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태 없는 것을 보고 소리 없는 것을 듣다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특별전 종정 성파 대종사 작품세계 조명 100m 한지옻칠 시리즈 등 3점 “한 장의 종이에 전체가 담겨”

2025-09-11     청주=글 여수령 기자·사진 정현선 작가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특별전 ‘성파선예전(性坡禪藝展)' 전시장 벽면을 감싸고 있는 폭 3m, 길이 100m의 한지작품 ‘명명백백’.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가 전통 방식으로 직접 뜬 한지다.

전시장 전체를 한 장의 한지가 감싸고 있다. 언뜻 보기엔 그저 ‘빈 종이’지만 가까이 다가가 보면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섬유질이 얽혀 만들어 낸 질감이 드러난다. 이 미세한 결들은 무수한 각자의 세계이자, 또 하나의 세계다.

2025 청주공예비엔날레 특별전 ‘성파선예전(性坡禪藝展)-명명백백(明明白白)’은 조계종 종정 중봉 성파 대종사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 전시다. 제목 ‘명명백백’은 일체의 꾸밈이 없이 순수한 본질 그 자체를 추구하는 철학적 선언이다.

이번 전시에는 성파 스님이 직접 전통 방식으로 뜬 폭 3m, 길이 100m에 달하는 한지작품 ‘명명백백’과 자작나무에 옻칠과 자개 가루로 장식한 ‘별들의 향연’, 한지에 옻칠 연작 ‘공에서 색으로’가 선보인다. 순백의 한지가 감싼 공간 안에 다른 두 작품을 두고, 신발을 벗고 앉아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성파 스님의 작품 '별들의 향연'
성파 스님의 옻칠 연 '공에서 색으로'

칠흑의 심연에서 자개 가루가 은은히 빛을 밝히는 작품 ‘별들의 향연’은 마치 밤하늘에 흩뿌려진 별빛 같다. 어둠과 빛이 만들어 내는 원은 시작이기도 하고 끝이기도 하다. ‘공에서 색으로’는 흰색 한지 위에 펼쳐지는 색의 향연이 공에서 색으로, 무에서 유로 이어지는 순환의 흐름을 보여 준다. 

9월 10일 전시장을 찾은 성파 스님은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에게 작품의 의미를 직접 설명했다.

9월 10일 전시장을 찾은 성파 스님은 문재인 전 대통령 내외에게 작품의 의미를 직접 설명했다. 스님은 “한지는 멀리서 보면 그저 비어 있는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실오라기 같은 가닥들이 모여 거대한 한 장의 종이를 이룬다”며 “이는 곧 가장 작은 것이 가장 큰 것과 다르지 않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파 스님과 문 전 대통령 내외는 검은 옻칠 속에 반짝이는 자개 가루를 품은 ‘별들의 향연’ 앞에 마주 앉았다. 성파 스님은 “공(空)에서 색(色)으로, 없는 것[無]에서 있는 것[有]으로 이어진다. 하나도 없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고 전체가 그 안에 다 포함되어 있는 것”이라며 “진리는 눈에 안 보이지만 우리 곁에 다 있기에 그것을 명명백백하게 다 볼 수 있어야 한다”고 설했다.

작품 ‘별들의 향연’ 앞에 마주 앉은 성파 스님과 문 전 대통령 내외.

문 전 대통령은 성파 스님의 설명을 들은 후 “원래 마음자리가 색도 없고 소리도 없지만 그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스님의 말씀에 깊이 공감한다. 훌륭한 법문을 해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답했다.

성파 스님은 “강재영 청주공예비엔날레 예술감독이 수년 전부터 찾아와 한지작품을 대중에게 선보이면 좋겠다고 제안해 이번에 내놓게 됐다”며 전시장이 100m의 한지작품을 선보이는 데 적합한 공간이라는 데 만족한다는 뜻을 밝혔다.

강재영 예술감독은 “이번 특별전은 고요한 침묵이 흐르는 공간 속에서 형태가 없는 것을 보고, 소리가 없는 것을 듣는 전시”라고 소개했다.

이날 특별전을 관람한 법산 스님(전 조계종 법계위원장)은 한지작품 ‘명명백백’에 대해 “한 올 한 올의 섬유질이 연결되어 하나의 종이가 되듯, 우리 모두도 인드라망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는 작품”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특별전을 통해 인간과 자연, 우주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껴 보길 바란다”는 소감을 밝혔다.

한편, 성파 스님과 문 전 대통령 내외는 이날 청주비엔날레 본전시와 초대국가 타이전 등을 둘러봤다. 특히 지난 3월 경북 산불 때 화마를 입은 고운사의 종각과 당시 소방관들의 진화복, 진화 장면 등을 소재로 만든 ‘검은산’ 작품이 눈길을 끌었다.

작품 '명명백백'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