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진우 스님 Weekly 선명상] 33. 업장을 다스려야
수행과 정진으로 ‘苦·樂·捨’ 모두를 놓아라 즐거움 오면 괴로움 옴은 ‘필연’ 무엇을 해도 ‘고락사’ 못 벗어나 윤회의 고통 해결하는 게 ‘불교’ 고락사 해결하는 방법은 수행뿐
[오늘의 명상]
한 사람을 상대해도 갖은 감정 일어나고
온 세상을 경영해도 내 감정 안이로세.
작은 일이나 큰일이나 이 감정을 벗어나지 않으니
좋은 감정 나쁜 기분 이놈의 업(業)을 다스려야.
인간을 구성하고 있는 다섯 가지 요소를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 합하여 오온(五蘊)이라고 합니다. 색(色)은 물질 또는 육체를 가리키고, 수(受)는 감정과 감각의 감수 작용, 상(想)은 기억과 상상 등의 생각, 행(行)은 의지작용을, 식(識)은 인식 판단 등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오온 중에서 특히 수온(受蘊)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감정과 감각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됩니다. 즐거운 마음과 괴로운 마음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마음, 이 세 가지 마음을 고(苦)·락(樂)·사(捨), 삼수작용(三受作用)이라 합니다.
중생, 특히 인간은 감정으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유정(有情)입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별개로 인간의 속성은 괴로움을 피하려 하고 즐거움을 취하려 합니다. 업식(業識) 즉, 마음이란 바로 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육체·생각·의지·인식과 판단 등 오온 중에 나머지 4온(色想行識)은 수온(受蘊)을 위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따라서 사람이 사는 의미와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일체의 행위는 즐겁고 기쁘고 쾌락하고 행복하기 위한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살생과 도둑질, 간음, 거짓말, 나쁜 음식 등을 행하는 것도 낙수(樂受, 즐거움과 기쁨)작용이요, 인류와 국가, 민족, 조직, 이웃, 가족, 자식 등을 위한 봉사와 희생 등도 결국 자신의 낙수를 위한 행위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고락(苦樂)의 감정과 감각, 기분은 어느 하나만이 존재할 수가 없는 한 몸이라는 사실입니다.
즐거움은 괴로움이 있어야 나타나고, 괴로움은 즐거움 때문에 생기는 것이어서 이 둘의 관계는 서로 상대성을 갖고 있으므로 하나가 생기면 다른 하나가 따라서 생기고, 하나가 없어지면 다른 하나도 같이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를 인과(因果)의 속성 또는 법칙이라 합니다. 인과가 있고 없고, 믿고 안 믿고의 차원이 아닙니다.
어떤 생각을 하던 어떤 행동을 하던 어떻게 살아가던 그 어떤 위대하고 성스러운 것이라 하더라도 고락사(苦樂捨)라고 하는 삼수작용을 벗어날 수는 없는 것이기 때문에, 불교는 이를 해결하는 데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이 같은 근본적인 마음의 모습을 해결하지 않고는 세상에 더 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윤회(輪廻)의 고(苦)를 면치 못할지니, 마음의 인과 즉, 즐거운 마음과 괴로운 마음, 그리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마음, 이 세 가지 고락사, 삼수작용을 처리하는 것이 진정한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고락사의 삼수작용을 처리하는 방법을 수행이라 하고, 이를 이행하기 위하여 신심과 기도, 정진, 그리고 보시가 기본이 되어야 마음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의 명상]
자신이 하는 행동은 자신이 보고 배워
자신의 업장(業障)에 차곡차곡 쌓이게 되느니
보고 배운 업장을 다시 또 쓰게 되거늘
남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의 업장을 속일 수 없으리.
고업(苦業, 괴로운 마음)과 락업(樂業, 즐거운 마음)이 나타나는 정도에 따라 육근(六根, 눈·귀·코·혀·몸·생각)의 기능이 멈추어지거나 사라지게 됩니다.
온 정신이 한곳에 집착할 정도가 되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으며, 생각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극도의 고업이 나타날 때는 괴로움의 고통에 정신을 차리기 어렵습니다.
몸이 극도로 아프거나 가족이나 친구, 사랑하는 이들에게 극단적인 일이 생기거나 재산을 몽땅 잃어버리거나 심한 상사병이 생기거나 조울증이나 우울증이 극도로 심하거나 극단의 위험에 처하는 등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이 밀려올 때는 온통 괴로움에 쌓여 어쩔 줄을 모르게 됩니다. 너무 고통스러우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반대로 극도의 락업이 나타날 때 역시 즐거움의 기쁨에 정신을 차리기가 어렵습니다. 사랑할 때나 어려운 시험에 합격을 할 때나 마약을 했을 때나 엄청나게 재미있는 게임을 할 때 등등….
이러한 극도의 즐거움이나 괴로움이 밀려올 때, 대개의 사람들은 이성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특히 지금 당장 죽기보다 더한 고통과 괴로움에 휩싸여 있을 때는 옳고 그름이 무슨 소용이며, 자비와 평화, 부처와 보살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이렇게 극단적인 일은 자주 일어나지는 않지만 일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두 번쯤은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걸까요? 중생은 누구나 고락(苦樂)의 업으로 살아갑니다. 고(苦)의 마음이 있으니 락(樂)의 마음이 생기고, 즐거운 마음이 있으니 괴로운 마음이 생기므로 이 둘의 마음이 서로 번갈아 나타나는 삶을 중생(衆生)이라 합니다.
인연 현상은 내 마음의 고락에 따라 대상이 내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즉, 마음의 고업이 생길 때(시간)가 되면 괴로운 일이 나타나게 되고, 마음의 락업이 생길 때가 되면 즐거운 일이 내 앞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러한 업연은 평생을 통해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넓게 보면 전생과 금생, 내생을 통해 한치 오차 없이 정교한 업의 인연으로 나타납니다.
업연(業緣)이란 불을 만지면 금방 따뜻한 인연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뜨거운 인연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지구의 온난화와 같이 수십 년, 수백 년 후에 지구를 뜨겁게 하듯이 긴 시간을 통해 업연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온갖 방법으로 괴로움을 피하고, 즐거움과 기쁨, 행복을 얻으려 애를 쓰지만 마음 안에 고락이 크면 클수록 현실로 나타나는 고락 또한 커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락업의 인과에 의해 어느 때는 죽을 만큼의 고통과 괴로움이 생긴다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마음이라고 하는 고락의 업을 먼저 멸(滅)해야 내 앞에 나타나는 인연현상 또한 걸림이 없어지고 평온하게 되니, 부처님께서는 팔만대장경을 통해 오로지 이 사실을 알리고 있습니다.
마음 안에 고락의 업을 멸하는 방법은 바로 밖으로는 육바라밀(六波羅蜜, 보시·지계·인욕·정진·반야·지혜)을 행하고, 안으로는 참선을 통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육바라밀행과 참선을 뜻하며, 이 둘을 끊임없이 행하는 것을 정진이라 합니다. 오늘도 기도 정진으로 갈무리를 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