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마나의 시절인연] 선의 사과
아침에 일어나 냉장고에서 사과를 꺼내 한 입 베어 문다. 아삭하는 소리에 뜨거운 열기가 저만큼 물러서는 듯하다. 차갑고 달콤한 과즙이 입안 가득 번진다. 소백산 자락에서 자란 사과는 유난히 과육이 단단하고 당도가 높다. 사과 값이 올라 마음대로 사 먹지 못한 차에 지인이 보내 준 사과 한 상자를 아껴 먹고 있다.
사과는 오래전부터 인간의 상상력과 운명을 흔들어 온 과일이다. 성경에서 하느님은 에덴동산의 모든 과일은 먹어도 좋으나 사과는 먹지 말라고 했다. 이브는 금기를 어기고 사과를 따먹은 후 아담에게 건넸다. 아담은 그 사과를 삼키다 목에 걸려 목울대가 불거졌다. 사람들은 그것을 ‘아담스 애플’이라 불렀다. 남성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면 목울대가 도드라지고 유년의 맑은 목소리는 거칠게 변성된다. 성경 속 사과는 금단의 상징이다. 그렇다면 ‘아담스 애플’은 신이 내린 형벌일까, 아니면 금지를 어긴 자에게 남겨진 후회의 표식일까.
아이작 뉴턴(1643~1727)은 정원을 거닐다 사과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모습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누구나 당연히 여기는 평범한 현상 앞에서 그는 질문했다. “왜 사과는 언제나 땅으로 떨어지는가?” 이 물음에서 출발해 뉴턴은 지구가 사과를 끌어당기듯 사과 역시 지구를 같은 힘으로 끌어당긴다는 만유인력을 밝혀냈다. 뉴턴의 사과는 진정한 깨달음이란 질문 속에 이미 답이 숨어 있음을 일깨워 준다.
스티브 잡스가 설립한 기업 ‘애플’의 로고 역시 사과를 형상화했다. 어린 시절 사과 농장에서 일한 경험에서 착안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왜 온전한 사과가 아니라 굳이 한 입 베어 문 사과였을까.
잡스는 미혼모의 아들로 태어나 입양아로 자랐다. 어디에도 뿌리내리지 못한 그는 방랑의 길을 걸었다. 대학을 중퇴하고 인도로 떠나 히말라야 기슭을 거닐며 명상에 잠겼고, 선불교의 사유에 깊이 매료되었다.
한 입 베어 문 사과는 더 이상 온전한 사과가 아니다. 그것은 상처 난 흔적이자 순간의 자취다. 모든 만물은 생겨나고 변화하며 사라진다. 세상은 무상(無常)하며 붙잡아 둘 실체는 없다. 사과의 상처는 덧없음을 드러내는 자취일 것이다.
또한 알고 싶고, 이루고 싶고, 남보다 앞서고 싶은 마음이 한 입 베어 문 사과 안에 응축돼 있는지도 모른다. 사과를 베어 문 인간의 작은 입은 결코 멈추지 않는다. 이브의 입이 낙원을 뒤흔들었듯, 인간의 욕망은 끝없이 세계를 흔들며 새로운 길을 열어 간다.
잡스가 만든 스마트한 디지털 기계는 인간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세상의 거리를 지우고 시간의 경계를 허물어 사람과 사람을 한 호흡으로 이어 준다. 우리는 손바닥 안의 작은 스마트폰을 욕망한다. 하지만 잡스는 단순한 기업인이 아니었다. 그는 인도에서 깨달은 영적 통찰을 애플 로고에 불어넣었다.
“다른 사람의 소리가 여러분 내면의 진정한 목소리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세요.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 마음과 직관의 소리를 따를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오늘도 한 입 베어 문 ‘선(禪)의 사과’는 묵묵히 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