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법일기]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알아차림으로 다시 선 자리
7월 1일, 6개월마다 병원에 가는 날이 다가오면 내 마음은 자연스레 몇 해 전 그날로 향한다. 2020년 12월, 한 해의 끝자락이었다. 갑작스러운 뇌경색. 학업 때문에 혼자 자취 중이던 당시, 경주 함월사 주지 스님께서 “법당 부전 스님이 자리를 비우니 며칠 소임을 맡아줄 수 있겠냐”고 물으셨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고, 절에 들어간 지 이틀째 되는 날 일이 벌어졌다.
새벽 2시 45분쯤, 예불 준비를 위해 방의 불을 켰는데 갑자기 내 몸이 무너져 내렸다. 바닥에 쓰러진 채 움직일 수도 없고 소리도 낼 수 없는 상태, 그야말로 혼수상태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스님께서 일찍 일어나셨다고 했다. 이유는 꿈이었다. 스님은 꿈에서 나를 보았고 3시 도량석이 울리지 않자, 곧장 내 방으로 오셨다. 덕분에 신속히 응급실로 이송될 수 있었다.
누군가는 이를 ‘기적’이라 말할지 모르지만 나는 ‘연기(緣起)’의 실현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수많은 조건이 맞물려 하나의 결과로 이어졌던 그 순간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생기(因緣生起)의 진리를 실감케 했다.
병원에서 눈을 떴을 때, 의사는 내게 왼손과 왼다리를 들어보라고 했다. 그때에도 나는 몸에 이상이 생겼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다. 내 상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했던 것, 그것이 곧 고통의 시작이자 원인이었다. 불교에서 말하는 무명(無明), 곧 ‘알지 못함’이 내 안에서 작동하고 있었다.
그 뒤 의료진의 처치, 스님의 기도, 가족과 지인들의 따뜻한 손길, 그리고 내 노력이 더해져 조금씩 회복되었지만, 예전 같을 수는 없었다. 결국 뇌에 후유증은 남았지만, 의사의 말은 위안이자 희망이 되었다. “손상된 뇌세포는 되살릴 수 없지만, 새로운 신경 회로를 개발할 수 있습니다.” 그 말이 마치 ‘새로운 업(業), 선(善)업을 지어 가라’라는 불교의 메시지처럼 다가왔다.
퇴원 후 잃어버린 기억들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음엔 상처가 남았고, 사람들 속에서도 어려움이 많았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데는 눈물겨운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믿음 하나는 꺼지지 않았다. 부처님과 기도의 공덕에 대한 믿음, 그리고 부처님 가르침에 대한 신뢰였다.
돌이켜 보면, 그때까지 ‘진리’라고 믿었던 많은 것이 사실은 고정된 생각과 집착, 견해에 불과했다. 삶은 언제나 변하고 그 변화는 예고 없이 찾아온다. 내가 겪은 고통도,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조건도, 모두 인연 따라 모인 결과였다. 비로소 아무것도 내 뜻대로 붙잡아 둘 수 없고, 끊임없이 변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내 마음은 놓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집착에서 조금씩 물러나고, 변화에 저항하지 않았기에 지금 이 자리에 머물 수 있게 된 것 같다.
나는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사띠(Sati)’, 깨어 있는 알아차림의 삶으로 바로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살아가고자 한다. 그것이 내가 고통 속에서 배운 가장 깊은 가르침이자, 앞으로도 지속하고자 하는 수행의 자세다.