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으로 읽고 마음으로 나눈 연화원 시 낭송회

9월 14일, 광림사 일요법회서 법산 스님 점자 시집 낭송회 개최 “무관심‧제작비 등 어려움 있지만 경전-문학 등 점자 불서 계속 제작”

2025-09-14     여수령 기자
사회복지법인 연화원이 9월 14일 광림사에서 법산 스님의 시집 '나는 어디로 가나' 점자판 및 오디오북 출간을 기념하는 시 낭송회를 개최했다. 박인수 불자가 시를 낭송하고 연화원 이사장 해성 스님(사진 왼쪽)이 수어로 전달하는 모습.

“눈을 감아도 보이는 것 / 귀를 막아도 들리는 것 / 보아도 안 보이는 것 / 들어도 알 수 없는 것 / 밤새 걸어도 발은 그대로 / 종일 들어도 아는 것 없네 / 모두가 환상인 것을 / 착상 분별 버리지 못하네.” -법산 스님의 시 ‘보이는 것’ 중에서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점자를 짚으며 나지막이 낭송하는 시(詩)가 법당을 가득 채운다. 사회복지법인 연화원(이사장 해성 스님, 광림사 주지)이 매달 한차례 봉행하는 수어법회가 9월 14일에는 시 낭송회로 진행됐다. 연화원 법사 법산 스님(전 조계종 법계위원장)이 최근 펴낸 시집 <나는 어디로 가나>의 점자판과 오디오북 발간을 축하하기 위한 자리다.

법산 스님의 시집 '나는 어디로 가나'의 점자판과 오디오북.

지난 20여 년간 연화원의 노력 덕분에 점자 불교 법요집은 마련됐만, 여전히 점자도서 중 불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극히 작다. 일반 도서와 달리 판형이 크고 두꺼워 제작비가 일반 도서의 2배 가까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해성 스님은 “흔히 시각장애인에게는 오디오북만 있으면 된다 생각할 수 있지만, 책은 원하는 때 언제든, 자신만의 속도에 따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전혀 다른 매체”라며 “불서뿐만 아니라 문학책에 대한 수요도 높다. 지난해 나태주 시인의 시집을 점자책으로 제작한 데 이어 한강 작가의 책을 읽고 싶다는 분들이 많은데 비용 문제로 선뜻 진행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나는 어디로 가나>는 시집이라 점자 제작과 낭송 녹음이 빠르게 진행될 수 있었다는 게 해성 스님의 설명이다.

법산 스님은 2011년부터 연화원 장애인 법회에 참석해 법문하고 점자 불서 발간을 후원하는 등 장애인 불자들의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해 왔다. 연화원은 지난 2020년 법산 스님의 첫 시집 <나는 누구인가>의 점자책도 출간한 바 있다.

강태봉 한국시각장애인불자회장의 시 낭송 모습.

시 낭송회에 앞서 강태봉 한국시각장애인불자회장은 “서점에는 수없이 많은 불서가 있지만, 누가 읽어주거나 점자화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다”며 “그런데 법산 스님께서 써주신 좋은 시를 해성 스님께서 점자판으로 만들어 주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한 걸음 다가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이날 강태봉 회장이 ‘낙엽’, 김재형 불자가 ‘나도 할 수 있어요’, 김종수 불자가 ‘보이는 것’, 박인수 불자가 ‘딱새’, 이은영 불자가 ‘청산유수’, 조주영 불자가 ‘나는 어디로 가자’, 유정숙 불자가 ‘제비꽃’을 점자책을 짚거나 암송해 정성껏 낭송했다.

법산 스님(오른쪽)의 법문을 해성 스님이 수어로 전달하고 있다.

시 낭송 후 법문에 나선 법산 스님은 “설법은 여러분들이 다 하셨다. 여러분의 시력이나 청력은 잠시 멈춰 있지만 인식은 밝게 빛나 시 한 편으로도 다양한 감정과 깨달음을 느낄 수 있다. 감미롭고 감동적인 시 낭송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 전법을 위해 애쓰는 해성 스님은 정말 위대한 일을 하고 계신 것”이라며 “우리가 함께 모여 불법과 마음을 나누는 이 자리가 곧 극락세계”라고 격려했다.

법회 후 점자 시집 출간을 축하하는 케이크 커팅식이 진행됐고, 법산 스님은 참석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