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깨달음의 노래] 20. 현각 영가 선사의 증도가
중생의 이 몸이 바로 진리 법신이네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한가한 도인은(絶學無爲閑道人)
망상을 없애지도 참마음을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네(不除妄想不求眞)
무명의 실제 성품이 곧 부처의 참 성품(불성)이고(無明實性卽佛性)
허깨비같이 텅 빈 이 몸이 바로 진리의 법신이네(幻化空身卽法身)
영가(永嘉) 현각(玄覺, 665~713) 선사는 당나라 때 온주(溫州) 영가산 영가사에서 교화를 펼친 고승이다. 저서에 <증도가>와 <영가집>이 있는데, 선시가 간결하고 선의 요지가 잘 드러나 유명하여 중국, 한국, 일본의 선가에서 널리 독송되었다.
위의 선시는 <증도가>의 첫 번째에 나오는 오도송으로 시 전체의 내용을 아우르는 대표 시로 오도송의 절창이다.
‘증도가(證道歌)’란 ‘깨달음의 노래’ 즉, 오도송이란 뜻이다. 한시의 형식인 운율도 잘 맞아 불경의 게송의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선시를 구사하고 있다.
육조 혜능 대사를 찾아가 깨달음을 인가받고, 하룻밤을 함께 자고 절을 떠나 ‘일각숙(一覺宿)’이란 별호를 얻었다. 깨달음에도 조사의 권위에도 집착하지 않는 무소주(無所住) 정신이 그의 가풍이다.
먼저 1·2구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깨달음을 얻은 한가한 도인은 망상을 없애지도 참마음을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네”는 깨달음을 얻은 도인의 경계를 노래하고 있다.
불교 교학에서 수행이 완성되어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는 경지 위치를 ‘절학(絶學)’ 즉, ‘무학위(無學位)’라고 한다. 근본불교에서 수행 사과(四果)의 최종 단계가 무학위에 이르면 아라한과를 증득한다. 아라한은 탐욕·분노·어리석음, 즉, 삼독심의 불이 완전히 꺼진 열반의 경지를 체득한 수행의 최고 지위이다.
그러니 더 이상 수행할 것도 없는 공부를 다 마친 상태이다. 할 일이 없는 한가한 도인이 되었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면 망상이 일어나지 않으니 더 이상 깨달음을 구할 필요가 없다. 번뇌가 보리(깨달음)와 다르지 않고, 중생과 부처가 차별이 없다. 어머니의 마음은 큰아이와 작은아이가 조금 잘하고 못하는 것이 차별이 없이 모두가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망상을 없애지 말라”는 뜻이 우리가 본래 부처의 성품을 구족하고 있으므로 선사들은 스스로 망상을 일으켜 오염시키지만 않으면 그것을 억지로 없애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가르친다.
마조 선사는 “부처를 다른 데서 찾지 말라. 일상의 내 마음이 바로 부처이다. 평상심(平常心)이 곧 도이다”라고 설파했다. 일상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와 망념을 자각하는 알아차림이 깨달음이다. 평상심이란 번뇌 망상이 들끓는 마음이 아니라, 거기에 오염되지 않은 본래의 청정한 내 마음을 의미한다.
불성이 항상 청정하면 부처이고 깨달음이다. 청정한 불성대로만 살면 그대로 부처의 삶이다.
3·4구 “무명의 실제 성품이 곧 부처의 참 성품이고 허깨비같이 텅 빈 이 몸이 바로 진리의 법신이네”는 깨닫고 보면 중생의 어리석은 무명심과 불성이 다르지 않고, 중생신과 부처의 법신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 생각 돌이켜서 깨달으면 중생심이 부처의 마음이 되고[轉識開悟], 중생이 부처가 된다[魚變成龍].
극락과 지옥이 하늘과 땅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 내 마음속에 있다. 똑같은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지옥이고, 어떤 사람은 극락을 산다. 아귀의 마음으로 살면 지옥이고, 부처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 극락이다.
영가 대사는 “부처의 마음을 가지고 살면 이 몸이 그대로 부처의 법신이고 부처의 화신(化身)이다”라고 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