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원의 불교미학산책] 15. 정각원 불단(상단) 1

출세간의 영원함 상징하는 자리  경희궁 정전인 숭정전이 거듭나 정각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전 세간·출세간의 연속과 단절 보여

2025-08-08     서정원 박사
현재 동국대학교 정각원. 사진 출처=서울연구데이터베이스

우리는 지금까지 동국대학교 정각원의 돌계단을 올라 하단(영가단)과 중단(신중단)을 거쳐, 부처님이 자리하신 상단에 이르게 되었다. 정각원 상단의 본불은 중품중생인을 맺으신 아미타 부처님이시며, 따로 좌우 보처를 두고 계시지는 않다. 그 뒤로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영축산에서 설법을 하시는 영산회상도가 양각 형태로 모셔져 있다. 아래의 수미단은 넓고 평탄하며 위로는 닷집이 높게 올라간, 한 마디로 멋진 부처님이시다. 그런데 부처님에 앞서 묘한 생각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 바로 수미단이다. 오늘 이 수미단 앞에서 사색을 이어가 보고자 한다.

동국대학교 정각원은 그 자체로 특별한 이력을 가지고 있으며, 오늘 사색할 수미단의 자리와도 관련이 있으니, 먼저 그 부분을 설명하고자 한다. 

동국대 서울캠퍼스의 가장자리, 정문에 면해 정면을 드러낸 채 앉아 있는 정각원 전각은 지금은 부처님이 자리하신 법당이지만 본래 왕의 공간이었다. 조선의 궁궐, 그중 경희궁의 정전 숭정전이 바로 정각원의 전생이었다. 정전이란 궁궐 건물들 가운데서도 가장 위계 높은 전각을 뜻하는 말이다. 경복궁의 근정전, 창덕궁의 인정전, 창경궁의 명정전에 대응되는 왕의 자리가 곧 숭정전이었다. 

지금 우리가 캠퍼스에서 보는 정각원의 외형은 그 시절의 흔적을 비교적 온전히 보존하고 있다. 정면 다섯 칸, 측면 네 칸의 팔작지붕, 기둥은 모두 원형이고, 천장은 화려한 우물반자 구조다. 특히 중앙에 그려진 칠조룡 문양, 청룡과 황룡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상은 왕실 권위를 상징하는 도상이자, 보는 이의 시선을 멈추게 한다. 평민은 감히 마주할 수 없었던 이 문양이 지금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시대는 바뀌었고, 권위는 문양만 남긴 채 자취를 감췄다.

경희궁 숭정전은 오늘날 남산자락의 동국대에 오기까지 오랜 시간을 떠돌았다. 1900년대 초, 경희궁이 일제에 의해 훼손되며 전각들은 흩어졌다. 숭정전은 예전 필동에 위치했던 일본사찰 조계사 경내로 옮겨졌는데, 그 당시에는 지금 동국대의 만해광장 자리에 있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혜화전문학교가 지금의 동국대 자리로 오면서 만해광장 쪽에 위치한 숭정전을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정각원은 그렇게 네 번의 시대를 건너왔다. 경희궁에서 조계사로, 혜화동에서 다시 남산자락으로. 그리고 1977년, 마침내 ‘정각원’이라는 이름을 얻으며 불교의 전각으로 거듭났다. 궁궐의 정전이 법당이 된다는 것이 흔한 일은 아닌 듯하다. 권력과 정치의 공간이, 수행과 자비의 장소가 되는 전환은 이 건물이 품은 가장 큰 변모일 것이다. 그렇게 정각원은 오늘날 법회를 열고 예불을 봉행하며, 학생과 스님, 신도들이 함께 수행하는 공간이 되었다.

왕이 앉았던 자리에 지금은 수미단이 솟고 그 위에 아미타부처님이 앉아 있다. 말 그대로 지존의 자리인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조선 권력의 정점, 칠조룡이 여의주를 떠받들던 그 천장 아래, 지금은 향냄새와 염불 소리만이 맴돈다는 차이가 있다. 

불교를 ‘해괴망측한 종교’라고 비판하며 <불씨잡변>을 썼던 조선의 설계자 정도전이 살아 있다면 아마 이 광경 앞에서 까무러쳤을 것이다. 그는 공자를 앞세워 불교를 몰아냈고, 유학을 국가의 유일한 언어로 만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지키려 했던 유가법도 아래 아무런 세속 권력도 갖지 않은 부처님이 그 표정조차 초연하게 앉아 계신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제목의 책이 유행하는 오늘날 공자의 말은 이제 ‘공씨잡변’이 되었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유교의 이미지는 고리타분하다 못해 가부장제를 중심으로 한 일종의 극단주의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반대로 불교의 가르침, 부처님의 말씀은 인생을 꿰뚫는 지혜와 힘든 삶을 보듬어 주는 자비의 언어로 알려져 있다. 근래 갓 스물을 넘긴 걸그룹의 멤버가 예능 토크쇼에 나와 불교책을 홍보하고, 그 책이 도서 순위 1위에 오르는 세상이다. 불교 굿즈를 자랑하는 SNS는 쉬지 않고 올라오고 있다. 조선은 졌다. 조용히, 확실하게. 그리고 부처님은 승리했다.

이 승리는 단순히 유교를 깔아뭉개고 싶어서 꺼내는 말이 아니다. 우리는 앞서 동국대 산책의 출발점에서 장충단 공원, 공자의 세계, 평지의 순탄한 길에서 혜화문으로 오르는 언덕, 부처님의 세계, 언덕의 가파른 길을 ‘선택’해야 함을 사색한 적이 있다. 권력에 순응하는 길은 얼마나 평탄하며 즐거운 평지의 길인가? 반대로 권력에 저항하여 옳은 것을 찾아 헤맨 길은 얼마나 가파르며 괴로운 언덕의 길일까? 500년의 기나긴 시간, 그것도 왕권과 국교를 선택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체제를 전복하고자 획책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인내를 견뎌 온 불교도들의 괴로운 역사를 우리가 반드시 행지(行持)해야 하기에 꺼내는 말이다.

그렇기에 나는 이 정각원을 단지 종교적 기능으로 기억하고 싶지는 않다. 정각원을 볼 때마다 ‘진리’의 승리와 ‘신앙’의 숭고함이 내 안에 결정화되기 때문이다. 왕이 앉았던 자리에 이제는 부처님이 모셔져 있고, 수미단은 세간의 덧없음과 출세간의 영원함을 상징하는 자리가 되어 있다. 

정각원은 세간과 출세간의 연속과 단절을 보여 준다. 우리는 흔히 궁과 절을 서로 다른 세계라 여긴다. 지배와 해탈, 권력과 자비. 그러나 이 건물은 이 두 세계를 번갈아 수용하면서 최종적으로 출세간의 승리를 보여 준다. 정각원은 그 자체로 하나의 경전이다. 궁전이 법당이 되고, 권위가 수행이 되는 그 과정이 하나의 문장처럼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