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일의 불모열전 시즌2] 10.승일(勝日, 勝一) 스님
호남·영남 넘나들며 17곳에 불상 조성 17C 현진 스님 이은 도잠 스님 스승 청헌 스님·무염 스님과 공동 작업 경은사·쌍계사 불상 조성 수화승
17세기 중반 시군을 대표하는 사찰의 대웅전이나 명부전 및 부속 암자에 봉안할 불상을 주도적으로 만든 조각승은 30여 명에 이르고, 이 가운데 오랜 기간 전국을 무대로 불상을 조성한 조각승은 승일 스님이다.
조각승 승일 스님에 관한 가장 빠른 기록은 1622년에 당대 최고의 조각승인 현진 스님, 수연 스님, 응원 스님 등이 왕실에서 발원한 내원당(內願堂)인 자수사와 인수사에 봉안할 11구의 불상(현재 목조비로자나불좌상은 국립중앙박물관, 목조석가여래좌상은 서울 칠보사와 안동 선찰사에 각각 봉안, 보물)을 제작할 때 쇠를 다루는 야장(冶匠)이나 조각승 17명 가운데 마지막 위치로 기재돼 있다.
이를 통해 1622년 불사 때 승일 스님은 다른 조각승들에 비해 숙련도나 법납이 낮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승일 스님은 1628년 양산 내원사 조계암 목조관음보살좌상을 조성할 때 현진 스님과 연묵(衍黙) 스님 다음에 이름이 적혀 있고, 현진 스님과 1629년 대구 동화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이나 1630년 창녕 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을 제작할 때 부화승으로 참여했다.
그 후 스님은 1634년 수화승으로 밀양 표충사 목조삼전패, 1635년 부화승으로 무염 스님과 영광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 1636년 수화승으로 제천 경은사 목조문수보살좌상(도 유형문화유산), 1637년 현진 스님과 성주 명적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영남대학교 박물관 소장), 1639년 청헌 스님과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사(四)보살상(보물)을 만들었다.
이후 승일 스님은 수화승으로 1644년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존상과 나한상 및 무주 보현암 불상(조성기만 있음), 1646년 구례 천은사 수도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목조대세지보살좌상(보물), 1648년 강진 정수사 목조석가여래좌상과 목조약사여래좌상(보물), 1651년 서울 봉은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목조약사여래좌상(보물), 1654년 상주 용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1657년 무주 북고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도 유형문화유산), 1658년 문경 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1660년 경산 용밀사 석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서울 청룡사 봉안, 보물), 1665년 상주 용흥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대구 서봉사 봉안, 시 유형문화유산), 칠곡 송림사 석조삼장보살좌상과 시왕상(보물), 1668년 김천 직지사 목조비로자나삼불좌상, 1670년 김천 고방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도 문화유산자료)을 만들었다.
이와 같은 문헌을 중심으로 승일 스님의 생애를 살펴보면, 스님은 1590년대 후반에 태어나 1610~1620년대 현진 스님이 제작한 불상에 보조 화승으로 참여한 후, 1634년에 밀양 표충사 목조삼전패를 주도적으로 제작했다. 그 뒤 1630년대 전국적으로 유명한 무염 스님이나 청헌 스님이 주도한 불상 제작에도 참여했으며, 1670년까지 호남과 영남을 넘나들면서 17곳의 사찰의 대웅전이나 명부전 등에 불상을 만들었다.
승일 스님의 조각승 계보는 현진(玄眞, 이하 활동 시기 1604~1639)→승일(1622~1670)→응혜(應惠, 1634~1678)희장(熙藏, 1636~ 1667)계찬(戒贊, 1643~1671)도잠(道岑, 1643~1688)→보해(寶海, 1646~1685)자규(自圭, 1644~1680)로 이어져 17세기를 대표하는 조각승 계보이다.
