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보배의 24번의 계절]16. 처서_남원 길을 걷다
햇살과 바람, 별이 엮은 여름의 경계
처서는 햇살과 바람, 별의 이야기로 채워진 절기다. 낮이면 태양과 바람이 사이좋게 제 할 일을 하고, 밤이면 별의 모습을 한 신들이 그 어느 때보다 성스럽게 빛나는 때.
기세등등하던 더위가 슬며시 제 풀을 꺾고, 깊은 밤 귀뚜라미와 함께 이별 노래를 부르는 시간. 지금은 처서다.
가을로 간다
“처서가 얼마나 남았지?”
“글쎄, 앞으로 두어 달 정도 남은 것 같은데.”
“아이고, 아직도 한참이네!”
지난 7월 말, 재래시장을 걷던 중 우연히 듣게 된 어르신들의 대화에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올해 처서는 8월 23일. 고로 처서는 이미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때여서 어르신들의 셈은 완전히 틀린 것이었다. 하지만 셈이 맞고 틀리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대화 속 행간에 담긴 어르신들의 속내에 공감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푹푹 찌는 더위, 사람들로 가득 찬 좁다란 시장길은 후덥지근한 공기에 숨만 쉬어도 땀이 뻘뻘 나는 중이었다. 돌아가는 선풍기는 그야말로 무용지물. 이럴 때면 물건을 파는 이나 사는 이나 그저 시원한 곳에 순간이동이라도 하고 싶을 뿐이다.
무언가를 떠올리고 돌아올 날을 셈하는 것. 그건 기다림의 마음이다. 아마도 어르신의 마음이 향한 곳은 이른바 ‘처서의 기적’이 이루어지는 그 날일 것이다. 어떤 여름이라도 그 힘이 저무는 임계점이 있다면, 그건 아마 처서라고 말이다.
이상 기온의 영향으로 처서의 힘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 절기는 여름 더위의 맹공을 막아서는 한계선이다. 그리고 마침내 태양이 황경 150도에 도달하는 때. 바로 그곳에서 처서는 시작되는 것이다.
햇살과 바람
음력 7월 15일경, 입추와 백로 사이에 존재하는 15일간의 절기.
〈고려사(高麗史)〉에서는 처서를 세 시기로 나누어 ‘첫 5일간은 매가 새를 잡아 제를 지내고, 다음 5일은 천지에 가을 기운이 돌며, 다음 5일간은 곡식이 익어 간다’고 전한다.
아마 이즈음 가장 달갑잖은 손님을 꼽으라면 무엇보다 ‘처서비[處暑雨]’가 아닐까. 처서에 내리는 비를 뜻하는 처서비는 폭발적으로 성장할 시기의 벼를 못 쓰게 만든다. 한창 여물어 가는 나락에 물이 고이면, 꽃도 피우지 못하고 썩어 버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처서비가 환영받지 못하는 것과 달리, 햇살과 바람은 이 절기를 풍요롭고 윤택하게 하는 일등 공신 대접을 받는다. 처서에 볕이 쨍쨍하면 수확량이 곱절이나 높아진다고 하니 당연한 일. 농사 외에도 처서의 햇살은 보물과 같아서, 이 시기에 기억하고 시도해 보면 좋을 만한 옛 풍습이 있다. 바로 포쇄(曝曬)다.
포쇄는 여름 내내 눅눅해진 책을 볕과 바람에 말려 해충과 곰팡이를 없애고 훼손을 막는 작업. 먼저 바람을 쐬는 거풍(擧風), 그리고 뜨거운 볕 아래 말리는 포쇄, 또 필요에 따라 그늘에 말리는 음건(陰乾)을 함께 한다.
지난 2021년 해인사에서 123년 만에 열린 경책 1270권의 전권 포쇄 작업은 이와 같은 전통을 재현한 것이었다.
조선 시대에는 실록을 보관한 사고에 쇄별관을 보내고, 포쇄하는 일을 국가 대사로 여길 만큼 중요시했다고. 과거 추사 김정희와 번암 채제공 또한 오대산 서고에 보관된 실록의 포쇄를 위해 관리로 파견된 적이 있다.
‘굽어보니 온 길 가까워 보이지만 / 모르는 사이 아득한 곳 들어왔네 / 봉우리 반은 온통 흰색에 잠기고 / 숲 끝은 아스라이 청색으로 꾸몄으며 / 법 구름은 밖에서 보호해 주고 / 신성 불은 설교 듣는 걸 지켜 주네.’
