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약국 사용설명서] 17. 콜레스테롤에 대한 오해
채식보다 건강한 음식 섭취 필요 세포막 등 우리 몸 구성 중요성분 포화·트랜스 지방, 동맥경화 원인 고기는 채소 곁들여 적당량 섭취
초보 약사 시절의 일이다. 김 아무개 님께 평소대로 복약 지도를 시작했다.
“오늘 약은 콜레스테롤 수치를 조절하는 약이네요. 평소 고기를 즐겨 드시나요?”
“오늘 절에서 된장국을 끓였답니다.”
“아? 스님이시네요! 죄송합니다. 약력을 보니, 고지혈증약을 복용한 지 오래되셨네요. 계속 드시던 약이지요?”
“네. 덕분에 관리가 잘 되고 있습니다.”
“콜레스테롤 관리를 위해 육류 섭취를 줄이시고, 계란 노른자, 새우, 굴, 조개, 전복, 오징어 등 해산물들은 콜레스테롤을 많이 함유하고 있으니 줄이시는 것이….”
“반찬들은 오늘 아침 텃밭에서 땄답니다.”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렸다. 당황한 탓에 정신없이 약을 전달해 드리고 돌아서는데, 직원이 한 마디 쏘아붙인다. “약사님, 진짜 편견 없으시네요. 스님께 고기를 줄이라니.”
당시 초보 약사였던 필자는 육식을 하지 않고 건강한 식단을 실천하는 스님들조차 고혈압이나 고지혈증 같은 성인병을 겪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고정 관념 속에서 스님들은 채식 위주의 건강한 식단과 마음 수양 덕에 건강과 장수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일반인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대사성 질환에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는 고기를 많이 먹으면 혈액이 기름져진다고 단순하게 생각했던 풋내기 약사의 실수였다.
사람들은 콜레스테롤을 혈관을 막는 나쁜 물질로 여기기 쉽지만, 사실 콜레스테롤은 우리 몸을 구성하는 아주 중요한 성분이다. 콜레스테롤은 인체의 세포막과 호르몬의 재료로 사용되고, 일부 콜레스테롤(HDL)은 동맥경화를 예방하고 혈관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종류의 콜레스테롤(LDL)은 혈관 벽에 달라붙어 염증과 동맥경화를 유발할 수 있으니 수치 관리도 중요하다.
나이가 들며 자연스럽게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는 것은 우리 몸이 요구하는 세포막과 호르몬이 예전처럼 많지 않아지면서 재료가 남아돌아 혈관으로 뿌려진다고 생각하면 쉽다. 갱년기 여성들의 콜레스테롤 수치가 갑자기 높아지는 현상이 이런 대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콜레스테롤은 음식을 통해 흡수되는 양보다 간에서 스스로 만들어지는 양이 두 배 이상 많다. 간에서 합성되는 콜레스테롤이 전체의 60~80% 정도이기에 채식으로 콜레스테롤 섭취를 줄인다고 한들, 몸에서 만들어지는 콜레스테롤이 많다면 수치는 오히려 증가한다. 그렇기에 콜레스테롤 수치 관리는 콜레스테롤 섭취를 줄이는 것보다는 간에서 콜레스테롤이 만들어지는 것을 줄이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우리 몸의 간에서 콜레스테롤을 만드는 과정을 막아 주는 것이 바로 ‘스타틴’이라고 불리는 고지혈증약인데, 심바스타틴, 아토르바스타틴, 로수바스타틴 등으로 불리는 성분들이 혈관질환을 유발하는 나쁜 콜레스테롤의 합성을 막아 혈액 중 콜레스테롤 농도를 조절한다.
그렇다면 식습관을 통해 콜레스테롤 섭취를 줄이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혈관 질환을 유발하는 콜레스테롤은 쇠고기나 돼지고기 등 육류에 들어 있는 포화지방과 튀긴 음식 중 트랜스 지방의 섭취에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지방은 배출되지 않고 대부분이 인체 내에 그대로 흡수돼 나쁜 콜레스테롤로 변하기에 동맥경화의 원인이 된다.
포화지방은 단순히 고기 섭취가 문제 되기보다는 탄수화물과 함께 섭취할 때 문제가 된다. 포화지방과 탄수화물이 함께 섭취되면 간은 탄수화물을 먼저 처리하느라 포화지방의 대사가 지연되고, 그때 포화지방이 나쁜 콜레스테롤로 빠르게 전환된다. 고기와 밥, 고기와 술을 곁들인 식습관이 혈관 건강의 큰 적이라는 말이다. 고기를 먹을 때는 밥보다는 채소와 함께 먹고, 과하지 않게 먹는다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음식으로 콜레스테롤 섭취를 아예 신경 쓰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미국에서는 콜레스테롤 섭취와 심혈관 질환의 상관관계가 불분명하다며 약 10년 전 콜레스테롤의 일 권장 제한량 항목을 삭제했다. 하지만 이는 건강에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들에 해당되고, 이미 고지혈증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은 콜레스테롤 섭취에 주의하는 것이 좋다. 과하게 섭취하는 것은 줄이고, 적당량 건강하게 섭취하는 것은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몇 년 전 태국 스님들에게서 비만이 문제가 됐다는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태국은 전통적인 불교국가인데 공양물이 서구화돼 대부분 스낵류나 단 음료로 제공되다 보니, 스님들이 자연스레 비만에 노출됐다는 내용이었다. 태국 스님 중 48%가 비만이며 이 중 42%가 고혈압이라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는데, 핵심은 육류 섭취가 문제가 아니라 건강한 음식의 섭취가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오늘의 한 줄 요약. 고기는 상추쌈. 고기는 깻잎쌈. 밥은 되도록 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