의 어록에도자주 등장한다.
<화엄경>에서는 “유정과 무정이 함께 부처의 지혜를 원만히 한다(情與無情 同圓種)”라고 하였고,동산양개 선사는 “솔바람 소리는 법의 뜻을 풀어 주고,흐르는 물은 진여본심을 드러낸다(松風吹解義 水流達本心)”라고말했다.또한청원 유신 선사는 “산은 스스로 푸르고 물은 스스로 흐르니 모두가 무정설법이로다(山自靑,水自流,盡示無情說法)”라며눈으로 사물을 보고 귀로 소리를 듣는 작용속에서진리의 의미를읽어 내고자 했다.
조선 후기 다산 정약용은 “사람에게는 두 가지 책이 있으니,하나는 문자로 된 책이고또 하나는 천지 만물로 된 책”이라며 ‘자연책’을언급하였다.청장관 이덕무는 <독서기>에서 “책은 종이에만 있지 않고 산천에도 있고,인물과 세상사에도 있다”며 ‘사람책’의 중요성을강조하였다.
무정설법의 극치는 <아미타경>에서 잘 드러난다.“사리불아,극락세계에는 여러 가지 기묘한 새들이 밤낮 여섯 때로 항상 화평하고 맑은 소리를 내는데,그 소리에서 오근(五根),오력(五力),칠보리분(七菩提分),팔성도분(八聖道分)과 같은법문이 흘러나온다.그 나라 중생들은 그 소리를 들으면 부처님을 생각하고,법문을 생각하고,승가를 생각하게 되느니라.”
마음이 맑으면 보고 듣는 대상에서 법문을 들을 수 있음을 말해 준다.
사견과 편견을 버리고욕탐과 집착을 내려놓은채,고요한 마음으로 세상의 모습을 보고 듣고 사유하라.‘종이책’과 ‘자연책’, 그리고 ‘사람책’을 조화롭게 읽으면 지식에 갇히고 관념에얽매이지않을 것이다.인공지능 시대에 무정설법에 더욱 마음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