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배의 24번의 계절] 19. 한로_남해 길을 걷다(2) 

새들의 여정이 시작되는 이슬의 계절

2025-10-03     장보배 작가
남해 금산에서 바라본 상주해수욕장과 상주마을 일대. 상주마을은 갯마을로 아름답고 모래가 좋아 휴양지로 인기가 높다. 

남해 금산, 험준한 바위산 절벽 위에 석탑이 하나 있다. 

잠들지 않는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천년을 하루처럼 머물렀던 시간. 그것은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탑의 틈새마다 저마다 간절한 소원을 숨겨 두고 떠나곤 했다. 

밤이 되면 탑은 품었던 소원들을 하늘로 보낸다. 소원은 하늘로 올라가 반짝이는 별이 되고, 길을 헤매던 이들은 그 별을 보며 다시 가야 할 곳을 찾았다. 

지금은 차가운 이슬이 내리는 시간. 탑은 숨겨 두었던 품속의 별을 꺼내어 다시 밤을 밝힌다. 길을 찾는 누군가를 위해, 다시 돌아올 이들을 위하여.


석탑의 시선 

경상남도 남해 보리암. 

금방이라도 천둥 같은 소리를 내며 솟아오를 듯한 바위들이 산중 암자를 호위하고 서 있다. 금빛 비단을 두른 산이라는 금산(錦山), 이곳의 바위들은 어느 하나 허투루 자리한 것이 없다. 마치 부처님의 집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것처럼, 태초부터 약속이라도 한 듯이. 

여느 사찰에서 볼 수 있는 사천왕상 대신 화엄과 제석, 일월, 대장의 네 봉우리가 거대한 수호 신장(神將)이 된 이곳. 이 영험한 성지는 그렇게 산과 하나가 되어 이 땅을 지킨다. 

깎아지르는 절벽 위의 암자, 우뚝 선 해수관음상은 보리암을 상징한다. 하지만 그 곁에는 보리암의 어떤 전각보다 오랜 시간 이곳의 터를 지켜 온 석탑이 하나 있다.

‘남해 보리암 삼층석탑(南海 菩提庵 三層石塔)’. 

 

남해 금산 절벽에 자리한 보리암 삼층석탑.  

해수관음상보다 몇 걸음 더 앞에 선 이 탑에는 오랜 전설이 있다. 김수로 왕비 허태후(許太后)가 인도의 월지국(月之國)에서 올 때 잦은 풍파를 만나자, 한 스님이 뱃머리에 파사석(婆娑石)을 올려 주었다. 그리고 허태후가 가고자 하는 곳까지 무사히 도착할 것을 예견했는데, 그 뒤로는 어떤 장애도 없이 이 땅에 올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 후 원효 대사가 보리암을 창건하면서 그 파사석으로 만든 탑을 이 자리에 세웠다고 전해진다. 

바다의 풍랑도 잠재운 강력한 힘을 지닌 돌. 그리고 그 돌을 품은 탑. 그래서일까, 지금도 보리암 석탑에서는 나침반도 제힘을 쓰지 못하고 바늘이 흔들리는 이상 현상을 보인다. 

작고 소박한 모습의 오래된 석탑. 하지만 누구도 이 탑의 신묘함에 대해 의심하는 이는 없으리라. 머리로는 하늘을 이고, 발아래는 만경창파(萬頃蒼波) 춤추는 바다를 두고 천년 넘게 살아 온 비보사탑(裨補寺塔)이다. 그리고 그 석탑의 고요한 시선 끝에 이 땅의 뭇 생명이 살아 숨 쉬는 것이다.


생명의 터전 

금산의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수많은 섬이 별처럼 흩뿌려진 남해의 모습은 더욱 절경으로 다가온다. 가파른 절벽에 자리한 보리암, 그곳의 석탑이 내려다 보았던 것은 이 땅의 사람들. 그리고 뭇 생명이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다. 

저 멀리 푸르른 산천이 바다에 맞닿는 그 사이에 작은 갯마을이 보석처럼 빛난다. 남해는 위에서 보면 나비가 날개를 활짝 펼친 모양으로 앵강만은 바로 그 날개 사이에 자리한 해안이다. 

6천만 년 전, 이곳 남해의 땅은 빙하기 이후의 숱한 산고를 거치며 급경사와 굴곡 심한 해안의 지형을 만들어 냈다. 덕분에 오늘날에도 종을 셀 수 없는 생명의 흔적이 이곳에 남아 있는 것이다. 

세계 최초로 중생대 백악기의 도마뱀 화석이 발견되고, 거대한 화강암 지형은 풍화와 침식을 견디어 낸 기암절벽의 산맥이 되어 남았다. 어떤 곳은 백색의 모래사장이 되었으며, 어느 곳은 수천만 년 동안 갈고 닦여 몽돌해변이 되어 버린 곳. 깊은 바다에서 잠들었던 땅이 용솟음쳐 떠오른 그날부터 남해는 끈질긴 생의 역사를 증명하는 연대기가 된 셈이다. 

