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원의 불교미학산책] 18. 정각원 불단(상단) 4
합리와 초월, 인간과 신성 품은 붓다 전통 교학 속 아미타불 ‘방편’으로 간주 불교학도 아미타불 비불교적 사례 치부 부처님 삼계 주인임은 이해 아닌 믿음
불교를 말할 때 흔히 떠올리는 첫 이미지는 ‘이성’과 ‘합리’다. 필자 또한 일반대학이나 불자가 아닌, 다수의 사람에게 불교를 설명할 때 우리의 신앙은 철저히 합리적 사유 위에서만 성립하는 종교이며 지혜와 깨달음, 논리적 탐구로 이뤄졌다고 말할 때가 있다. 이성과 합리에 기초한 근현대 서구사회에서 불교에 관심을 가진 이유 자체가 여기 있다. 불교는 신의 구원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인간의 완성을 믿는 종교라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신을 부정하고 형이상학적 상상을 배제하며 오직 논리와 수행으로만 성립하는 종교라는 설명은, 서구에는 불교가 다른 종교와 다르다는 매력적인 홍보 문구처럼 작동했다. 그러나 이 이미지는 불교의 한 단면만을 비추는 것이다. 불교의 역사와 실제 신앙 전개를 살펴보면, 합리성의 외피로만 설명되지 않는 수많은 요소들이 더 깊은 층위에서 작동해 왔다. 오히려 불교의 얼굴은 합리의 반대편에 가까웠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금 정각원에 모셔진 아미타불 신앙이다. 무한한 빛과 무한한 수명, 그리고 서방 십만억 국토를 지나 존재한다는 극락세계까지. 지난번 산책에서 살펴본 이러한 요소들은 이성적 불교의 이미지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철저히 경험과 논리의 범위 안에서만 불교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 아미타불은 설명되지 않는다. 이른바 ‘합리적 불교’의 틀을 어긋나게 만드는 부처님이신 것이다. 이런 부처님을 주존으로 모신 곳이 이성과 합리의 전당인 상아탑, 동국대학교이다. 이 괴리감만으로도 ‘파격미’라 할 수 있겠다.
근현대의 우리뿐만이 아니라, 전통적인 교학 속에서도 아미타불은 거의 대부분 ‘방편’으로 간주된다. 즉, 석가모니의 진짜 가르침은 따로 있고, 아미타불은 민중을 위해 마련된 단순한 장치일 뿐이라는 식이다. 이런 태도는 불교 내부의 다양한 전개를 하나의 ‘이성적 원형’으로 환원하려는 습성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화하는 순간, 불교의 실제 역사와 신앙의 힘은 놓쳐 버리게 된다.
다시 현대로 돌아와 보면, 전통적인 교학뿐만 아니라 불교학에서도 아미타불을 비불교적인 사례로 치부하려는 경향이 읽힌다. 아미타불이 불교 전통에 기반한 것이 아니라, 불교 밖의 신앙에서 기원했다는 담론이 바로 아미타불 외부기원설이다. 아미타불과 극락세계 사상이 불교 내부의 순수한 전개가 아니라, 조로아스터교나 브라만교, 혹은 중앙아시아 종교적 상상에서 빌려 온 것이라는 주장들이다. 학문적 검증과는 별개로, 이러한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 바탕에는 불교를 이성적 종교로 지키고자 하는 의도가 깔려 있다. 즉, 붓다의 본래 가르침은 합리적이었고, 그 본래성에 맞지 않는 요소들은 외부에서 흘러들어 온 불순물이라는 서사가 깔려 있다. 이런 식의 설명은 얼핏 균형 잡혀 보이지만, 실제로는 불교 자체를 축소하는 방식일 뿐만 아니라 논리보다 감정이 앞서는, 어찌 보면 그들 스스로가 거부하는 바로 그 반이성적 태도이기도 하다.
하지만 역사 속 붓다 자체가 이미 초월적 속성을 지닌 분이셨다. 부처님께선 인도 북동부에서 한 명의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그 순간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외치며 신들 위에 선 신임을 천명하셨다. 중고등학교 윤리 시간에 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인간의 존귀함에 대한 최초의 일성이라 배우고 이 같은 해석이 상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필자는 유아(唯我)라는 단어를 ‘오로지 나’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여기서 ‘나’란 반드시 붓다가 될 마지막 삶을 시작한 고타마 싯다르타 개인을 가리키며, 오직 그 본인만이 지존이라는 뜻이다. 이는 <법화경> 여래수량품의 게송과 바로 연결해 이해해야 한다.
지금 이 삼계는 / 나의 것이요 / 그 안의 중생은 / 모두 나의 자식이라.
지금 이곳은 / 여러 괴로움이 많으니 / ‘오로지 나’만이 / 능히 구원할수 있으리라.
오로지 부처님만이 하늘 위·아래 가장 존귀하신 분인데, 이분만이 중생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늘 중의 하늘, 신 중의 신’이란 붓다에 대한 칭호는 단순한 과장이 아니다. 처음부터 부처님께선 인간적 스승을 넘어, 우주의 중심이자 신들의 권위를 능가하는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따라서 불교 본래 모습이 철저히 합리적이라는 전제는 역사 자체와 모순된다. 이미 초기부터 붓다는 합리와 초월, 인간과 신성을 동시에 품은 존재였다.
최근 연구들은 오히려 아미타불 신앙을 석가모니의 여러 속성을 종합한 총체적 상징으로 읽는다. 우리가 지난 산책에서 알아본 법장 비구의 보살도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전생담이나 인연담을 각색한 것이며 아미타불의 무량한 빛은 본래 32상 80종호를 갖추고 백호광명을 놓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 그대로일 뿐이다. 또 무량한 수명 또한 석가모니불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셨음에도 사리로서 우리 곁에 영원히 살아 계신다는 당시의 신앙의 모습 그대로를 반영하고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보면, 아미타불은 외부 종교의 흔적이 아니라, 절대자인 부처님께서 지닌 다양한 얼굴을 모순 없이 엮어 낸 결과물이다. 이것이 불교다. 절대자로서 붓다를 믿는 종교인 것이다.
보통은 불교사상의 포용성과 복합성을 보여 주는 사례라고 하면서, 이성과 합리라는 큰 틀 안에서 수사적으로 ‘신 중의 신’으로서 부처님을 믿는다는 사실을 무마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불교의 복합적 전개와 사상적 포용성 자체에 경이로움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서 선택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다. 필자는 불교를 연구·강의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이것이 구원과 관련된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오로지 구원은 붓다라는 절대자의 말씀으로써 주어진 바를 실천하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부처님께서 삼계의 주인이시고 유일한 구원자이심은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이다. 필자가 이 믿음을 얻기까지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이는 해석의 과정도 이해의 과정도 아니었다. 그저 이것을 믿겠다고 선택하는 과정이었을 뿐이다.
선택 이후 종교인으로서 할 일은 말씀의 전파와 실천뿐이다. 마치 <법화경>의 상불경 보살이 매를 맞아도 그대들 모두가 깨달을 것이라 소리를 지르듯, 약왕보살이 자신의 몸을 불살라 부처님의 가르침을 부자석신명(不自惜身命, 자신의 몸과 목숨을 버림) 하듯이 말이다. 아미타불을 선택한 사람이라면, 방편이라는 주변 사람의 말에 흔들리지 말고 서방의 정토를 향해 자신의 몸과 목숨을 다해 아미타불이라고 소리를 질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