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일의 불모열전 시즌2] 9. 해심(海心, 海深) 스님
높은 미적 완성도 보인 17세기 호남 조각승 고창 문수사·광주 원각사 불상 등 1646~1654년 수화승으로 참여 행사·무염 스님 계보 이어
1640년부터 1660년대까지 명산대찰의 부속 전각인 명부전(冥府殿)이나 영산전(靈山殿), 시군을 대표하는 사찰의 중심 전각에 불상을 주도적으로 만든 조각승은 30여 명에 이른다. 이 가운데 해심 스님은 무염 스님의 계보를 계승하면서 미적 완성도가 높은 불상을 만든 조각승이다. 해심 스님의 조각승 계보와 주요 활동은 해남 도장사 목조석가여래좌상(도 유형문화유산) 대좌 바닥에 적힌 조성묵서(造成墨書)와 내부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을 통해 밝혀졌다.
도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의 조성발원문에는 1648년 청신거사(淸信居士) 90세 김춘학(金春鶴)이 대공덕주(大功德主)로 참여했고, 화원질은 사옹(師翁) 행사(幸思), 양사(養師) 무염(無染), 수화원(首畵員) 해심(海心), 종임(宗稔), 지준(智准), 민기(敏機), 삼간(三侃), 도균(道均), 명조(明照), 경성(敬聖), 시자(侍者) 계립(戒立)과 영걸(英桀)이 적혀 있다.
그러나 대좌 바닥에 적힌 조성 묵서에는 해심 스님이 수화승으로 적혀 있고, 행사 스님과 무염 스님이 언급되지 않았다. 따라서 불상 제작은 해심 스님이 실제로 주도하고, 스승인 행사 스님과 무염 스님을 예우하기 위해 조성발원문에 적은 것이다. 이와 같은 표현은 1654년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영광 불갑사 목조지장보살좌상 조성발원문에서 볼 수 있다.
조각승 해심 스님과 관련된 가장 빠른 기록은 1630년 김천 직지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으로, 행사 스님과 태훈 스님 등 14명의 조각승 가운데 열세 번째에 적혀 있다. 또한 3년 후인 1633년 고창 선운사 대웅보전 목조비로자나삼불좌상(보물)은 무염(無染) 스님과 천언(天彦) 스님 등 총 12명이 제작한 대형 불상으로, 화원 중에 해심 스님이 여섯 번째로 적혀 있어 1630년대 전반 불상 제작에 보조적인 역할을 했다. 그리고 13년 후인 1646년에 광주 원각사 목조석가여래좌상(도 유형문화유산)을 수화승으로 제작했다.
해심 스님은 1648년에 수화승으로 해남 도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을 조성한 후, 1651년 8월에 무염 스님이 제작한 속초 신흥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 목조지장보살삼존상(보물)에 세 번째 조각승으로 참여했다.
또 1654년 3월 수화승으로 고창 문수사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보물)과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좌상 및 시왕상(보물)을 제작한 후, 7월 영광 불갑사 목조지장보살삼존상과 시왕상(보물)을 조성했다. 특히, 해심 스님이 만든 불상은 호남을 대표하는 사찰이면서 벽암각성(碧巖覺性)이 시주자로 참여한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해심 스님은 1600년 전후 태어나 1620년대부터 1630년대까지 불상 제작에 보조 화승으로 참여한 후, 1646년부터 1654년까지 수화승으로 호남 사찰의 불상을 조성했다.
해심 스님의 조각승 계보는 행사(1606~ 1648, 이하 활동 시기)→무염(1633~1656)→정현(正玄, 1654)해심(1630~1654)성수(1633~1654)→지견(智堅, 1654~1659)민기(敏機, 1648~1654)경성(1648~1653)으로 이어진다. 무염 스님의 제자인 해심 스님은 정현 스님이나 성수 스님과 활동 시기와 집단 내 위상 등을 고려하면 사형사제(師兄師弟)임을 알 수 있다.
해남 도장사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협시보살 1구는 목포 해봉사로 이운) 중 본존은 높이 167㎝의 중형 불상으로, 몸체와 밑판 및 대좌가 소나무로 제작돼 조선 후기 불상(여래와 보살상)이 대부분 은행나무로 제작된 것과 차이가 난다.
석가여래의 오른손은 손가락을 펴서 아래를 향한 촉지인(觸地印)을 하고, 왼손은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 엄지와 중지를 맞댄 전형적인 조선후기 불상의 통인(通印)을 취하고 있다. 불상은 머리와 상반신을 앞으로 내밀어 자세가 구부정하고, 방형의 얼굴에 가늘게 뜬 눈, 원통형의 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 모양을 하고 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도식적으로 반원형을 그려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불상보다 인위적인 느낌이 든다. 착의법은 오른쪽 어깨에 수직으로 한 가닥의 옷자락이 가슴까지 완만하게 펼쳐져 있고, 나머지 대의자락은 오른쪽 어깨에 비스듬히 걸친 후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반대쪽 대의자락은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수직으로 내려와 배에서 반대쪽 대의자락과 자연스럽게 겹쳐져 있다. 중앙의 넓은 주름이 하반신에 완만하게 펼쳐진 것이 특징이고, 왼쪽 무릎 위에는 짧고 뾰족한 소매자락이 늘어져 있다.
이와 달리 1654년 제작한 고창 문수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과 목조지장보살좌상, 영광 불갑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은 땡글땡글한 얼굴에 턱 밑 음각으로 턱선을 강조하고, 귀의 표현에서도 크고 볼륨감이 있어 전반적으로 인상이 후덕하고 인자한 느낌이다.
특히 두툼한 눈두덩이, 삼각뿔의 코, 짧은 인중과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을 가지고 있어 광주 원각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46년)이나 해남 도장사 목조석가여래좌상(1648년)과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착의법 등이 차이가 난다.
해심 스님이 만든 불상은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이나 착의법 등이 시기마다 차이가 있어 다양한 형태의 불상을 제작한 17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조각승으로 볼 수 있다.
▶한줄 요약
해심 스님은 무염 스님의 계보를 이으면서 다양한 형태의 불상을 만든 조각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