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성미의 심심톡톡] 사랑만으로는 부족해…대화를 배워야

43. 말하는 법 강조한 부처님, 대화법(1) 상대 바꾸려는 말이 대화 벽 만들어 관계 회복 첫걸음 ‘대화 위한 연습’ 판단 아닌 공감, 소통의 벽 넘게 해

2025-07-25     하성미 기자

“전 그런 뜻으로 말한 게 아니에요.”

상담실에서 미희(47·가명)는 울먹이며 말했다. 남편과 수없이 대화를 시도했지만, 언제나 결론은 다툼이었고, 결국 이혼이라는 선택 앞에 서게 되었다.

그녀는 대화를 정말 많이 했다고 했다. 대화를 통해 관계를 바꿔 보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늘 ‘무반응’이었고, 바뀌지 않았고, 그녀의 말을 “무시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제가 원하는 건 정말 간단한 거예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해 주고, 미안할 땐 미안하다고 한 마디만 해 주면 되는 건데…. 근데 그걸 안 해요. 그냥 저한테 문제가 있다는 듯이 말하니까 너무 화가 나요.”

그녀는 남편을 “무책임한 사람”, “감정이 없는 사람”, “대화할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상담을 거듭하며 드러난 것은 조금 달랐다.

그녀는 ‘대화’를 정말 원했지만, 그 대화는 결국 ‘내가 원하는 답’을 듣기 위한 시도에 가까웠다. 질문이 아니라 판단이었고, 요청이 아니라 명령이었으며 기다림이 아니라 통제였다.

우리는 종종 말을 많이 하면 대화를 한 것이라 착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말이 감정을 실은 독백이 되거나, 기다림 없이 쏟아내는 통제로 흐를 때가 많다. 질문이 아니라 판단이 되고 요청이 아니라 명령이 되며 기다림이 아니라 압박이 될 때, 상대는 들으려 하지 않는다. 또한 많은 경우, 우리는 말보다 ‘정답’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내가 원하는 반응이 돌아오지 않으면, 넌 틀렸다”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만다. 그런 말은 아무리 공을 들여도 ‘들을 수 없는 말’이 된다. 진짜 대화는 ‘상대를 바꾸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태도다. 상대를 교정의 대상으로 여길 때 대화는 벽을 만들고, 관계는 점점 멀어진다.

그래서 대화는 어렵다. 사실 대화는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배움의 영역’이다. 내 말을 돌아보고 상대의 말에 담긴 마음을 듣는 연습을 할 때 대화는 결국 관계를 살리는 기술이 되고, 자신을 돌보는 따뜻한 도구가 되어 준다.

관계를 위한 대화를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평가하거나 판단하는 말, 충고하려는 습관부터 내려놓아야 한다. 그것들은 겉으로 보기엔 ‘도움’처럼 보일지 몰라도, 상대에게는 비난이나 지적, 혹은 우월함의 표현으로 들리기 쉽다. 예를 들어, “당신은 너무 예민해”라는 말은 단순한 감정을 전달한 것이 아니라 상대를 평가한 말이다.

관계를 위한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만드는 말이다. 평가나 판단이 개입된 순간 상대는 ‘듣는 사람’이 아니라 ‘방어하는 사람’이 되고, 대화는 이해가 아니라 ‘논쟁’이 된다.

충고도 마찬가지다. 아직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던지는 충고는 “너는 틀렸고, 나는 맞다”는 메시지로 전해진다. 그 순간부터 상대는 마음을 닫고 대화는 서로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끝나 버린다.

그래서 관계를 위한 대화는 무엇보다 ‘들으려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듣지 않고 평가하는 말, 공감 없이 충고하는 말은, 결국 관계를 위한 말이 아니라 관계를 깨뜨리는 말이 된다.

여기에 더해 비폭력 대화(NVC, Nonviolent Communication)는 좋은 방안이 된다. 미국의 심리학자 마셜 로젠버그(Marshall Rosenberg)가 제안한 이 대화 방식은 상대를 이기거나 설득하기 위한 말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에 닿기 위한 말을 연습하는 방법이다. 비폭력 대화는 네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째, 관찰하기다. 평가나 해석 없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당신은 요즘 나를 무시해”라는 판단 대신 “이번 주에 우리 둘이 함께 이야기한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둘째,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기다. 상대를 탓하기보다 내가 느낀 감정을 담담히 말하는 것이다. “당신은 늘 제멋대로야”라는 말 대신 “그래서 나는 좀 서운하고 외로워”라고 내 마음을 전달한다.

셋째, 욕구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 감정 뒤에 숨겨진 내 안의 필요를 바라보는 것이다. “나는 함께 있는 느낌, 연결감을 느끼고 싶었어”처럼 내가 진짜로 바라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리는 과정이다.

마지막으로 넷째, 요청하기다. 명령이나 강요가 아니라 상대를 존중하며 바람을 말하는 방식이다. “지금 말해 보라고!”라는 언어 대신 “오늘 저녁에 잠깐 대화할 수 있을까?”라고 말하는 것이 그 예다.

이 네 단계는 단지 말의 형식을 바꾸는 기술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태도와 관계의 방향을 바꾸는 연습이다. 경전 〈법구경〉에는 때와 장소에 맞지 않는 말만 하는 비구 랄루다이가 나온다. 그는 장례식장에서 〈보배경〉과 〈행복경〉을 낭송하고, 어디를 가든 처음 가진 의도와는 다른 말을 하곤 했다. 부처님은 “랄루다이는 어리석어 시의적절한 말을 하지 못하고, 배우지 못한 사람은 마치 황소와 다를 바 없다”고 꾸짖으셨다. 

대화는 연습을 통한 배움이다. 내가 어떤 말을 자주 쓰는지 돌아보는 것, 상대의 말 속에 감정과 욕구가 숨어 있는지 귀 기울이는 것, 그리고 ‘내가 옳다’보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기억하는 것. 말은 마음의 다리다. 그 다리를 다시 놓을 수 있다면 관계는 다시 연결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