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야의 시, 불교를 만나다] 16. 방하착(放下著) : 도종환의 ‘단풍 드는 날’

내려놓음으로 맺힌 단풍 시인은 단풍이 방하착의 결과라 노래 가을 산하 단풍, 우리 삶의 절정 같아 전부라 여긴 것 버릴수록 자유 얻어

2025-08-29     이일야 전북불교대학 학장
해당 삽화는 생성형 AI를 통해 제작했습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가면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하면서 돈을 빌리는 사람이 있었다. 대개는 거짓인 줄 알면서도 적선한다는 마음으로 돈을 주곤 했다. 내가 돈을 줬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고 또다시 빌리려다 겸연쩍어 도망가는 웃지 못할 상황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일도 참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자신을 한없이 낮춰야만 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경우야 다르지만, 출가한 사문(沙門)이 탁발하는 일도 결코 쉬운 것이 아니다. 이 역시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문을 가리켜 ‘걸사(乞士)’라고 하는데, 먹을 것을 비는 사람이 어찌 우쭐한 마음을 낼 수 있겠는가. 그래서인지 ‘하심(下心)에는 탁발이 제일’이라고 말하는 분들이 적지 않다. 가짜 승려들의 문제로 지금은 금하고 있지만, 탁발은 아상(我相)을 내려놓는 좋은 수행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도종환 시인의 ‘단풍 드는 날’을 읽다가 문득 하심이란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시인에 의하면 방하착(放下著), 즉 자신을 내려놓아서 단풍이 생겨났다고 한다. 가을이 되면 온 산하를 ‘황홀한 빛깔로’ 물들이는 단풍이 다름 아닌, 하심의 결과라는 것이다. 이처럼 ‘나’라는 상(相)을 내려놓으면 시인이 노래한 것처럼 우리의 인격도 단풍처럼 곱게 물들 수 있을까?

도종환은 1986년 출간한 시집 〈접시꽃 당신〉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시인이다. 이 시는 암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아내를 그리워하며 쓴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특히 주부들 사이에서 공감을 얻은 이 시집은 300만 부 이상 판매됐다고 한다. 다시 시를 읽으면서 눈에 들어온 대목이다.

“우리가 버리지 못했던 / 보잘것없는 눈높음과 영욕까지도 / 이제는 스스럼없이 버리고 / 내 마음의 모두를 더욱 아리고 슬픈 사람에게 / 줄 수 있는 날들이 짧아진 것을 아파해야 합니다.”

시인은 접시꽃 같은 아내를 생각하며 ‘무너지는 담벼락을 껴안은 듯’ 떨면서도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다잡고 있었다. 또한 ‘옥수수잎을 때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아내의 손을 놓지 않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영원히 당신 곁에 있겠다고. 아내를 향한 사랑이 참으로 아리게 다가오는 시다. 이 절절한 사랑 이야기는 1988년 박철수 감독에 의해 같은 제목의 영화로 만들어졌다. 배우 이덕화와 이보희가 주연을 맡아 열연했는데, 관객에서 큰 감동을 준 것은 물론 흥행에도 성공했다.

도종환은 적지 않은 삶의 부침을 겪은 시인이다. 그는 1977년 청주에서 교편을 잡고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1984년에는 동인지 〈분단시대〉에 ‘고두미 마을’을 비롯한 5편의 시를 발표하면서 등단도 한다. 하지만 시인에게 커다란 시련이 찾아온다. 1989년 전교조 결성에 참여했다가 해직되는 아픔을 겪은 것이다. 이후 다시 복직했지만, 지병을 이유로 휴직하다 결국 교직을 그만두게 된다.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진 것 같던 시인이 새롭게 각인된 것은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부터다. 그는 19대와 20대, 21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2017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소임을 맡아 국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접시꽃 당신〉 이외에도 〈내가 사랑하는 당신은〉, 〈슬픔의 뿌리〉, 〈해인으로 가는 길〉, 〈모과〉, 〈나무야 안녕〉 등이 있다. 1997년 민족예술상을 비롯해 거창평화인권문학상,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부문 예술상을 받았다. 

‘단풍 드는 날’은 2012년 출간한 시집 〈슬픔의 뿌리〉에 실린 시다.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에도 실려 있다. 시인의 지적대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는가. 오늘의 주제인 단풍 역시 이런저런 바람에 흔들리고 아름답게 물든 것이다. 가을이면 온 산하를 붉게 수놓는 단풍은 마치 우리 삶의 절정과도 같다. 얼마나 황홀하게 물이 드는지, 시를 통해 확인해 보자.

“버려야 할 것이 / 무엇인지를 아는 순간부터 / 나무는 가장 아름답게 불탄다 / 제 삶의 이유였던 것 / 제 몸의 전부였던 것 / 아낌없이 버리기로 결심하면서 / 나무는 생의 절정에 선다 / 방하착(放下著) / 제가 키워 온, / 그러나 이제는 무거워진 / 제 몸 하나씩 내려놓으면서 / 가장 황홀한 빛깔로 / 우리도 물이 드는 날.”
 