추사 김정희의 <완당선생전집>에 수록된 ‘포사등오대산’의 한 구절이다. 한양에서 수백 리 길을 달리고도 월정사에서 수 시간을 걸어야 닿을 수 있었다는 산중 서고. 일 년 내 잠들어 있던 비밀스러운 서고의 문을 연 것은 아마도 사람보다 앞서 도착한 가을 햇살이었을 것이다.
지난 계절의 미련처럼 눅눅해진 옷가지와 이불, 그리고 지절대는 책들을 햇살과 바람에 맡기는 것. 그 어떤 마음도, 물건도 이보다 더 좋은 씻김의 의식은 없을 것만 같다.
별들의 시간
제주에서는 처서 무렵, 그리고 백중날 여신의 옷을 바람에 날리는 ‘마불림제’를 올린다. 곰팡이가 핀 묵은 신의(神衣)를 거풍하며 액운을 날리고, 가축과 농작물이 불어나길 기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칠월 칠석의 날, 땅 위의 여인들은 또 다른 여신을 향해 간절한 손을 뻗는다.
오래전 바느질 솜씨가 좋아지길 바라던 옛 여인들. 그들이 베틀 위의 여신인 직녀를 향해 ‘별제사’를 올리던 걸교(乞巧) 의식이다.
음력 7월 7일, 칠월 칠석으로 불리는 이날에 멀고 먼 별의 세계와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진다. 견우직녀 설화는 칠월 칠석을 대표하는 별의 이야기다. 북극성을 중심으로 정반대의 위치에 떨어져 있던 두 별이 하늘을 돌아 만나는 날. 옛사람들은 1년에 단 한 번, 두 별이 교차하는 그 모습에 애틋한 연인들을 떠올렸다. 그렇게 두 별은 견우성(알타이르 Altair)과 직녀성(베가 Vega)이라는 이름을 얻고, 그저 하늘 위 수많은 천체 중 하나가 아닌, 특별한 생명력을 부여받은 존재가 된 것이다.
견우직녀 이야기가 칠월 칠석을 아련한 색채로 물들인다면, 칠성 신앙은 우리 민족의 수복(壽福)을 관장한 굳건한 믿음의 상징이다.
7개의 별이 함께 빛나는 북두칠성. 이 빛나는 국자 모양의 별은 여느 별과 달리 매일 밤 조금씩 이동하며 우주의 시간을 하늘에 새겼다. 땅 위의 인간들은 북두칠성을 통해 시간과 계절을 깨닫고, 마침내 생과 사의 권능을 느꼈으리라.
일곱 개 별은 어느새 하늘의 일곱 왕자가 되고 천신이 되며 마침내 부처님의 곁에서 뭇 생명을 지킨다.
별의 궁전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 굽이굽이 펼쳐진 지리산 자락의 품에 폭 안긴 천년고찰 실상사. 이곳의 첫인상은 마치 광활한 지평선 위에 자리한 옛 궁전을 마주한 기분이다.
산중 사찰들이 땅의 형세에 따라 전각 높낮이가 다른 반면, 실상사는 끝없는 수평 속에 과거의 찬란한 유산들과 마주하는 것이다.
고색한 아름다움의 실상사 보광전과 그 앞에 자리한 동·서 삼층석탑(보물)과 석등(보물). 오랜 시간 땅속에 잠들어 있었다는 약사전의 철조여래좌상도 지금껏 땅 빛을 머금은 채 묵묵히 이곳을 지킨다.
그리고 바로 그 곁에 칠성각(七星閣)이 있다. 마치 대지 위에 바로 선 것처럼, 유난히 문턱이 낮은 저 별의 궁전. 우리 민족의 오랜 민간 신앙이었던 칠성 신앙은 불교와 함께 어우러지며 이 땅의 사찰에서만 볼 수 있는 특별한 존재로 자리 잡았다.
다가오는 칠월 칠석에는 전국의 사찰마다 가족의 건강과 장수를 기원하는 칠석 기도가 이뤄질 것이다. 곧이어 백중이 되면 돌아가신 이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천도재도 함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살아 있는 자들의 세상에서 그 너머의 곳까지 간절한 바람을 전할 때는 역시 별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뭇 사람들의 기원이 하늘에 닿을 때쯤 이 절기는 귀뚜라미 소리와 함께 저물고 가을은 누런 황금 들판과 함께 돌아오겠지. 그리고 별들은 다시 꿈을 꿀 것이다. 아주 오래전, 아무것도 아니던 어느 별에 가만히 소원을 속삭이던 처음의 목소리를.
▶한줄 요약
처서(處暑)는 여름 더위의 맹공을 막아서는 한계선으로, 햇살과 바람, 별의 이야기로 채워진 절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