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일의 불모열전 시즌2] 14. 혜희(惠熙, 慧熙) 스님
17세기 중반 당대 최고 조각승으로 평가받아 법령 스님의 조각승 계보 계승 17C 중반 충청·호남 등서 활동 마일·금문·청윤 스님의 스승
조각승 혜희 스님은 17세기 중반 공주 계룡산에 거주하면서 충청과 전북, 나아가 경북 지역 사찰의 부속 전각이나 암자에 불상을 제작한 대표적인 작가이다. 혜희 스님의 활동 시기는 1640년부터 1677년까지로, 10건 14점(수화승으로 7건 9점)의 불상을 제작했다.
혜희 스님은 1640년 음력 2월부터 4월까지 법령 스님을 도와 군산 불명사 아미타삼존(본존은 익산 숭림사 봉안), 석가삼존, 미타상, 독성상을 제작할 때 6명 가운데 네 번째 보조화승으로 참여했다.
1641년 6월 임금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빌고 병자호란으로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소현 세자와 봉림 대군의 조속한 환국을 기원하면서 수화승 청헌 스님, 법령 스님 등과 완주 송광사 소조석가여래삼불좌상 조성에 참여했다.
그리고 1년 후인 1642년 음력 7월 수화승으로 고령 반룡사 목조비로자나삼존좌상을 제작하고, 1640년대 후반 공주 갑사 내원암 목조여래좌상을 천윤(天允) 스님, 상민(尙敏) 스님, 선운 스님과 함께 만들었다.
이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화원산인 혜희(員山人惠熙)’로 적혀 있어 혜희 스님이 계룡산에 거주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성발원문에 제작 시기가 적혀 있지 않아 특정할 수 없지만, 대시주(大施主)로 참여한 행화(幸和) 스님이 1650년 6월에 제작된 갑사 괘불도(掛佛圖) 화기(畵記)에 ‘대시주 행화(幸和) 영가(靈駕)’로 적혀 있어 내원암 불상을 제작할 때 살았지만, 괘불이 완성될 때 열반에 들어 불상 제작의 하한이 1650년 6월임을 알 수 있다.
그 후 1653년 혜희 스님은 지수 스님을 도와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조성한 후, 1655년 후배와 제자 20명과 함께 보은 법주사 원통보전 목조관음보살삼존상을 제작하고, 1659년 상림 스님, 마일 스님 등과 보은 법주사 석조보살좌상(충주 혜원정사 봉안)을 만들었다.
또 혜희 스님은 1662년 정월에 궁인(宮人) 노예성(盧禮成)이 소현 세자의 셋째 아들인 경안군과 그의 부인 허씨, 경자생 박씨(庚子生朴氏)와 노씨(盧氏), 윤씨(尹氏) 등의 만수무강을 발원한 순천 송광사 관음전 목조관음보살좌상을 금문 스님과 만들었다. 이 시기의 대부분 중형 불상은 최소 5명 이상이 제작했으나, 이 보살상은 두 명이 제작해 특이하다.
또한 스님은 1676년 대둔산 안심사 화장암 목조여래좌상(김제 금복사 봉안)과 1677년 대둔산 용문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전주 일출암과 부산 금정사 봉안)을 제작하였다.
여러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따르면, 혜희 스님은 공주 계룡산에 거주하며 1640년 2월부터 1677년 6월까지 활동했다. 따라서 최소한 혜희 스님은 1610년대에 태어나 1620~1630년대 불상 제작의 수련기를 거친 후, 1640년 법령 스님이 제작한 군산 불명사 목조여래좌상 조성에 보조화승으로 참여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2년 후인 1642년 수화승으로 고령 반룡사 소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제작한 것을 보면, 적어도 30대 전중반에 불교계에서 실력이 검증된 상태인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1655년 왕실의 후원을 받아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삼존상을 제작한 것으로 보아, 당대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조각승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1676년 완주 대둔산 안심사와 1677년 대둔산 용문사에 목조불상을 만들며 노년까지 제자들과 같이 활동한 것으로 보인다.
스님은 말년에 정3품(正三品) 문관의 품계에 해당하는 통정대부(通政大夫)의 공명첩(空名帖)을 받았다. 혜희 스님은 수화승으로 충남 공주, 충북 보은, 전북 완주, 전남 순천, 경북 고령 등 사찰에 불상을 만들었다.
혜희 스님의 조각승 계보는 법령(1615~1641 활동)→철학(哲學, 1640~1654)각현(1624~ 1640)혜희(1640~1677)천윤(1629~1655)조능(1640~1657)→마일(摩日, 1655~1701)금문(金文, 1655~1706)청윤(淸允, 1684~1716)→세균(1703~1730)여찬(1706~1746)취습(1706~1711) 스님 등으로 이어지며 17세기와 18세기까지 전해졌다.
혜희 스님의 대표작인 순천 송광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높이 92.3㎝의 중형 보살상으로, 머리에 비해 몸이 작은 편이다. 머리 위에는 금속으로 만든 화불(化佛)을 중심으로, 구름과 꽃무늬, 화염무늬 장식이 더해진 크고 화려한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보관의 형태는 조선 후기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 준다. 특히, 보관 양옆에는 화염 장식을 활용해 곡선 형태의 관대(冠帶)를 수평으로 휘날리듯 늘어뜨려 상반신이 더욱 커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준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운 방형으로, 옆으로 길게 뻗은 눈썹과 눈, 얇고 단단히 다문 입이 특징이며, 귓불에 연주문 귀걸이가 표현돼 있다. 수인은 오른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정병을 들고 있으며, 왼손도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손바닥을 위로 향하게 하고 있다.
가슴에는 수평으로 걸친 승각기를 입고, 치마는 꽃잎처럼 여러 겹의 규칙적인 주름을 잡아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치마 아래에는 이를 묶은 짧은 띠 매듭이 조각돼 있다. 천의는 양 어깨에 숄처럼 두르고, 한 가닥은 팔 뒤로 둥글게 늘어진 뒤 양팔을 감싸며 밑판까지 흘러내린다. 무릎 위에는 사선으로 흘러내린 옷자락이 서로 겹치듯 포개져 있으며, 양 무릎 아래에는 꽃무늬와 구름무늬, 아래로 늘어진 장식 등으로 구성된 갑대를 두어 장식 효과를 더했다.
▶한줄 요약
혜희 스님은 법령 스님의 계보를 이어받아 38년 동안 충정과 전라 지역의 주요 사찰에 불상을 조성한 17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조각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