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권태의 요즘 학교는] 20.완벽한 삶

더 이상 뺄 것 없는 상태 자유의지·자아실현 경계 모호한 삶 자기만의 기준 없어서 우울 불안해 삶은 무시무종의 영원의 바다 같아 

2025-10-03     김권태 동국대부속중학교 교사

완벽한 문장은 더 이상 보탤 것이 없는 게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라고 말한다. 이 말을 우리네 인생으로 돌려보면, 완벽한 삶이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상태가 된다. 우리는 모두 더 나은 삶을 기대하지만, 그 나은 삶이 무엇인지는 고민하지 않는다. 더 좋은 아파트, 더 좋은 자동차, 더 멋진 여행을 꿈꾸며 안달복달하는 우리는 이 완벽한 삶이란 정의 앞에 모두 후안무치다. 모두가 우울할 수밖에 없는 타인과의 ‘비교 지옥’에서의 해탈은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완벽한 삶을 지향하는 일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는 모두 수행자가 되어야 한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은 생존을 고민하지 않는다. 배고플 때 때맞춰 밥을 주고, 아플 때 때맞춰 치료해 주고, 번식기에 때맞춰 짝을 지어 주기 때문이다. 행복이 목적인 동물들에게는 정말로 안성맞춤의 삶이다. 반면 동물원 밖에서 사는 동물들은 하루하루가 전쟁이다. 날마다 스스로 배고픔을 해결해야 하고, 실시간으로 천적들의 공격을 막아 내야 하며, 짝짓기를 위해 처절하게 싸워야 한다. 살아간다는 말보다는 견뎌 내야 한다는 말이 더 잘 들어맞는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 생존과 행복이 보장된 동물원의 동물처럼 금수저로 타고나 사는 게 멋진 삶일까, 아니면 생존을 위해 하루하루 고통을 견뎌 내며 야생의 동물처럼 사는 게 진짜 삶일까? 그런데 동물원에서 주는 음식과 야생에서 직접 사냥해 먹는 음식은 무슨 차이라도 있는 건가. 쉽게 배를 채울 수 있는데, 굳이 목숨을 걸고 사냥할 필요가 있을까. 풍부한 영양소에 적당한 포만감을 주는 알약을 개발해 식사를 대체하면 정말 좋은 일 아닌가. 삶의 목적은 과연 생존인가, 행복인가, 또는 자유의지인가, 자아실현인가. 그럼 어디까지가 생존을 위한 것이고, 또 어디까지가 자유의지를 위한 것인가. 그 경계가 참으로 모호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스스로 자기가 원하는 목표를 정하는 데서 의미가 생기고 자율성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목표를 향해 구체적 계획을 세우고 시행착오를 경험하는 과정에서 재미와 성취감을 느낀다. 내가 원하는 최고의 안목과 감각을 경험하고 싶어 어제의 나보다 더 정진하며 보람을 느낀다. 과정과 결과가 따로 분리되지 않고 매 순간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내가 지금 살아 있다는 강렬한 기쁨을 느낀다. 이것은 인생을 먹고 사는 문제의 해결로 보느냐, 경험을 통한 성장으로 보느냐와도 상관이 없다. 유명해지지 않아도, 끝내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온전히 내 삶을 감각하며 즐길 수 있다. 밖으로 아무것도 구함이 없고, 아무것도 두렵지 않으며, 아무도 원망하지 않는다.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완벽한 삶이다.

 지금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은 이런 고민을 하지 않으면 자기만의 기준을 세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매번 남의 말에 흔들려 냉탕과 온탕을 오고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좋은 시절, 사람들이 자꾸만 우울하고 불안한 이유는 자기만의 기준이 없기에 수평선처럼 다가가도 다가가도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생멸하는 파도가 죽음이 두려워 슬피 울 때는 그가 바다 일부임을 알려 줘야 한다. 그 바다가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의 영원임을 알려 줘야 한다. 그리고 이 삶이 영원의 바다처럼 더 보태거나 뺄 것이 없는, 이미 완벽한 삶이라는 것을 알려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