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무원장 진우 스님의 Weekly 선명상] 30. 모든 일 인연에 맡기면

편안하고 싶다면 ‘인연’을 믿어라 원인 없는 결과는 존재하지 않아 악업을 지으면 악한 결과 돌아와 감정 잘 추슬러야 악순환 사라져 생활서 감정 비워내려면 ‘참선’을 참선 통해 현상이 인과임을 알라

2025-08-07     진우 스님/ 조계종 총무원장

 

[오늘의 명상]
어제 마음은 형형색색 따라다녔고
오늘 마음은 온갖 소리 따라다니네.
소리 형상 따라다니는 마음 과연 어디서 왔는가.
조용히 앉아서 선정(禪定)에 들어 보네.

모든 일을 인연에 맡기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그러나 이 편안함에도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인연을 믿는 것입니다.

인연이란 무엇일까요? 인연은 반드시 일어날 일이 일어나는 필연(必緣)을 말합니다. 해가 뜨면 해가 지고, 밀물이 있으면 썰물이 있으며, 봄이 오고 여름과 가을, 겨울이 차례로 찾아옵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고, 그 결과는 다시 원인이 됩니다.

우리의 육식(눈·귀·코·혀·몸·생각의 인식)을 통해 감지되는 모든 소리와 형상은 인과의 법칙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따라서 당연히 나타나는 것을 인정하지 않거나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스스로를 괴롭히게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나를 속이거나, 사기를 치거나 배신하거나 욕하거나 해를 가하는 일이 생긴다면 이는 당연히 화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연이 나타나는 원인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번개가 멀쩡히 서 있는 나무를 때리는 것처럼, 이는 나무의 잘못이 아니라 우주와 물질의 질서 속에서 벌어지는 오묘한 인연의 조화입니다. 마찬가지로, 내가 알지 못하는 원인에 의해 과보(果報)가 시간이 되어 나에게 벌어지는 것입니다.

둘째, 내 마음 속의 고락(苦樂)이 서로 반복되고 윤회하는 과정에서, 괴로움의 인연이 나타날 때 상대가 나를 해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원인 없는 결과는 없습니다. 우연히 재수 없이 나타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의심하거나 화를 낸다면, 우리는 또 다른 업을 짓게 되어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이럴 때는 인과의 과정이 인연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이라 믿고, 억울한 마음을 빨리 추스르며 감정을 자제해야 합니다. 그러나 복받치는 감정을 자제하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보다 더 어려운 법입니다.

따라서 온갖 일을 대할 때마다 인과의 법칙을 상기하고, 이를 절대적으로 믿는 신심(信心)을 길러야 합니다. 신심은 우리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그럼에도 마음을 다스리기가 어렵다면, 참선을 통해 감정을 비우는 연습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참선(좌선)은 삶의 질과 품격을 높이는 최고의 수행 방법입니다.

참선은 소리와 형상에 따라다니는 마음을 가만히 바라보는 연습입니다.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는 이 과정은 고요한 선정(禪定)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참선을 통해 우리는 인연의 흐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내면의 평화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도 참선과 기도를 통해 내 마음을 살피고, 나타나는 모든 현상이 인과의 결과임을 믿어 보십시오. 감정을 내려놓는 연습을 꾸준히 할 때, 우리는 더 이상 소리와 형상에 끌려다니지 않고, 본래의 고요와 평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당 삽화는 진우 스님 선명상 게송을 생성형 AI에 입력해 제작됐습니다.

[오늘의 명상]
빛은 스스로 색깔이 없으나
만물의 모습 따라 각양각색 드러나고
마음은 본래 색깔 모양 없으나
욕심[無明]의 움직임 따라 그 모습이 나타난다.

시간과 공간을 일체(一切)라 합니다. 줄여서 시공(時空)이라 부르며 불교에서는 이를 유위(有爲)세계라 표현합니다. 유위세계란 존재하는 모든 것을 의미하며 이 모든 것은 내 마음이 만들어 낸다고 합니다.

내 마음에 없는 것은 볼 수도, 들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즉 오직 마음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유위세계, 곧 일체는 음양의 조화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너가 나타나면 내가 나타나고, 내가 사라지면 너도 사라지는 숙명을 지녔습니다. 이 음양의 속성은 남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그저 왔다 갔다 할 뿐입니다.

이것을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여로역여전(如露亦如電)이라 표현합니다. 꿈과 환영, 물거품과 그림자 같으며, 이슬 같고 번개 같다는 뜻입니다. 결국,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성주괴공(成住壞空)도 공(空)에 지나지 않습니다.

마음은 업(業) 또는 업식(業識)이라 부릅니다. 업식이란 과거부터 이어져 온 버릇과 습관을 뜻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크게 나누어 두 가지로 나타납니다. 즐거운 마음과 괴로운 마음, 행복한 마음과 불행한 마음이 그것입니다. 마음을 하루로 보면 낮과 밤이 생기고, 마음을 일 년으로 보면 사계절이 순환합니다. 100년으로 보면 생로병사가, 인류 역사로 보면 전쟁과 평화가 반복되는 것과 같습니다.

내 마음이 이와 같으니, 내가 만들어 내는 세상의 모습 또한 내 마음이 비친 거울과 같습니다.
문제는 내 마음의 업식이 그대로 현상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대개는 육근(눈·귀·코·혀·몸· 생각)과 육경(색·소리·향기·맛·느낌·전생)을 통해 괴로움과 즐거움이 발생합니다. 이로 인해 업이 공회전(空回轉)하듯 반복되며 윤회의 고리를 끊기가 어렵습니다.

육경의 대상을 만날 때마다 “이것은 내 마음의 음양이 인과로 나타난 것이다”라고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대상에 끌려 또다시 업을 짓게 됩니다.

마음에 안 드는 일, 억울한 일, 정의롭지 못한 일, 실패, 손해, 병고 등 어떤 상황에서도 인과(因果)를 믿어야 합니다. 내 육근을 통해 나타나는 대상은 모두 원인과 결과의 산물입니다. 따라서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릴 대상이 아닙니다.

감정을 드러내고 분노하면, 그 순간 또 다른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인과에 얽히게 됩니다. 이는 스스로를 괴롭게 할 뿐입니다.

인과에 대한 신심(信心)을 굳게 가지고, 평정심을 유지하십시오. 모든 상황에서 평상심(平常心)을 유지한다면 언제나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중도(中道)의 길입니다.

기도와 명상은 마음의 평정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특히, 놓음(방하착) 선명상은 우리가 집착하는 생각과 감정을 내려놓고 본래의 고요한 마음을 되찾는 데 효과적입니다.

오늘 하루, 육경의 대상을 만날 때마다 “이 또한 내 마음의 업이 비치는 거울일 뿐이다”라고 깨닫고 분별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 보십시오. 이 과정이 반복될수록 우리는 윤회의 사슬에서 자유로워지고 본래의 고요와 평화를 경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