버릴수록 곱게 물드는 불격(佛格)
이 시를 읽으면서 어깨에 무거운 보따리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보였다. 보따리 안에는 자식이나 돈, 명예, 외모 등 여러 짐들이 들어 있다. 부모의 마음을 몰라주고 자꾸 엇나간다고 생각되는 자녀들, 욕심만큼 충족되지 않는 돈이나 명예, 영원할 줄 알았는데 자꾸만 늙어 가는 외모도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어찌 그뿐이던가. 무리하게 대출받아 겨우 내 집 마련을 했더니, 금리는 오르고 아파트 가격은 내려가 마음 졸이는 모습도 그 안에 담겨 있다. 너무 무겁지만 내려놓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다. 시인의 지적대로 삶의 이유이자 자신의 전부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때 시인은 과감하게 아낌없이 모두 버리라고 말한다. 그러면 나무가 생의 절정에 서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가장 황홀한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불자들에게 익숙하면서도 아주 묵직한 사자후를 토해 낸다. 선가(禪家)의 표현을 빌리면 사구(死句), 즉 죽은 말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활구(活句)다.

“방하착(放下著).”
시 전체를 압도하는 말이다. 내려놓으면 몸과 마음이 가볍고 자유롭다고 하지만, 중생들에겐 그저 죽은 말로 다가올 뿐이다. 말로는 할 수 있어도 실천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만 같은 것이다. 이는 마치 사회적으로 엘리트라 불리는 사람들이 사이비 종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와 유사하다. 그들은 파렴치한 교주의 악행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이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인정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삶 전체가 부정당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내가 얼마나 똑똑한 사람인데 내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하고 내려놓으면 그만인데, 삶 전체를 지탱해 온 기둥이 무너진다고 생각하니까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몸부림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자기 자신을 부정하는 일도 그리 쉬운 일이 아닌 것 같다. 정말로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다. 

개인적으로 불교 수업을 할 때 드라마나 영화, 대중가요, 시 등을 많이 활용하는 편이다. 어려운 불교를 학인들에게 쉽게 전하기 위한 방편이다. 특히 마지막 시간에는 KBS ‘드라마시티’에서 방영했던 ‘산사의 아침’이라는 작품을 보여 준다.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마치 고승의 법문을 듣는 것 같아 수업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드라마에서 주인공인 한수 행자는 ‘흔들림 없는 부동심과 변함없는 평상심’이라는 자신만의 도(道)를 고집하고 있었다. 자신이 머물던 절에서는 이를 실현하기 어려울 것 같아 그는 한밤중에 절을 떠난다. 그런데 바위 사이를 내려가다 미끄러지면서 간신히 나뭇가지 하나를 붙잡게 된다. 이것을 놓는 순간 아래로 떨어진다는 생각에 그는 안간힘을 쓰면서 밤새도록 나뭇가지를 붙들고 있었다. 힘을 모두 소진한 주인공은 포기하는 마음으로 손을 놓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낭떠러지가 아니었던 것이다.

생명줄이라 생각했던 나뭇가지를 놓아 버리자,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만의 방식에 갇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는 사실도 깨닫게 된다. 눈앞의 절경을 감상할 줄 모르면서 선(禪) 공부를 100년 하면 무엇하며, 경(經)을 만 권 읽으면 무슨 소용이냐는 스승의 가르침이 이제야 마음에 들어온다. 행자에게 생의 절정, 깨달음의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주인공은 ‘무거워진 제 몸’을 내려놓고 ‘가장 황홀한 빛깔로’ 인격에서 불격(佛格)으로 물들고 있었다.

드라마와 도종환의 시가 서로 맥락이 통하는 것 같아 소개했다. 주인공이 붙잡고 있던 나뭇가지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시인이 지적한 것처럼, 제 삶의 전부라고 여기는 것들이다. 앞서 언급한 돈이나 자식, 명예 등이라 할 수 있다. 버리면 정말 죽을 것 같은 인생 목록이다. 하지만 그것을 놓는다고 죽을 일은 별로 없다. 오히려 버리면 버릴수록 자유를 얻고 가장 아름답게 물든다는 것이 부처님을 비롯한 성현들의 가르침이다.

유난히 무더운 여름을 보내서인지 가을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뜨거웠던 만큼 이제는 무거워진 짐을 하나씩 내려놓을 때다. 박경리 작가도 그렇지 않았는가.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고. 버릴수록 곱게 물드는 것이 불격(佛格)이다. 여름을 뒤로하고 가을이 조금씩 익어가고 있다.

▶한줄 요약 
도종환 시인은 방하착(放下著), 즉 자신을 내려놓아서 단풍이 생겨났다고 했는데, 이는 삶의 전부라고 여기는 것을 모두 버리면 가장 황홀한 삶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