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미의 심심톡톡] 부모가 세워야 할 든든한 울타리
46 육군비구를 제재한 부처님, 학교 폭력(2) 학폭 절차 속 아이 지키는 부모 지지 육군비구, 피해자 보호 책임 일깨워
“이번 일을 통해 가족의 사랑을 알았어요.”
상담실을 찾은 중학교 2학년 희정(가명)의 말이다. 그는 1년 동안 집단 따돌림을 당하며 불안 증상으로 자해까지 했던 아이다. 무리 학생들은 희정이의 태도에서 마음에 들지 않는 점을 집요하게 지적하며 고치라고 압박했다. “제발 멈춰 달라”는 간절한 호소에도 불구하고, 말을 따르지 않으면 ‘왕따’를 시키겠다는 은근한 위협이 이어졌다.
자해를 통해 상황이 알려지자 교사는 가해 무리와 희정을 분리했고,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러나 학년과 반이 바뀌면서 상황은 다시 반복됐다. 가해 학생들은 무리를 지어 희정을 불러 세우고, 따져 묻는 행동을 계속 이어 갔다. 험담이 퍼지면서 희정은 학교생활에서 점점 고립됐고, 불안 증세는 더욱 심각해졌다.
결국 희정은 극심한 불안으로 학교를 쉬며 약물치료를 병행해야 했다. 조금의 안정을 찾자, 그의 어머니는 더 이상 지켜볼 수 없다는 결심으로 학교폭력(학폭)을 신고했다. 하지만 교육청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의 답변은 ‘조치 없음’이었다. 사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증거를 모으기란 쉽지 않았고, 가해 학생들조차 아직 어린아이였기에 부모로서는 매몰차게만 밀어붙일 수 없었던 탓도 있었다. 혼란과 혼돈 속에서 마음을 다잡기 힘들었고, 결국 부모는 피해를 위한 최소한의 보호조치에 일단 만족해야 했다.
제도가 보호하지 못한 자리에서 가족은 깊은 무력감과 분노를 느꼈지만 아이는 가족의 품에서 다시 숨을 고르며 의연함을 되찾았다. 상처 속에서도 사랑을 디딤돌 삼아 오히려 회복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이다. 부모의 상처도 컸지만, 함께 버틴 시간이 곧 사랑의 증거가 되었고 그것이 아이에게는 치유였다. 환경전학이라는 안타까운 선택을 했지만, 희정이는 더 이상 자신을 피해자로만 여기지 않았다. 끝까지 자신의 편이 되어 준 가족의 지지가 아이를 다시 서게 만든 것이다. 가장 중요한 힘은 가족의 지지였다.
가족의 사랑이 가장 최우선이지만, 현실 속에서 마주한 학폭 절차와 조치들은 부모에게 여전히 막막한 과제로 다가오고 버겁다. 그럼에도 부모가 이 절차를 밟아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아이 혼자는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피해 아동·청소년은 이미 불안과 우울, 자존감 저하에 시달리고 있어 복잡한 절차와 증거 수집을 감당하기 어렵다. 부모가 대신 나서는 것은 곧 아이의 안전망을 확보해 주는 일과 같다. 또 제도의 문을 열 수 있는 권한자 역시 부모다. 신고와 심의, 재심, 행정심판과 소송까지 이어지는 과정은 미성년자인 아이 대신 부모가 법적 주체로 나서야 한다. 무엇보다 부모가 이 같은 절차를 밟는 모습은 아이에게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해를 당했을 때 부모가 지켜 줬다는 경험은 이후 삶에서 강력한 회복탄력성이 된다.마지막으로, 부모의 대응은 피해를 사회적으로 드러내고 제도의 변화를 촉진한다. 부모가 문제를 끝까지 제기해야 학교와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고, 또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길이 열린다.
피해 사실이 드러나면 무엇보다 아이의 안전을 확보하고, 대화 내용이나 상처 사진, 메시지 같은 증거를 기록해야 한다. 학교에 신고하면 조사와 함께 분리조치 등 임시 보호가 가능하며, 반복적이거나 보복 정황이 있으면 교육지원청 학폭위에서 심의가 이루어진다. 학폭위 결정에 불복할 경우 보호자는 조치를 받은 날로부터 행정심판(90일 이내)이나 행정소송(안 날로부터 90일 이내, 처분일로부터 1년 이내)으로 다툴 수 있으며, 심각한 사안은 경찰 수사도 요청할 수 있다.
학교폭력 절차는 길고 복잡하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피해자 측이 증거를 충분히 갖추었음에도 ‘조치 없음’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내려지기도 한다는 점이다. 이는 피해 학생과 가족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고, 사회적 공분을 불러일으킨다. 제도가 존재하지만 피해자를 온전히 보호하지 못하는 현실은 여전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럼에도 아이에게 가장 큰 힘이 되는 것은 부모의 지지와 동행이다. 그리고 그 길 위에서 부모가 감당해야 할 막막함을 덜기 위해서는 사회적 안전망을 적극 활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긴급 상황에서는 학교폭력신고센터(117)를 통해 즉시 경찰과 연결할 수 있고, 정서적 위기 시에는 청소년전화(1388)에서 상담을 받을 수 있다. 법적 지원이 필요하다면 대한법률구조공단(132)에서 무료 법률상담과 행정심판 지원을 받을 수 있으며, 교육청과 학교전담경찰관(SPO) 역시 중요한 도움 창구가 된다. 민간 차원의 지원도 있다. 푸른나무재단(구 청소년폭력예방재단)은 피해 학생과 가족을 위한 심리상담, 법률 지원, 회복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은 전국 상담센터와 연결돼 전문적인 상담을 지원한다.
부처님 당시에도 공동체 안에는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이 있었다. ‘육군비구(六群比丘)’라 불린 이들은 수행을 저버리고 무리를 지어 다니며 다른 스님들을 괴롭히고 공동체의 화합을 해쳤다. 결국 대중은 이들의 행태를 부처님께 알렸고, 그때마다 부처님은 피해자가 더 이상 고통받지 않도록 보호하는 계율을 제정하셨다.
이처럼 피해자를 지키는 태도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다. 학교와 사회가 나서서 제도적으로 피해자를 보호해야 하며, 무엇보다 가정에서의 든든한 지지가 아이에게 가장 큰 힘이 된다. 피해자가 더 이상 고립되지 않고 회복할 수 있도록 함께하는 것이 우리 모두의 책임이다.
* 사례는 내담자 보호를 위해 취지를 손상하지 않는 범위에서 재정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