승일 스님이 제작한 불상 가운데 가장 특이한 불상은 제천 경은사 목조문수보살좌상이다. 문수보살상은 높이 30㎝의 소형 불상으로, 나무 하나로 만든 일목식(一木式)이다. 문수보살좌상은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고, 어깨가 좁은 편이며, 얼굴과 상반신을 앞으로 숙여 자세가 구부정하다. 두건 사이로 흘러내린 검은 보발(寶髮)은 둥그렇게 땋아 두 가닥으로 갈라져 양어깨에 아래로 길게 늘어져 있다. 얼굴에는 가늘게 뜬 긴 눈, 콧날이 오뚝한 큰 코, 미소를 머금은 작은 입에서 원만하고 자비로운 인상을 느낄 수 있다. 착의법은 대의 안쪽에 부견의(覆肩衣)를 입고, 오른쪽 어깨를 덮은 대의 안쪽 옷자락이 반원형으로 겨드랑이까지 늘어지고, 나머지 대의 자락이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복부에 오른쪽 어깨에서 수직으로 내려온 옷자락이 늘어져 있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 자락은 복부 중앙에서 윗부분이 반으로 접혀 바닥까지 넓게 펼쳐지고, 좌우로 두세 가닥이 사선을 그리며 늘어져 있다. 왼쪽 무릎 위에 나뭇잎 형태의 소매 자락이 늘어져 있다. 왼쪽 어깨에서 한 가닥의 옷 주름이 길게 늘어져 끝단이 꽃잎 형태로 마무리되고, 뒤쪽으로 넓은 옷 주름이 물결같이 펼쳐져 있다.
가슴을 덮은 승각기는 매듭을 묶은 끈이 팔자형(八字形)으로 늘어져 있다. 손은 배 앞에서 양손을 맞댄 선정인(禪定印)을 취하고 있다.
보살상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는 1636년 12월에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승일(勝一)이 제작하고, 대좌를 혜윤(惠允)이 조성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당시 증명은 두인(斗仁)이고, 지전은 조행(祖行)이며, 화주는 김춘생(金春生)이다. 이 시기에 두인 스님과 조행 스님과 관련된 기록이 부여 무량사에 현전한다.
임진왜란 이후 무량사는 1624년부터 대대적인 재건이 시작돼 1627년에 괘불 조성, 1633년에 극락전 중건과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조성, 1636년에 범종(梵鍾)을 주성(鑄成)했다. 이 가운데 두인 스님은 1636년에 주성된 범종 명문에 세 번째 언급되고, 지전(持殿) 조행 스님은 1627년 부여 무량사 미륵불괘불도(彌勒佛掛佛圖)와 1633년에 부여 무량사 소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 1636년에 범종 주성 시 지전으로 적혀 있다. 지전이라는 소임은 불전이나 법당에서 예불을 맡은 스님을 지칭한다. 이러한 역할은 동일한 시기에 여러 사찰에서 맡을 수는 없기 때문에 경은사 목조문수보살좌상의 원래 봉안처는 부여 무량사로 추정할 수 있다.
승일 스님이 만든 전형적인 불상 형태는 김천 고방사 극락전에 봉안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이다.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높이가 102㎝, 무릎 폭이 71㎝인 중형불상이다. 목조불상은 약간 상체를 앞으로 내밀어 구부정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앞으로 숙인 머리는 나발(螺髮)이 촘촘하고 육계(肉)의 표현이 명확하지 않으며, 머리 정상부에 원통형의 정상계주와 이마 위에 반원형의 중간계주()가 있다. 둥글면서도 약간 길쭉한 얼굴에는 반쯤 뜬 눈, 오똑한 코, 선명한 인중과 작은 입 등 엄정하고 원만한 상호를 하고 있다. 목에는 삼도가 뚜렷하고 어깨가 넓고 허리가 길며, 앉은 자세를 앞으로 넉넉히 내었고 무릎 너비가 어깨너비보다 넓어, 안정된 신체 비례를 보인다.
두꺼운 대의 자락은 오른쪽 어깨에서 반달 모양으로 걸친 후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다른 대의 자락은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내려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펼쳐져 있다. 특히 하반신에 걸친 가장 바깥쪽 대의 자락은 초승달같이 자연스럽게 늘어지고, 그 뒤로 두 가닥의 옷 주름이 펼쳐져 있다. 양손은 무릎 위에서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취하고 있다.
승일 스님이 만든 불상은 얼굴에서 풍기는 온화한 인상이나 착의법 및 수인(手印) 등이 유사하고, 그의 제자인 응혜 스님과 희장 스님 등이 계승했다.
▶한줄 요약
승일 스님은 현진 스님의 계보를 계승하면서 50여 년 동안 전국 사찰에 불상을 만든 조각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