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소연의 수행 다이어리] 끊임없이 파도치는 부정적인 생각(2)

14 우리는 왜 부정적인 것에 집착할까?

2025-07-18     강소연/ 중앙승가대 교수
‘알아차림의 힘’으로 생각의 그물에서 벗어나다. ⓒ강소연

저녁 수행(잠들기 전, 2시간 좌선)을 하고 잔 날에는 새벽에 가뿐하게 저절로 눈이 떠진다. 하지만 저녁 수행을 하지 않고 잔 날에는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무겁고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이는 잠잘 때 ‘의식’은 쉬지만, ‘무의식’은 쉬지 않는다는 증거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저녁 수행을 통해 의식과 무의식이 더 이상 더렵혀지지 않고 잠시 청정함을 유지해 그것이 아침에 의식이 다시 돌아왔을 때도 반영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저녁 수행을 하지 않았을 때는 대낮의 소용돌이가 밤새도록 연결돼 오염된 무의식이 계속 파도를 친 것이다. 이 파도치는 전개를 오온(색-수-상-행-식)이라고 한다. 그러니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6근과 6경의 만남이 있자마자 바로) 부정적인 기억이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르고 고통 받는다. 수행의 유무에 따라 마음의 질이 다르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부단히 선정력을 키워야 함을 새삼 느낀다. 그 이유는 마음이 안정돼야 대상을 관찰하는 통찰지도 힘이 붙기 때문이다. 내 몸이 빈 병이라면 그 속에 오염된 물의 파도를 계속 치게 할 것인지, 아니면 그것을 청정한 물로 바꿀 것인지의 싸움이다. 청정한 에너지를 계속 쏟아붓지 않는 한, 이미 더러워진 에너지는 더욱 기승을 부릴 뿐이다.  


‘집착’은 ‘화살에 맞는 것’, 미친 증세를 낸다
지난 연재(끊임없이 파도치는 부정적인 생각, ⑬ 어떻게 대응하나?)에서 그 가장 가까운 원인으로서의 ‘촉과 느낌’, 그리고 ‘느낌 관찰(수념처)’의 중요성, 효과 있는 대응책 몇 가지를 다루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부정적인 기억에 집착할까?

우리는 긍정적인 기억보다 부정적인 기억에 집착한다. 내 의견에 반하는 남의 말과 행동이 나에 대한 공격이나 무시 등으로 받아들여졌을 경우, 이는 안 좋은 기억으로 저장된다. 즉, ‘나’라는 존재를 위협한 정황으로 강렬히 입력된다. 객관적 관찰자 시점을 유지한다면, 안 좋은 기억보다는 사실 좋은 기억들이 훨씬 많다. 그러나 나의 주관은 안 좋은 기억 위주로만 집요하게 집착한다. 그 이유는 뭘까? 

그것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두려움을 느껴 긴장하는 것은 적이 나타났을 때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경계경보이다. 기억이란 이미 지나간 현재에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조그마한 ‘불편한 느낌’의 스침에도 그 기억을 떠올리고 반응하며 또 떠올리고 반응하고를 무한 반복한다.[6근과 6경이 만나자마자 ‘촉(觸)’이 발생하고 → 여기에 ‘좋다 또는 싫다’라는 ‘느낌의 분별과 집착’으로 반응하고 → ‘싫은 느낌’으로 판단되면 ‘싫은 기억’이 떠오르는 메커니즘]을 지난 연재에 설명하였다. <붓다차리타>(마명, AD1~2세기경)에는 이러한 ‘집착’이 발생하는 것을 마구니의 ‘화살’에 비유한다. “(집착의) 화살에 조금만 부딪혀도 미친 증세를 낸다” 또는 “(집착의) 화살의 소리만 들어도 마음은 매우 두려워하여 정신이 아득하여 본성을 잃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두려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방어 기제
지금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과거의 기억이다. 그것도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진 가공된 기억. 그런데 기억 속에서 스스로가 스스로를 끊임없이 공격하는 것이다. 이는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켜야 내 생존에 이득이 된다는 생존 본능적 원리 때문이다. 두려움이란 (원시시대부터) 외부로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한 원초적 방어기제이다. 그런데 이것이 과잉으로 작동돼 이제는 시도 때도 없이 번뇌를 유발하는 습관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는 너무도 오랫동안 (나와 남에 대한) 편견과 분별, 비난과 혐오, 두려움과 공포 등에 오염돼 있기에 오염돼 있는 줄도 모른다. 이에 (격동하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진정시키기 위해) 먼저 자신에 대한 자애심을 키워야 한다. 자기를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남에 대한 포용력도 생겨난다. 심리학적 치유의 근원이기도 한 ‘자기 사랑’. 그러면 어떻게 자기를 사랑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해서는 추후 연재에 효과적인 방법 몇 가지를 소개함.) 

말 그대로, ‘자나 깨나’ 오온은 돌아가고 있다. 자고 있을 때는 의식이 개입하지 못할 뿐이고, 깨어 있을 때는 의식이 개입해 다시 가열차게 돌아간다. 그리고 집착을 통해 그것을 끊임없이 자기화하고 있다. 업식은 오염일로인 것이다. 파도는 멈추지 않고 계속 친다. 석가모니 붓다의 “불방일!(게으르지 말라!)”라는 유언이 폐부에 와 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