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법일기] 진공과 묘유의 문
2022년 늦가을 문경 봉암사 선방으로 향했다. 살면서 문경은 처음이었고, 봉암사도 첫 계절이었다. 범어사에서 포교국장직 사표를 내고 걸망 진 채 금정산을 하산하는 발걸음은 가벼웠는데, 희양산을 다시 올라가는 발걸음은 조금씩 무거워졌다. 출가한 지 겨우 10년이 넘었는데, 갓 머리 깎고 회색 옷을 입었던 그때의 초발심 행자는 거울에 없었다. 모르는 새 스님이 직업이 돼 버린 나는 재출가한다는 마음으로 희양산 봉암사 태고선원의 문을 두드려야 했다.
많은 대중 스님들 사이에서 다시 초심자가 되고, 막내가 돼 첫 수선안거가 시작됐다. 뻐근한 허리는 시간이 지나며 익숙해지고, 하루 열 시간 정진은 금세 흘러갔다. 몸은 큰방 안에 머물러 있었으나 번뇌와 상념은 우주를 떠돌았다. 방선 시간에 마당에 나와 진공문과 묘유문 사이를 돌며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고민의 파편들이 도시에 있었을 때보다 더욱 선명하게 검은 허공에 박혀 빛나고 있었다.
열 번의 수선안거를 선방에서 지내겠다고 결심했으니, 앞으로의 수행 성과는 첫 안거에서 얼마나 큰 보폭으로 나아가는가에 달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좌복 위에 앉을 때나 쉬는 시간 산행을 갈 때, 공양하러 선열당으로 향할 때, 화두 정진하며 집중이 흐려지면 호흡을 관찰하고 감정과 생각을 늘 살피며 깨어 있으려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살이 점점 빠져 갔다. 날카로운 감각을 유지하기 위해 오히려 식사량을 더 줄였다. 거울 속 얼굴이 점점 내가 알던 얼굴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 와중의 일이다. 눈이 소복하게 쌓인 어느 날, 힘없는 발걸음으로 공양하러 선열당으로 가기 위해 늘 지나가는 진공문을 지나는 길이었다. 처소에서 선열당으로 공양하러 가는 스님들은 모두 진공문을 지나 걸어가고 있었다. 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공양하러 가는 스님들은 왜 다 진공문을 지나가는 걸까. 처소에서 선열당 가는 길은 한 가지 길뿐인가. 처소를 나와 희양산 정상에 올랐다가 내려와서 선열당에 가면 그 길은 틀린 길인가. 진공문을 나와 선열당으로 가는 길은 몇 가지인가. 무한하다. 그리고 없다. 없어서 무(無)가 아니고 고정불변으로 정해진 바가 없어 공(空)이다.
봉암사에 처음 온 불자님이 “스님, 선열당 가는 길이 어딥니까?”라고 물어보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진공문 지나서 내려가다 왼쪽 길로 쭉 가십시오”라고 말할 것이다. “무수히 많은 길이 있어 어디 길이라고 대답할 수 없습니다”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대다수의 스님들이 진공문을 지나 선열당을 가는 것과 공양하러 갈 때는 진공문으로 다들 나가지만 예불하러 큰법당 갈 때는 법당에서 가까운 묘유문으로 나가는 것을 보면서 알았다. ‘진리는 공[眞空]하나 묘한 쓰임새는 있다[妙有]’는 말이 이 뜻이로구나.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수행은 내 안의 그릇을 비우거나, 비어 있는 그릇을 알아차리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수행의 깊이를 무엇으로 잴 것인가. 온화한 태도, 배려하는 말씨, 남을 위해 나의 불편을 감수하는 마음의 여유로 표현되지 않는다면 무수한 진리가 무슨 소용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