앵강만은 동쪽 끝인 가천마을부터 서쪽 끝인 두모마을까지 그 다채로운 풍경이 한데 모인 곳. 길고 긴 해안을 따라 총 아홉 개 마을과 주상절리, 갯벌, 몽돌해변, 앵강다숲, 유채밭, 다랭이논이 퍼레이드처럼 이어진다. 또 그 안에 기대어 살아가는 생명이야 어찌 다 헤아릴 수 있을까. 

사계절 아름답지 않은 때가 없다는 남해지만, 지금은 부지깽이도 바쁘다는 수확의 계절이다. 저 멀리 누렇게 익어가는 다랭이논이 물결칠 때면 석탑의 마음도 일렁이고 말았을 터다. 

다시 돌아온 10월, 켜켜이 쌓인 저 논두렁 위로 그렇게 또 한 번 나이테가 쌓인다. 

남해 다랭이마을. 척박한 땅에서 곡식을 얻기 위해 만들어진 계단형 다랑논이 특징이다.  

다랑논의 마을

10월은 ‘한로(寒露)’와 함께 시작된다. 한로는 이름 그대로 차가운 이슬로 오는 절기. 수증기가 찬 공기를 만나 서리로 변하기 직전의 시간을 말한다. 입춘이나 동지처럼 세시풍속의 의미보다 자연의 흐름을 나타내는 절기인 셈이다. 

‘가을 곡식은 찬 이슬에 영근다’는 말처럼 이즈음은 알곡에 막바지 살이 오르고, 또 더 추워지기 전 추수를 준비해야 하므로 논밭마다 일손이 귀해지는 때다. 

꽃은 지고, 나무의 푸른빛이 점점 바래 가는 때. 그리고 한로를 기점으로 수천수만의 새들은 지구 반 바퀴를 도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앵강만의 동쪽 끝을 지키는 가천마을. ‘다랭이마을’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한 이곳은 바닷가부터 가파른 절벽을 일구어 만든 다랑논이 장관이다.

3평부터 300평에 이르는 680여 개의 다랑논이 108층의 계단을 이루는 곳. 삿갓 아래 숨겨질 만큼 작은 땅인 ‘삿갓배미’조차 어엿한 논밭으로 셈을 했다는 척박한 땅이다. 

바다를 지척에 두었으나 절벽 지형 탓에 배를 세울 수 없는 갯마을. 쉬이 고기를 잡을 수도, 만만한 땅 한 뼘도 없는 매몰찬 이곳을 명승지(대한민국 명승)로 거듭나게 한 것은 오직 사람의 땀과 인내일 것이다. 지형 특성상 물을 대기가 쉽지 않아 빗물에 의존하고, 그만큼 수확을 내기가 쉽지 않은 땅이지만 여전히 이곳의 주민들은 다랑논을 포기하지 않는다.

어느 성곽보다 견고하고 절실하게 쌓아 올려진 삶의 터전. 그것은 단순한 논밭이 아니라 하늘에 닿는 길이었을지 모른다. 돌무더기 절벽이 한 계단 한 계단 생의 터전으로 바뀔 때마다 사람의 마음도, 하늘의 뜻도 그만큼 닮아 갔을 것이다. 

다랭이마을의 밥무덤. 마을 중앙과 동·서 세 군데에 있다.

밥과 희망

다랭이마을에는 아주 오랜 유산이 있다. 바로 ‘밥무덤’이다. 이 땅의 첫 모습이었을 돌무더기를 정성껏 쌓아 올린 밥무덤. 마치 부뚜막 같기도 하고, 솥단지를 얹어 놓은 것 같기도 한 정겨운 생김새다. 

다랭이마을에서는 매년 음력 시월 보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동제를 지낸 뒤, 밥무덤에 쌀밥을 곱게 묻어 둔다. 이름 모를 배고픈 혼을 위해, 그리고 세상의 모든 신을 위해서. 

절박했기에 더 소중한 한 그릇의 밥을 정성껏 지어 올리고, 더 나은 풍요의 시절을 기원하는 것. 이 세상에 이보다 정당하고 애틋한 소원이 또 있을까. 

오래되고 낡은 것들에는 자비가 쉬이 허락되지 않는 시대. 그 속에서 깨끗한 대나무 줄기에 새끼줄로 금줄을 달아 만든 밥무덤의 소박한 결계는 도리어 어떤 무장보다 성스럽고 강력하다. 저 다랑논에서 생명을 키우는 이들이 있는 한 밥무덤도, 또 마을 사람들 함께 어우러지는 동제도 그렇게 이어지리라. 

한로는 제비가 남쪽을 향해 날아가는 시간. 새들의 고향으로 불리는 남해에도 곧 수많은 새가 떠나고, 다시 돌아올 것이다. 저 높은 산봉우리의 석탑이 다시 하늘에 별을 밝힐 때, 그렇게 길을 찾아올 것이다. 

▶한줄 요약 

꽃이 지고 나무의 푸른빛이 점점 바래 가는 때, 새들이 지구 반 바퀴를 도는 기나긴 여정을 시작하는 절기가 바로 한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