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미의 심심톡톡] 바꾸려는 마음 내려놓을 때 대화 열린다

44. 말하는 법을 강조한 부처님, 대화법(2) 판단 빼고 사실 말하며 욕구 알아차려야 있는 그대로의 수용이 관계 변화 이끌어

2025-08-15     하성미 기자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상담실에 앉아 있던 한 남편은 이렇게 말하며 아내의 말을 끊었다. 아내는 그 순간 고개를 떨구었다. 내용은 집안일과 아이 문제였지만, 말속에 숨은 의도는 분명했다.

“네가 변해야 한다.”

대화는 그렇게 끝나 버렸다.

우리가 충고, 조언, 평가를 하는 순간, 그 안에는 “너는 틀렸고, 내가 옳다”는 메시지가 숨어 있다. 좋은 뜻에서 한 말이어도 상대는 그 의도를 먼저 감지한다. 그래서 마음을 닫고 방어 태세를 갖춘다. 

집에서 엄마가 “이렇게 하는 게 맞아”라고 말하는 순간, 설명을 들으려 하기보다 반박할 거리를 찾게 되는 것과 비슷하다. 부부 사이뿐 아니라 직장, 부모와 자녀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부모가 “너는 공부를 이렇게 해야 해”라고 말하는 순간, 자녀는 그 말의 이유보다 ‘내가 틀렸다고 하는구나’라는 느낌을 먼저 받는다.

바꾸려는 마음은 대화에서 방어와 거리를 만든다. 충고를 들은 사람은 말의 내용보다 ‘내가 평가 받고 있다’는 감각을 먼저 느낀다. 그 순간 대화는 연결이 아니라 논쟁이 된다. 관계의 힘의 균형도 무너진다. 충고하는 쪽이 ‘위’에 서고, 듣는 쪽이 ‘아래’로 내려가면 변화보다 거부가 먼저 온다. 결국 정서적 거리까지 벌어져, 관계를 위한 대화는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려면 먼저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나는 왜 저 사람을 바꾸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그 마음 뒤에 불안, 통제 욕구, 완벽주의가 숨어 있음을 발견할 때가 많다. 많은 경우 우리는 ‘상대를 위해서’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내 불편함을 줄이고 싶어서다. 이 욕구의 밑바닥에는 ‘내가 옳다’는 확신과 ‘상대가 변해야 관계가 좋아진다’는 믿음이 깔려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나의 불안과 두려움을 줄이려는 의도가 더 크다. 상대를 바꾸려는 말은 종종 ‘내가 편해지기 위해’ 하는 말이 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는 사람을 만들고 싶은 욕심이 들어가면, 그 말은 관계를 회복하기보다 오히려 틈을 넓힌다.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작은 실천을 이어가야 한다.

첫째, 판단을 빼고 사실만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게으르다” 대신 “이번 주에 재활용 쓰레기가 쌓인 것 같아”라고 표현한다. 판단을 뺀 말은 처음엔 어색하지만, 상대가 방어하기보다 대화에 머물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상대를 탓하기보다 나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인정한다. “당신은 늘 제멋대로야” 대신 “그래서 나는 좀 서운하고 답답해”라고 말한다. 감정을 드러내면, 상대가 나의 경험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지를 만든다.

셋째, 내 감정 뒤에 있는 진짜 욕구를 알아차린다. “나는 함께 있다는 느낌, 연결감을 느끼고 싶었어”처럼 말이다. 욕구를 명확히 하면 불필요한 오해가 줄어들고, 대화의 방향이 분명해진다.

넷째, 강요가 아닌 선택권을 주는 요청을 한다. “지금 말해 보라고!” 대신 “오늘 저녁에 잠깐 대화할 수 있을까?”라고 건넨다. 선택권이 주어지면 대화는 강제에서 자발로 바뀌고, 부담 없이 참여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이렇게 내려놓기를 실천하면, 변화보다 먼저 안전감이 만들어진다. 변화는 설득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상대가 ‘존중받고 있다’고 느끼는 순간, 마음의 문이 열린다. 부처님은 “때와 장소에 맞는 말은 향기로운 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을 때, 우리의 말은 상대 마음에 닿는 향기가 된다.

현재 필자가 공부하고 있는 게슈탈트 상담은 ‘지금-여기’와 ‘알아차림’을 치료 핵심으로 삼는다. 과거를 후회하거나 미래를 억지로 통제하기보다, 현재 순간의 나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태도를 강조한다. 알아차림이란 단순히 ‘아는 것’이 아니라, 내 몸과 마음이 지금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를 자각하는 사념처(四念處), 알아차림 수행과 비슷하다. 

게슈탈트 상담자가 요구받는 기본 자세는 ‘변화의 역설(paradoxical theory of change)’이다. 변화의 역설이란 사람이 다른 모습이 되려고 억지로 애쓸수록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오히려 현재의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할 때 변화가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현상을 말한다. 사람들은 다른 누군가가 제시하는 이상적인 사람이 되려고 애쓸수록, 마음속에서는 ‘바꾸고 싶은 나’와 ‘있는 그대로의 존중받고 싶은 나’가 충돌하고, 그 저항이 커질수록 변화는 멈춘다. 상담자는 미리 준비한 과제나 목표를 적용하기보다, 대화 속에서 드러나는 반응에 맞춰 개입한다. 목적은 내담자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함께 탐색하고 이해하는 것이다. 

이 원리는 대화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바꾸려는 마음은 압력이 돼 상대를 방어하게 만들지만,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는 안전감을 형성해 마음을 열게 한다. 실제 상담에서도, 한 부부가 서로의 단점을 고치려는 시도를 멈췄을 때 오히려 대화가 길어지고 웃음이 돌아오는 모습을 보게 된다. 진정한 변화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가 아니라, “나는 당신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는 말에서 시작된다.

바꾸려는 마음을 내려놓는 것은 무기력해지는 것이 아니다. 관계를 위해 한 걸음 물러서는 용기다. 말은 칼이 될 수도, 다리가 될 수도 있다. 내려놓기를 배울 때, 말은 관계를 잇는 다리가 된다. 그리고 그 다리는 서두르지 않아도 조금씩, 그러나 단단하게 서로를 이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